[풍경소리] 사법의 이름으로 봉인된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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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소리] 사법의 이름으로 봉인된 자유

강병호 배재대 교수

  • 승인 2025-10-20 11:26
  • 신문게재 2025-10-21 19면
  • 조훈희 기자조훈희 기자
강병호 배재대 미디어콘텐츠학과 교수 풍경소리
강병호 배재대 교수
홍콩 사법부는 한때 영국 식민지 시절부터 축적해 온 '법치(rule of law)'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2020년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상임위원회가 제정한 '국가보안법'은 그 전통을 근본부터 흔들었다. 특히 행정장관이 직접 지정한 판사만 안보 관련 사건을 전담하도록 하고, 보석을 극히 제한하는 조항은 재판이 시작되기 전부터 이미 권력에 유리한 구조를 만들었다. 홍콩 국가보안법 제42조는 '국가안보 범죄로 기소된 자는 법원이 피고인이 추가 범죄를 저지르지 않을 것임을 충분히 믿을 만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보석을 허가하지 않는다'고 규정한다.

보안법 시행 이후 홍콩 법정의 분위기는 뚜렷이 달라졌다. 2020년 야권의 비공식 예비선거를 '정부 전복 시도'로 본 이른바 '홍콩 47' 사건에서, 법원은 2024년 5월 주요 피고인 14명에게 유죄를 선고했고, 같은 해 11월 19일에는 다수 피고인에게 최장 10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2025년 7월에는 일부 피고인이 항소를 제기했다. 이 사건은 배심 없이 행정장관이 지정한 판사 3인으로 구성된 재판부가 심리했다는 점에서 상징적이다. 홍콩 언론 자유의 척도로 평가되는 지미 라이(黎智英) 재판도 마찬가지였다. 선동죄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가 함께 적용된 이 사건 역시 배심 없이 지정 판사가 맡았으며, 2025년 8월 최종 변론이 끝났지만 선고는 예고된 상태로 남아 있다. 이러한 일련의 재판은 '국가안보'라는 명분 아래 절차적 예외가 제도화된 결과로 평가된다.

2025년 1월 '스탠다드(Standard)'지에 따르면, 홍콩 대법원장 앤드루 장(Andrew Cheung, 張?能)은 영국·캐나다 등지에서 초빙된 해외 비상임 대법관들의 연쇄 사임에도 불구하고 "해외 판사의 유무가 법치의 본질을 흔드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그 '본질'이 과연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만 오히려 커졌다. 문제의 핵심은 판사 개인의 성향이 아니라 제도 자체에 있다. 지정 판사 제도는 정치적 사건을 특정 재판부에 전담시키는 구조적 장치를 통해 재판의 공정성을 침해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제 시선을 한국으로 돌려보면, 최근 더불어민주당 특위가 발의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법안'이 주목받고 있다. 원안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과 서울고법에 각각 전담부를 두고, 1심 6개월, 항소심 3개월, 상고심 3개월 이내에 재판을 종결하는 '6-3-3 원칙'을 법률로 명문화하며, 사면·감형·복권을 배제하고 내란·외환죄에 대한 감경도 불허하도록 규정했다. 다만 국회 논의 과정에서 일부 조항을 완화하거나 예외를 두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는 보도가 있다. 입법 경로와 정치적 맥락은 홍콩과 다르지만, 정치적 사건을 제도적으로 특정 재판부에 집중시키고, 재판 기간 및 사후 구제 절차까지 법률로 고정하려는 방식은 유사한 측면을 보인다. 사면·감형·복권의 일괄 배제에 대해 '대통령의 헌법상 사면권을 박탈하는 것이 아니라 자격을 제한하는 것'이라는 해석이 제시되지만, 이러한 규정은 사실상 특정 사건과 피고인에 대한 사후적 조정이나 구제 절차를 봉쇄하는 효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이는 권력분립 원리와 평등권의 적용 범위를 둘러싼 헌법적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사법부도 대응에 나섰다. 서울중앙지법은 내란 사건을 담당하는 형사합의25부의 업무 부담을 줄이기 위해 판사 1명을 추가 배치하는 등 자체적 지원책을 마련했다. 내부의 사무 분담과 사건 배당 조정을 통해 신속성을 높이려는 자율적 조치가 병행되고 있다.

홍콩의 경험은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절차적 예외가 제도화되는 순간, 재판은 자유를 보장하는 공간에서 자유를 구속하는 공간으로 변한다. 지정 판사, 배심원 배제, 보석 제한이 맞물려 '사전 유죄' 정황을 제도화한 것처럼, 한국에서 전담재판부가 재판 기간·인사 구성·사후 구제 절차까지 법률로 강제한다면 그 의도가 무엇이든 결과는 사법의 비정상화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정치는 언제나 사법을 자의적으로 활용하려는 유혹을 받지만, 사법의 신뢰는 정치적 강요를 제어하는 제도적 장치에서 비롯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누구를 얼마나 빨리, 얼마나 엄격하게'가 아니라, '누가 맡아도 흔들리지 않는 절차, 그리고 사후 구제의 보장'이다. /강병호 배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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