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보기]꿈이 현실이 되는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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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보기]꿈이 현실이 되는 도시

김병윤 대전대 명예교수(건축가)

  • 승인 2025-11-13 16:40
  • 신문게재 2025-11-14 19면
  • 이상문 기자이상문 기자
김병윤 전 대전대 디자인아트대학장
김병윤 대전대 명예교수(건축가)
꿈이라 해서 다 비현실적인 것만은 아니다. 아주 우연히 마주친 일상의 장면에서 '아 이런 것이 가끔 바라던 그 장면이었던가' 하고 느낌이 들 때가 있어서 꿈과 현실은 매우 가까운 사이라 할 수 있다. 비단 영국이나 유럽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 축구로 유명세가 높은 도시는 맨체스터일 것인데 맨체스터의 소도시 뉴 이즐링턴은 런던의 자치구 이즐링턴과 같은 이름을 지닌 곳이다. 아일랜드의 더블린과 맨섬을 바라보는 영국 산업혁명 제1의 항만도시이자, 비틀즈의 고향이며 불운한 크루즈 타이타닉의 기항지이기도 했던 리버풀 항만 하구에서 시작되는 머지강은 맨체스터의 이즐링턴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많은 도시를 거쳐 내륙으로 파고든다. 바다에서 시작한 이 물은 어느새 바로 코앞으로 다가와 손에 든 커피잔과 같은 높이로 시야에 친근해진다. 바로 쉽게 꿈이 현실로 다가와 마치 수영장의 물처럼 옆으로 다가온 장면은 꿈에서 본 일상이 된다. 바로 이 실처럼 작은 강은 다시 카날(운하)이란 물길로 자유롭게 가고 싶은 땅들을 여기저기로 여행하는데 이즐링턴과 맨체스터를 '애슈턴 카날'이란 이름의 운하가 연결하며 그 운하 곁으론 다양한 건축들이 이 물길을 향유 한다.

이즐링턴의 애슈턴 카날 옆에 있는 칩스(chips)라 이름 붙여진 도시재생 공동주택은 이름부터 특이하지만, 치열한 세상의 공동주택과는 거리를 두고 재미있게 일상이 즐거워지는 모습을 하고 있다. 세 줄의 수평을 이루는 띠로 구성된 9층짜리 이 건축은 감자칩처럼 3층으로 된 세 가닥의 긴 덩어리가 각기 엇갈리며 서로 끼워 조립된 자유로운 건축이다. 공동주택의 무료함이나 개발의 존재감 투기의 광풍이 여기선 조용히 사라지고 그저 즐기고 싶은 거주자의 선택으로 지내면 되는 평온을 간직하고 있다. 좀 익살스럽게 보이는 것도 영국적인 유머와 '윌 알솝'이란 건축가의 재능과 '어번 스플래쉬'라는 개발사의 전략이 함께 했겠지만, 그렇다고 재미로만 보기에는 만만치 않은 뛰어남이 이 '칩스'를 통해 드러난다. 서민 형의 주거에서 공간적 풍족함이 크지는 않을 것이나, 물길이 있어 풍요롭고 자유로운 외연을 지닌 건축에서 일상의 즐거움과 건축의 재치가 물길과 함께 더 크게 다가온다.



작은 물길들의 이어짐은 이미 뛰어난 산업 기술로 근대의 문을 연 영국에 서는 보편적이나 이웃인 프랑스의 기술도 못지않게 '물 위의 물길'을 고안하여 자연의 흐름을 제지하지 못하는 물의 다리를 만들어 냈다. 프랑스 '베지에 오브' 강으로 오브강을 넘어 '카날 드 로브' 수로로 이어지는 300킬로 거리의 '미디운하'는 17세기 초에 조성되어 배를 타고 강을 가로질러 건너게 된다. 놀랍지만 이미 제정 로마 전성기 '팍스로마나' 시대에 수로를 만들어 물길은 어디라도 넘나드는 재능을 보였고, 미디운하의 물길은 길 위로 자동차가 흐르듯 배를 실은 물이 강을 건너기도 한다.

이와는 달리 급하게 이루어진 도시는 어딘지 마음의 풍요보다는 그 화려함이 부담스럽고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모습을 띤다. 모두가 현실의 꿈으로 한때는 '두바이피케이션-두바이도시처럼 이룸'의 '놀라운 성취'를 갈망하기도 했지만, 이 신도시는 어딘지 비현실적으로 사막의 신기루를 떠 올리게도 한다.



일찍 전원주택을 꿈꾸어 왔던 영국은 '가든시티 무브먼트-전원도시 운동'으로 도시에 숭숭하게 열린 숨 터를 조성해 왔고 신도시의 계획에서도 개발자의 의지보다는 거주자의 꿈을 위해 낮고 비움이 많은 공원 도시를 조성하려 애써왔다. 대표적으로 수로를 중심으로 낮은 주거들이 물을 에워싸고 있는 영국 버밍엄의 '밀턴 케인스' 신도시는 집 앞에서 송어 낚싯대를 든 거주자가 이른 아침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집 앞의 물가에 앉아 낚시하는 장면에서 꿈이 현실이 됨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이보다 더 현실적인 장면은 바로 집 앞의 낚시 장면보다, 일과 삶이 오버 랩 되는 이즐링턴의 물길이 만든 도심 속 마리나를 만나는 것이야말로 작은 꿈이 일상이 되는 미장센이며, 극적인 장면이 커피잔을 든 바로 눈앞에서 펼쳐지는 것이다.
김병윤 대전대 명예교수(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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