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 시험은 끝났지만 질문은 남는다

  • 오피니언
  • 프리즘

[프리즘] 시험은 끝났지만 질문은 남는다

김성수 충남대 에너지과학기술대학원 교수

  • 승인 2025-11-18 10:24
  • 신문게재 2025-11-19 19면
  • 방원기 기자방원기 기자
김성수
김성수 충남대 에너지과학기술대학원 교수
11월 13일 오후 1시 10분. 한국의 하늘이 조용해졌다. 2026학년도 대입 수능시험의 영어 듣기평가 35분간 국제선 75편을 포함해 총 140편의 전국의 모든 항공편의 이착륙이 통제됐다. 매년 11월 비행기를 멈추고 은행 영업을 늦추고, 군부대 훈련까지 중단시킨다. 약 55만 명의 수험생들은 3년 혹은 그보다 훨씬 더 긴 시간을 이 하루를 위해 바쳤다.

우리에게 대학 입시 제도는 시대정신이 직설적으로 드러난다. 1970~80년대에는 대학이 곧 신분 상승의 사다리였고, 그래서 대학입시는 거의 '운명 결정'에 가까웠다. 1990년대 들어 학력고사에서 수능으로 바뀌었지만, 수능도 '줄 세우기의 최신 버전'이라는 사회적 합의가 형성된 듯하다. 지난 20~30년간 수차례 교육개혁을 해서 시험의 형태는 바뀌지만,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못(안) 바꾸는 건가? 아마도 참고했을 다른 나라의 교육제도를 보자. 먼저 독일 입시제도 아비 투어는 하루 한 과목 서너 시간을 한 달에 걸쳐 서술형 시험을 본다. 프랑스의 바칼로레아는 '시간이란 무엇인가' 같은 철학 질문에 답해야 하고, 그날 거의 모든 프랑스의 카페와 술집이 이 화제로 논쟁을 벌인다. 16살까지 시험 없이 배우는 핀란드 학생은 경쟁보다 협력하는 공동체 의식을 가진 시민이 된다. 우리 학생은 초등학교 때부터 경쟁한다. 핀란드 학생 70%가 "공부가 즐겁다"고 답할 때, 우리 학생들은 뭐라고 답할까? 우리만큼 교육열이 심한(?) 싱가포르 학생도 80%가 대학에 가지 않고도 떳떳하다. 우리 학생은 90%가 대학에 가도 불안하다.



정부는 매년 '사교육비 경감 대책'을 발표하고, 교육부 관계자들은 '공교육 정상화'를 외친다. 그리고는, 강남 학원가 매출은 전년 대비 10% 이상씩 증가한다. 우리나라에서 교육과 관련된 몇 가지 우스갯소리가 있다. 예전에는 '성공한 입시의 조건은 할아버지의 재력과 아버지의 무관심과 어머니의 정보력'이였지만, 지금은 "강남에는 '컨설팅'이 있고, 지방에는 'EBS'가 있다"라고 한다. 월 수백만 원짜리 종합반 학원, 과목당 수십만 원의 인터넷 강의, 학생부 관리 컨설팅같이 년 수천만 원씩 들여가며 입시 컨설팅을 받는 것이 더 드라마 속 이야기가 아니다. 사교육 업계는 '컨설팅'이라는 세련된 이름으로, '교육연구소'라는 그럴싸한 간판으로 변신을 거듭한다. 정부가 규제를 발표하면, 다음 날 학원가는 새로운 우회로를 찾아낸다. 피해는 결국 우회 정보가 없는 학생들과 현장의 교사들에게 돌아간다.

최근엔 '서울대 10개 만들기'라는 정책이 등장했다. 지방 거점국립대를 키워 대학 서열화를 완화하겠다는 것이라고 한다. 좋은 시도다. 하지만 문득, 이 정책을 입안하고 수행해야 할 분들은 밖으로는 공교육 정상화나, 교육기회균등을 외치면서, 자녀들에게도 그러실 수 있는 부모일지가 궁금해진다. 우리 사회에서는 자식에게 약한 부모가 인지상정인 듯하고, 고위 공무원, 국회의원, 법조인, 의사, 이른바 '성공한' 부모일수록 자식에게 더 헌신적이다. 이해 불가의 여야 정쟁, 더딘 검찰개혁, 무위로 끝난 의료분쟁 등 우리 사회에서 만나는 현상들도 그 저변에는 자신(자식)은 꽃길만을 걸어야 한다는 집단(개인)이기주의가 깔렸다.



그런데 세상은 다른 방향으로 바뀌고 있는 듯하다. 젠슨 황의 엔비디아의 경제가치를 논하기 전에, 정부는 올해 AI(인공지능) 인재 양성에 1조 8000억 원을 투자한다. '오지선다형 정답을 잘 찾는 인재'가 아니라 'AI와 협업할 줄 아는 인재'를 찾는 것이다. 핀란드의 자기 주도 학습능력, 프랑스 철학 문제로 단련한 비판적 사고력, 바로 그런 능력일지도 모른다.

수능을 마친 여러분, 청춘의 가장 빛나야 할 시간을 책상 앞에서 보냈고, 놀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때로는 울면서 버텨왔다. 그 시간은 절대 헛되지 않다. 12월 6일, 성적표를 받아들 여러분의 손이 떨릴 것이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기억하시길. 이제는 다른 준비를 시작할 때다. AI뿐만 아니라, 사람과 소통하고 공감하는 힘을 기르길 바란다. 논술 등 남은 대입 일정에 힘내시길 바라며, 다시 한번.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김성수 충남대 에너지과학기술대학원 교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충남 통합에 원칙적 환영
  2. 2025년 가장 많이 찾은 세종시 '관광지와 맛집'은
  3. 의정부시, 2025년 명장 2명 선정…장인정신 갖춘 소상공인 자긍심 높여
  4. 유성구 새해 추진전략 4대 혁신·4대 실행축 제시
  5. 코레일, 동해선 KTX-이음 개통 첫 날 이용객 2000명 넘어
  1. [세상보기]가슴 수술 후 수술 부위 통증이 지속된다면
  2. 대전도시공사, 시민 체감 성과 중심 2026년 경영전략 선포
  3. 대전 중구보건소, 정화조 청소 후 즉시 유충구제 시행
  4. 충청 출신 與野대표 지방선거 운명의 맞대결
  5. 대전과학기술대 간호학과 대한민국 안전문화 학술대회 장려상 수상

헤드라인 뉴스


6월 지선 최대 격전지… `대전·충남통합` 첫 단체장은 누구 손에?

6월 지선 최대 격전지… '대전·충남통합' 첫 단체장은 누구 손에?

올 6월 3일 치르는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가장 높은 관심사는 대전·충남 첫 통합 단체장 탄생 여부다. 실현 여부는 아직 지켜봐야겠지만, 정치권에선 이미 통합 단체장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통합단체장이 갖는 정치적 위상과 상징성은 지금의 예상치보다 훨씬 높을뿐더러 향후 역량에 따라 성장할 수 있는 잠재성은 사실상 무한대다. 수도권 일극 체제 타파와 지방소멸 위기 극복의 국가적 사명, 하나의 도시국가를 이끄는 강력한 자치권을 지닌 수장으로서의 리더십, 명실상부한 중원의 맹주로 자리매김하며 추후 대권까지 노릴 수 있는 정치적 무게..

[현장] 응급실 시계에 새해는 없다네… 중증환자 골든타임만 있을뿐
[현장] 응급실 시계에 새해는 없다네… 중증환자 골든타임만 있을뿐

"응급실 시계에 새해가 어디 있겠습니까. 중증환자 골든타임만 있을 뿐이죠." 묵은해를 넘기고 새해맞이의 경계에선 2025년 12월 31일 오후 11시 대전권역 응급의료센터가 운영되는 충남대병원 응급실. 8살 아이의 기도에 호흡 유지를 위한 삽관 처치가 분주하게 이뤄졌다. 몸을 바르르 떠는 경련이 멈추지 않아 산소포화도가 떨어진 상태에서 호흡부전으로 이어질 수 있는 위급한 상황이었다. 처치에 분주히 움직이는 류현식 응급의학 전문의가 커튼 너머 보이고 소아전담 전문의가 아이의 상태변화를 주의 깊게 관찰했다. 여러 간호사가 협력해 필요한..

"할아버지는 무죄에요" 대전 골령골에 울린 외침…학암 이관술 고유제 열려
"할아버지는 무죄에요" 대전 골령골에 울린 외침…학암 이관술 고유제 열려

대전형무소에 수감됐다가 6·25전쟁 발발 직후 불법적인 처형으로 목숨을 잃은 학암 이관술(1902-1950) 선생이 1946년 선고받은 무기징역형에 대한 서울중앙지방법원의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그의 외손녀 손옥희(65)씨와 학암이관술기념사업회는 2025년 12월 31일 골령골 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터에서 고유제를 열고 선고문을 읊은 뒤 고인의 혼과 넋을 달랬다. 이날 고유제에서 외손녀 손옥희 씨는 "과거의 역사가 남긴 상처를 치유하겠다는 역사를 근간으로 하는 단체와 개개인의 노력 덕분에 사건 발생 79년 만에 '이관술은 무죄'..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병오년 이색 도전…선양 맨몸마라톤 이색 참가자 병오년 이색 도전…선양 맨몸마라톤 이색 참가자

  • 맨몸으로 2026년 첫 날을 힘차게 ‘출발’ 맨몸으로 2026년 첫 날을 힘차게 ‘출발’

  • ‘붉은 말의 기운 받아 2026년도 힘차게 나아갑시다’ ‘붉은 말의 기운 받아 2026년도 힘차게 나아갑시다’

  • 구불구불 다사다난했던 을사년…‘굿바이’ 구불구불 다사다난했던 을사년…‘굿바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