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보기]통합을 넘어 창조적인 시스템 전환으로

  • 오피니언
  • 세상보기

[세상보기]통합을 넘어 창조적인 시스템 전환으로

이은학 대전정보문화산업진흥원장

  • 승인 2026-02-19 16:47
  • 신문게재 2026-02-20 19면
  • 이상문 기자이상문 기자
이은학-대전정보문화산업진흥
이은학 대전정보문화산업진흥원장
지금 우리가 마주한 시대는 그 어느 때보다 격동적이고 예측 불가능하다. AI 기술의 급속한 발전은 공간과 시간의 개념을 허물며 국가 경쟁력의 기준과 산업 현장, 나아가 근로 환경까지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특히 AI 시대의 핵심 동력은 '다양성'과 '초개인화'에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는 우리의 국가 운영 방식과 행정 시스템은 여전히 중앙집중적 관리와 규제 중심의 과거 틀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 뼈아픈 현실이다. 최근 대전과 충남을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행정통합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지금 시급한 것은 통합의 속도나 찬반을 둘러싼 소모적 논쟁이 아니다. 보다 근본적인 질문이 필요하다. "통합은 왜 필요한가, 무엇을 바꾸기 위한 선택인가." 통합이 단순히 행정구역의 물리적 크기를 키우는 데 그친다면, 그것은 또 하나의 집중과 형식의 반복에 불과하다. 진정한 통합은 외형적 '합병'이 아니라, 기능과 권한을 혁신하는 '시스템의 전환'이어야 한다.

지방자치가 시행된 지 30여 년이 지났지만, 지방은 여전히 충분한 권한과 재정 분권 없이 중앙의 결정에 의존하고 있다. 인구감소와 지방소멸이라는 절벽 앞에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책임은 지방에 있으나 결정권은 중앙에 머무는 구조 속에서 자치의 역동성과 창의적 발전전략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지방은 활력을 잃고 인구는 빠져나가는 반면, 수도권은 과밀과 비효율이라는 과부하에 직면해 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과거의 논의 속에서 해법의 실마리를 찾을 필요가 있다. 2008년부터 시작된 '향부숙'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이들이 공유한 문제의식은 분명하다. 국가가 부강해지기 위해서는 지역이 부유해져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형식적 자치가 아닌 실질적 자치가 구현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전제 조건으로 지역 스스로를 일으키는 '자강(自强)의 역량'이 강조된다. 강형기 교수가 주창한 '향부론'은 지역을 단순한 행정 단위가 아니라, 스스로 기획하고 책임지는 주체로 바라본다. 중앙의 지시를 기다리는 수동적 존재가 아니라, 세계의 도시들과 직접 경쟁할 수 있는 역량 있는 지방정부를 만드는 것이 곧 국가 경쟁력의 출발점이라는 주장이다. 이는 다양성과 분권이 핵심 가치가 되는 AI 시대의 도시 경쟁력 논의와도 정확히 맞닿아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동양 고전의 통치 철학과도 연결된다. 공자는 '논어'에서 정치의 요체를 강제적 통제보다는 각자가 맡은 역할과 책임을 다하는 데서 찾았다. 군자가 바르게 서면 백성이 스스로 따른다는 인식은,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자율과 책임의 거버넌스, 실질적 자치의 철학적 배경으로 충분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문명의 대전환을 몰고 온 AI 시대에 지방을 낡은 제도와 행정구역이라는 틀에 가두는 전략으로는 더 이상 세계와 경쟁할 수 없다. 이제는 지방에 실질적인 권한을 이양하고, 자율적 재정 기반과 자치 역량을 강화하는 '창조적 혁신과 시스템 전환'이 필요하다. 아울러 지역의 고유한 특성과 정체성을 살리기 위한 전략과 시대 변화에 부합하는 지역 공간의 재구조화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또 하나 중요한 한 가지는, 지역 주민들의 의지와 판단이 반영되는 충분한 합의 절차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만 중앙과 지방은 수직적 관계를 넘어 동반자로서 손을 맞잡고, 세계를 무대로 나아갈 수 있다. 지금 이뤄지고 있는 통합 논의 역시 이러한 맥락 속에서 다뤄질 때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새해를 다시 시작하는 이 시점에서 우리는 엄숙히 물어야 한다. "무엇을 합칠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권한과 재정, 그리고 창의적 결정권이 이전되지 않는 통합은 이름만 바꾼 형식이자 허울일 가능성이 크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국가와 지방 간 제로섬 게임을 넘어, 물리적 결합을 초월한 창조적 시스템 전환이다.
이은학 대전정보문화산업진흥원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고용노동부 천안지청, 흥타령춤축제서 안전문화 캠페인
  2. 영화 ‘암살자(들)’ 논란 확산 대전시도 불똥튀나
  3. 민선 9기 허태정號 100일…민생·경제 연착륙 호평
  4. 6일부터 국회 국정감사 돌입… '충청발전' 지렛대로 활용해야
  5. [새인물] 박재현 제71대 천안서북경찰서장
  1. 충남대 노사 갈등 돌파구 찾나…학장협의회 중재안 제시
  2. 천안세무서, 징수와 복지를 연계한 '포용적 체납관리'로 민생경제 회복 지원
  3. 고용노동부 노동감독관 고소·고발 급증… 5개월 만에 작년수준 근접
  4. 화려한 불꽃 내려놓고 생태 지켰다…대전효문화뿌리축제 성료
  5. 온누리상품권 부정유통 117건 잡았지만… 환수 확정은 11곳

헤드라인 뉴스


트램 급전방식 연내 결론날까… 허태정 "가능한 올해 안 결정"

트램 급전방식 연내 결론날까… 허태정 "가능한 올해 안 결정"

대전 도시철도 2호선 트램의 급전방식 등 주요 쟁점이 올해 안에 결론 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허태정 대전시장이 민선 8기 당시 변경된 급전방식 등을 다시 점검한 뒤 가능한 연내 대전시의 입장을 정리해 발표하겠다는 뜻을 밝혔기 때문이다. 허 시장은 6일 대전시청에서 열린 취임 100일 시정 브리핑에서 "트램은 대전시민의 관심이 가장 큰 교통 문제이고 사업비 규모도 가장 큰 만큼 대전시에서도 중요한 사안"이라며 "급전방식 등은 가능한 연내 결정해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민선 7기 당시 트램 사업을 추진했던 허 시장은 민선 8기에..

5년 만에 첫 삽 뜬 대전 중부소방서…내년 예산이 관건
5년 만에 첫 삽 뜬 대전 중부소방서…내년 예산이 관건

대전 중부소방서 신설사업이 추진 5년여 만에 첫 삽을 뜨면서 사업이 본궤도에 올랐다. 그동안 대전시 예산 편성 과정에서 사업비 확보에 어려움을 겪으며 착공이 거듭 지연됐던 만큼, 2028년 준공을 위해서는 내년도 공사비 확보가 최대 관건이 될 전망이다. 대전 5개 자치구 가운데 중구만 유일하게 소방서가 없어 주민들의 우려가 컸던 만큼 민선 9기에는 차질 없이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6일 중도일보 취재결과, 대전소방본부는 2028년 중부소방서 신설을 목표로 지난달 21일 착공에 들어갔다. 연내 터파기 공사를 마친 뒤..

`표 구하기 힘든` 대전 한화생명볼파크… 3000석 늘려 2만석으로
'표 구하기 힘든' 대전 한화생명볼파크… 3000석 늘려 2만석으로

대전 한화생명볼파크의 좌석 부족 문제가 해소될 전망이다. 프로야구 한화이글스의 흥행에 비해 관람석 규모가 부족한 탓에 개장 첫해부터 매진이 잇따랐던 만큼 팬들의 관람 여건도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6일 한화이글스와 대전시에 따르면 현재 1만 7000석 규모인 한화생명볼파크 관람석을 3000석 늘려 2만 석으로 확대한다. 양측은 이날 볼파크 프레스센터에서 증축을 위한 투자 협약을 체결했다. 증설 배경에는 지난 시즌 내내 이어진 심각한 좌석난이 있다. 새 구장 개장과 함께 관중이 몰렸지만 이를 받아낼 좌석은 1만 7000석에 그쳤다...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한글, 예술이 되다’ ‘한글, 예술이 되다’

  • 대전 한화생명볼파크 3000석 증축 추진 대전 한화생명볼파크 3000석 증축 추진

  • 지상군페스티벌 ‘북적북적’ 지상군페스티벌 ‘북적북적’

  • 러닝 열풍인데 천변길 관리는 ‘미흡’ 러닝 열풍인데 천변길 관리는 ‘미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