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칼럼] 같은 우라늄, 다른 운명 - 테헤란과 서울의 갈림길

  • 오피니언
  • 사이언스칼럼

[사이언스칼럼] 같은 우라늄, 다른 운명 - 테헤란과 서울의 갈림길

조재완 한국원자력연구원 경제성분석실 선임연구원

  • 승인 2026-05-14 17:21
  • 신문게재 2026-05-15 18면
  • 임효인 기자임효인 기자
clip20260513181909
조재완 한국원자력연구원 경제성분석실 선임연구원
지난 몇 주간 갈 곳을 잃은 선박들이 호르무즈 해협에서 표류하는 동안 미사일과 드론이 하늘을 갈랐다. 이번 충돌의 한가운데 이란이 보유한 농축 우라늄이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란이 가진 것이 핵무기도, 무기급 우라늄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무기급 우라늄은 농축도가 통상 90% 이상이지만, 이란의 우라늄은 60%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도 미국과 이스라엘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60%에서 90%로 가는 마지막 구간이 기술적으로 매우 짧기 때문이다.

자연 상태의 우라늄은 대부분 무거운 우라늄-238이고, 핵분열을 일으키는 우라늄-235는 0.7%에 불과하다. 우라늄-235는 느린 중성자에 부딪히기만 해도 둘로 쪼개진다. 과학자들은 이를 표면장력으로 겨우 모양을 유지하는 큰 물방울에 비유한다. 작은 충격에도 두 방울로 갈라지는 물방울 말이다.

그러나 우라늄-235만 골라내는 일은 만만치 않다. 가장 보편적인 방법은 원심분리기다. 우라늄을 불소와 결합한 기체 상태로 만든 뒤, 분당 5만 회전 이상으로 돌리는 거대한 원심분리기에 넣는다. 회전체 바깥은 음속을 넘는 초당 500m로 움직이며 엄청난 힘을 받는데, 전투기 조종사가 견디는 9G의 무려 11만 배가 넘는 가속도다. 무거운 우라늄-238이 바깥으로 밀려나면, 중심부에 우라늄-235 농도가 미세하게 높아진다. 다만 한 번의 분리로 얻는 농도 차이는 극히 미미해 수천 개의 원심분리기를 연속으로 연결하고, 이 과정을 반복해야 의미 있는 농축이 가능하다.

발전소에서 쓰는 우라늄은 농축도 3~5%, 이른바 저농축 우라늄(LEU)이다. 20% 이상은 고농축(HEU)으로 분류돼 강한 국제 제재 대상이다. 이란이 보유한 60%는 무기급(90%)과 산업 기준선(20%) 사이의 회색지대에 있다. 자연 상태 0.7%에서 60%로 가는 길은 농도가 85배 오르는 험한 산길이지만, 60%에서 90%로 가는 마지막 구간은 1.5배에 불과하다. 이란의 60%를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이유다.

최근 한국과 세계가 주목하는 새로운 농축도가 있다. 5%와 20% 사이, 이른바 헤일루(HALEU)다. 우리말로는 고순도 저농축 우라늄. '고'와 '저'가 한 이름에 모순처럼 있지만 의도된 작명이다. 법적으로는 분명 20% 미만의 저농축이지만 그 위쪽 끝, 통상 19.75%까지 끌어올린 연료를 가리킨다. 차세대 소형모듈원자로 대부분이 HALEU를 요구한다. 작은 노심에서 더 오래, 더 효율적으로 타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는 농축시설이 없다는 점이다. 한미 원자력협정에 따라 연구 목적 외의 농축이 불가능하다. 그동안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대형 원전용 저농축 우라늄은 시장에서 안정적으로 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HALEU는 사정이 다르다. 전 세계 상업용 HALEU의 사실상 유일한 공급자였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서방 시장에서 차단되면서, 미국은 2024년 5월 러시아산 우라늄 수입을 금지했다. 차세대 원자로 회사 테라파워는 연료 공급이 끊기며 가동 일정을 2년 미뤄야 했다.

우리 차세대 원자로 산업이 직면한 진짜 문제는 노형이 아니라 연료다. 서방의 주요 핵연료 공급자 미국, 캐나다, 프랑스, 일본, 영국이 결성한 '삿포로 5'는 러시아 없는 HALEU 공급망을 만들기 위한 동맹이다. 다행히 한국수력원자력은 지난해 미국 농축기업 센트러스와 10년 장기 공급계약을 맺고, 농축시설 신규 투자까지 참여하기로 했다. 농축을 직접 할 수 없는 우리에게 남은 길은 분명하다. 해외 시설의 지분을 확보해 장기계약으로 묶는 것,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가 비축시설과 석유화학으로 버티는 방식과 같다.

같은 우라늄을 두고, 테헤란은 농축 권리를 둘러싼 갈등 속에서 제재와 충돌의 길로 향했고, 서울은 동맹과 협력을 통해 산업과 번영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같은 기술이 한쪽에서는 전쟁의 도화선이 되고, 다른 한쪽에서는 산업의 기반이 된다. 이 갈림길을 가르는 것은 결국 신뢰다. 한국이 쌓아온 비확산 체제의 신뢰, 차세대 원자력 시대에서 가장 중요한 자산일지 모른다. 조재완 한국원자력연구원 경제성분석실 선임연구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건고추 100%로 속여 판 충북 옥천 식품업체 대표, 벌금 8억 7000만원 선고
  2. '읍면 공동주택' 1.2만 호 무산 여파… 세종시 후속 대책 추진
  3. 올 가을 행정수도특별법 결실 맺나… 연내 제정 기대감 커져
  4. “건물 폭파하겠다” 방위사업청서 소란 피운 여성 도주…경찰 추적
  5. 대전맹학교, 휠체어 리프트 갖춘 대형 전기버스 도입
  1. [날씨] 광복절 연휴 첫날 충청권 흐리고 비…오후부터 곳곳 소나기
  2. '한글 비문'에 담긴 광복의 기쁨… 대전 속 잊힌 독립 유산을 아시나요?(영상있음)
  3. 대전시가족센터·대전오페라단 업무협약
  4. 세종 9개 파크골프클럽 '화합의 샷'
  5. 대전사랑메세나·동안미소한의원, 아이들의 건강한 성장 위한 의료품 지원

헤드라인 뉴스


`한글비문`에 담긴 광복의 기쁨… 대전 속 잊힌 독립 유산을 아시나요?(영상있음)

'한글비문'에 담긴 광복의 기쁨… 대전 속 잊힌 독립 유산을 아시나요?(영상있음)

1945년 8월 15일 조국 독립의 감격은 대전 도심 곳곳에 깊은 역사적 족적을 남겼다. 그중에서도 시민들의 자발적인 성금으로 세워진 대전의 대표적 광복 상징물이 마침내 역사적·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시 문화유산으로 결실을 맺었다.대전시는 제81주년 광복절을 앞두고 중구 보문산에 위치한 '대전 을유해방기념비(乙酉解放記念碑)'가 대전시 문화유산으로 정식 등록됐다고 밝혔다.을유해방기념비는 1946년 8월 15일 광복 1주년을 맞아 대전부민(시민)들이 십시일반 뜻을 모아 대전역 광장에 세운 약 3m 규모의 비석이다. 다른 지역의 해방기념..

올 가을 행정수도특별법 결실 맺나… 연내 제정 기대감 커져
올 가을 행정수도특별법 결실 맺나… 연내 제정 기대감 커져

행정수도특별법 연내 제정 가능할까. 앞서 범국민적 연대 조직이 닻을 올린 데 이어 전국적인 공감대 형성을 위한 움직임이 가시화되면서, 법안 제정을 실현할 긍정적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특히 시민사회의 협력과 전국 시·도지사들의 지지를 발판삼아 본격 법제화 행보에 돌입한 가운데, 올 가을 정기국회에서 '특별법 제정'이란 결실을 거둘 수 있을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조상호 세종시장은 14일 서울에서 열린 제61차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 총회에서 행정수도특별법의 연내 제정을 위한 전국적 지지를 요청하고 나섰다. 조 시장은 "올해는 20여..

충남대·공주대 통합대학 명칭 ‘충남대’로… 법적 대표주소 대전
충남대·공주대 통합대학 명칭 ‘충남대’로… 법적 대표주소 대전

통합을 추진중에 있는 충남대와 국립공주대의 통합대학 밑그림이 구체화 됐다. 통합대학은 '충남대학교'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법적 대표주소는 대전으로 정하되, 대전과 공주에 통합본부를 두고 캠퍼스별 특성에 따라 주요 행정기능을 분담하는 방식으로 운영될 전망이다. 양 대학은 14일 세종공동캠퍼스 학술문화지원센터에서 양교 총장과 통합준비위원회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그동안의 통합 추진 경과와 주요 쟁점에 대한 협의 결과를 중간 발표했다. 이번 조정안에 따라 통합대학의 교명은 충남대학교로, 법적 대표주소는 대전으로 정해졌다. 통합본부는 대전..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막바지 피서객 몰린 계룡산 계곡 막바지 피서객 몰린 계룡산 계곡

  • 백중사리 기간에 침수된 보령시 오천항 일대 백중사리 기간에 침수된 보령시 오천항 일대

  • ‘자동차 불법 튜닝 안됩니다’ ‘자동차 불법 튜닝 안됩니다’

  • 대전시-더불어민주당 대전시당 당정협의회 대전시-더불어민주당 대전시당 당정협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