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소수민족 취재탐방기] 결혼하고도 2년간은 한집에 살지 않아 '이색적'

[중국 소수민족 취재탐방기] 결혼하고도 2년간은 한집에 살지 않아 '이색적'

43. 경로사상이 투철한 포의족(布依族)

  • 승인 2018-03-23 00:00
  • 신문게재 2018-03-23 1면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소수민족1
사진=인터넷 캡쳐
#촌장의 출행 결심

소수민족 포의족(布依族 촌에 들어온 지 10여일쯤 되었을 때다. 집안 분위기가 무겁게 갈아앉아 있는 것이 심상치가 않다. 그날 저녁 식사를 마치고 촌장이 진지한 얼굴로 말을 걸어 온다.



"나는 내일 지방으로 떠납니다."

"무슨 얘기인지 자세히 좀……?"



"내년에 딸아이가 대학을 가야하고 또 아들 아이도 고등학교엘 가야 하는데 지금 형편으로는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농사 지어서 식생활은 그럭저럭 해결되고 있지만 말입니다."

갑자기 가슴이 갑갑해지며 무언가가 무겁게 짓누르는 기분이 들었다. 부인도 이미 광동성 광저우에 있는 모 공장에 따꿍(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의 중국식 표현)으로 나가 있다고 했는데, 촌장까지 떠나가면 네 식구뿐인 이 가족은 뿔뿔이 흩어지는 이산가족이 되는 것이 아닌가. 아버지가 집에 있기에 일주일에 한번씩은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이 두 남매의 심정은 또 어떠할까.

방 한 쪽 구석에서 훌쩍이는 딸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아빠와의 이별을 슬퍼하는 마음과 경제적인 어려움에 대한 설움 또한 복합적으로 작용했으리라.

"광동성 어느 지방으로 갈 것인지 결정은 되었소?"

"광저우에 친구가 따꿍으로 있습니다. 어느 공장이든 가면 일자리는 있다고 들었습니다."라며 길게 한숨을 내쉬는 촌장의 얼굴이 어둡기만 하다.

"객지에 나가 노동을 하는 것보다 부근에서 장사를 하는 것이 더 쉬운 일이 아닐까요?"

"저 같은 농부출신이 장사는 어떻게 합니까? 그리고 또 장사를 하려면 밑천이 있어야 하는데 가진 재산이라곤 한 푼도 없습니다."

공연한 질문을 한 것 같아 부끄럽기조차 했다.

이튿날은 새벽부터 식구들이 부산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촌장의 출행 때문이려니 생각되었지만 이방인인 필자로서는 어떤 자세로 있어야 할 지 난감하기만 했다. 촌장의 보따리라는 것이 또 가관이었다. 커다란 쌀푸대자루가 가방을 대신한 것으로써 옷가지며 일용품들을 집어넣고 중간에 멜빵을 만들었을 뿐이다.

방안에서 아들 딸을 세워놓고 무언가 고별사를 진행 중인 모양으로 아이들의 훌쩍이는 소리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모르긴 해도 아빠가 없지만 너희들끼리 자주 만나 서로 돕고 잘 지내거라. 먹는 것 잘 챙겨 먹고 건강에 유의하거라 등 등…… 아버지가 자식들에게 들려줄 수 있는 얘기들을 상상하고 있는데, 촌장의 형과 형수가 언제 왔는지 목례를 하며 다가 온다.

이미 그들도 촌장의 출행을 알고 있었겠기에 인사차 왔겠거니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의 얼굴모습은 무척 굳어 있었다.

촌장을 큰 목소리로 불러낸다. 허둥지둥 뛰어 나오는 모습이 보이고 형님 내외분을 보자 선채로 공손히 절을 한다.



소수민족2
사진=인터넷 캡쳐
#형님의 만류도 뿌리치고

정확하게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그들의 대화인즉슨 "꼭 떠나야 되겠니?"

"네 ,형님"

"내가 얘기 했잖느냐, 나와 함께 돼지를 전문적으로 키워보자고 말이다."

"형님,저는 우선 당장이 급합니다."

"큰 애 대학 가는 문제는 내가 도와준다고 하잖았느냐. 다시 한 번 생각해봐라. 객지에 나간다고 다 돈 번다는 보장이 어디 있느냐. 고생만 하다가 끝날 터인데. 행여나 병이라도 걸리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질 수도 있고"

옆에서 형수가 한마디 거든다.

"그렇게 하세요. 저 아이들도 아버지가 떠나고 없으면 어디다가 마음을 부칩니까. 한 며칠 더 생각해 보세요."

이러는 사이 동민들이 하나둘씩 모이더니 금새 10여 명으로 불어났다. 그리고는 하나같이 촌장의 출행을 반대하며 만류하는 모습들이다.

이쯤에서 필자도 더 이상 참기 어려워 한 발자국 나섰다.

"나 역시 촌장이 광동성으로 떠나는 것에 반대합니다.

큰 힘은 없지만 큰 아이가 내년에 대학 합격하면 입학금만큼은 내가 책임질 것이오."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동민들의 박수소리가 요란하다.

내 얘기에 용기를 얻었음인지 동민들은 촌장에 대해 더욱 강력하게 만류하고 나섰다.

촌장이 비실비실 문지방 쪽으로 가더니 쓰러지듯 주저앉아 버린다. 그리고는 고개를 숙이고 울기 시작한다. 잠시 후에는 양 어깨까지 들썩이며 엉엉 어린아이처럼 오열을 터뜨린다. 두 아이가 포개듯 아버지의 어깨에 엎어지며 같이 따라 운다.

동민들도 소리 없는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돌리고 선다.

필자 역시 뜨거운 액체가 얼굴로 번지고 있음을 뒤늦게 느끼면서 뒤쪽 냇가로 발을 돌렸다.

결국 그날의 촌장 출행은 중지되었다. 그리고 대낮부터 마을사람들이 모여 술추념이 시작되었다.

이들의 모습에 화답이라도 하는 듯 그날따라 매미들의 합창소리가 더욱 요란했다.

이렇게 사흘이 지나고 촌장은 이미 결심한 일을 바꿀 수 없다면서 새벽길을 택해 마을을 떠나고 말았다.

떠나기 전 날 저녁, 며칠 후엔 필자도 떠날 예정이라고 밝힌 후, 그동안 고마웠다고 인사를 하며 봉투를 건네주었었다. 소수민족 촌에 갈 때마다 하루에 50元으로 계산해서 30일이면 1500元을, 30일 이상 40일이면 2000元을 내놓곤 했었다.

평소대로라면 2000元을 주었을 것이지만 되돌아갈 차비만 내놓고 지갑을 통틀어 4300元을 건네 주었다.

촌장은 봉투를 받는 즉시 안을 들여다 보더니 두 눈을 휘둥거리며 놀라워했다. 그리고는 조금도 안 받으면 내가 섭섭해 할 터이므로 1000元만 받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봉투가 몇 번이나 오고 가고 하던 끝에 결국은 그의 주머니에 들어갔지만 끝까지 그는 너무 지나친 거금이라며 황송해 했다.

그리고 이튿날 새벽 마을 사람들이 일어나기도 전에 떠나고 말았던 것이다.

어디까지 배웅하고 돌아왔는지 모르지만 두 남매는 오전 11시가 다 되어서야 어깨가 축 처진 채 집으로 돌아왔다.

아들 녀석은 집에 돌아와도 하루종일 마당 한 쪽에 앉아 두 무릎 속에 얼굴을 파묻고 일어서질 않는다. 무척 내성적인 성격인 녀석으로서는 아버지와의 이별이 보고 싶은 엄마 생각과 함께 무척 충격적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딸 아이는 그래도 나이가 들어서인지 억지 미소라도 지어보려고 애를 쓰는 눈치가 역력했다.

이들 두 남매를 바라보면서 내일은 5일장이 서는 날이니 둘을 데리고 나가 맛있는 것이라도 사 줘야지 하고 마음을 먹었다.

촌장이 떠난 것을 뒤늦게 알게 된 그의 형님이 뒷짐을 진 채 끌끌 혀를 차며 십여 차례나 마당을 빙빙 돌다가 돌아갔고, 부락민들도 차례대로 들러 두 남매를 위로하고 돌아가는 모습들이다. 비교적 부유한 편인 촌장의 형은 그날 저녁 필자와 두 조카를 위해 특별한 음식을 준비했다고 통지해 왔다. 그러나 맛있는 저녁식사 보다 더 재밌는 볼거리가 그날 저녁 발생했다.



소수민족3
사진=인터넷 캡쳐
#포의족(布依族)의 결혼 풍습

소수민족 포의족(布依族)의 결혼풍습은 신기하기만 하다.

결혼을 하고도 2년 간은 한 집에 살지 않는 것부터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결혼식 날도 재밌는 풍습을 볼 수 있다.

신부의 오빠가 있으면 오빠가 신부를 업고 나가고, 그렇지 않으면 신랑 쪽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가 신부를 업고 나온다.

거리가 멀면 친구들이 번갈아 돌아가며 업고 신랑집까지 온다. 이 때 신부를 업는 사람을 '라야거'라고 부른다.

신랑집에서 결혼식을 마치고 하룻밤을 자고 난 신부는 그 이튿날 다시 신부집으로 돌아간다.

그런 후 명절이나 농번기 때, 다시 말해 일손이 모자랄 때가 되면 신부가 신랑집에 와서 일손을 거둔다.

이렇게 며칠 정도 신랑집에 있다가 다시 신부는 친정으로 돌아가곤 하는데 청춘 남녀들의 그리움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애틋해지게 마련.

2년쯤 지난 후에야 신랑이 신부를 데리러 오게 되는데 바로 그 날 저녁 한 집도 아니고 두 집에서 이웃 동네 신랑 두 명이 신부를 데리러 오는 날이라는 것이다.



#재밌는 풍습 "戴假?"

假?란 죽순 껍질로 만든 여자의 모자를 일컬음이다.

모자 둘레는 청색천으로 둘둘 감겨 있는 것이 꽤 예쁘게 생겼다.

신부를 데리러 오는 신랑은 반드시 이 모자를 숨겨갖고 온다. 양가 부모들이 합의하여 정해진 날이지만 신랑은 몰래 신부집에 숨어들어야 한다. 그러자니 자연히 밝은 대낮이 아니라 캄캄한 밤이 될 수밖에 없다.

마을 사람들 역시 잔뜩 호기심을 갖고 집 주변에 숨어서 신랑이 언제 신부에게 모자를 씌우고 업고 나가는지 보고 싶어 한다. 신부집에 몰래 들어온 신랑은 캄캄한 속에서 신부를 덥석 안고 꽁꽁 묶여있는 신부의 머릿단을 풀어주어야 하고 머리를 다 푼 다음에 갖고 온 모자를 씌워주어야 하는데 머리가 잘 풀어지지 않거나 신부가 심한 반항을 하게 되어 제대로 풀지 못하면 일년 후에 다시 와야 되기 때문에 신랑은 있는 힘을 다하고 지혜를 짜내어 신부의 머리를 풀려고 애를 쓴다.

모자를 씌우는 데까지 성공하면 그것을 戴假?라 하고, 신부가 假?를 썼다는 것은 친정 집 생활이 끝났다는 것을 뜻한다.

구경꾼들도 이때쯤이면 방이고 거실이고 몰려들어가 박수를 치며 즐거워한다.

필자 역시 구경꾼들 틈에 끼어 이 광경을 보게 되었다.

신부는 어쩌다 길에서 마주치면 유별나게 부끄럼을 타던 꾸냥이었다. 그냥 나이 어린 처녀인줄만 알았는데 2년 전에 결혼을 한 후 친정에 돌아와 있던 18세의 새댁이었다는 것이다.

신랑은 신부보다 한 살이 위라고 했다.

假?를 씌우는데 성공한 신랑이 신부를 업고 대문 밖까지 나갔다가 다시 돌아오자 집안 곳곳이 환하게 불이 밝혀지고 준비한 음식들을 나누며 잔치판이 벌어졌다.

신부는 친정 집에서의 마지막 날 밤을 이웃들의 축복 속에 보내고 이튿날 신랑을 따라 시댁으로 들어가게 된다.

친정집을 떠날 때는 서럽게 서럽게 울며 부모님께 하직인사를 한다. 낳아주고 길러주신 부모님께 감사해 하는 모습이다. 어른을 공경하고 특히 부모님께 효도를 다하는 뿌이족의 아름다운 미풍양속이 아닐 수 없다

이튿날은 떠나는 신부를 전송하기 위해 부락사람들이 일찍부터 몰려와 인사를 나눈다. 신부를 보내며 어느 한 사람도 빈 손으로 오는 법이 없다.

무엇이든 선물로 주고 싶어서 집안에 별별 물건을 다 들고 나온다. 물건 대신에 홍빠오(붉은 색 봉투로 그 안에는 돈을 넣어 주는데, 주로 명절 때나 결혼 축의금 전달 시 사용한다.)를 건네는 사람도 있다.

돈 봉투라 해서 많은 돈이 들어있는 것은 아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보통 2元 정도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신랑과 신부는 삐엔땅이라고 부르는 긴 작대기 양 쪽 끝에 짐을 매달고 길을 떠난다.

(삐엔땅(扁?)이란 우리나라의 지게를 연상하면 되는데 긴 막대기를 목 뒤 어깨에 걸친 후 막대기 양 끝에 물건들을 균형 있게 매달고 다니는 중국인들의 전통적인 습관이다.)

신부가 입던 옷가지며 생필품과 시댁에 보내는 음식 따위 등이 전부지만 신랑 신부의 어깨가 축 처질 정도로 큰 부피였다.

부모와 정든 사람들과 석별의 아쉬움 때문에 신부는 울고 있지만 신랑은 싱글벙글 미소가 넘쳐 흐른다. 결혼을 하고도 2년 만에야 색시를 데리고 가는 판이니 그 기분 알만도 하다.

소수민족4
사진=인터넷 캡쳐
#꾸냥 茶의 깊은 맛

신랑 신부가 떠나는 모습을 지켜 본 후 돌아서려는데 한 사나이가 가까이 다가오며 차 한잔을 대접하고 싶다며 이끈다. 그의 집은 마을 끝에 자리잡고 있었다. 집은 작은데 마당은 엄청나게 컸다.

마당 한 쪽에 커다란 평상이 놓여있고 딸인 듯 싶은 처녀가 차를 날라 온다.

차 맛은 조금 텁텁한 것 같았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입 안에서 오래오래 향긋함이 가시질 않는다.

"茶 맛이 어떻습니까?"

"처음 느끼는 맛인데요. 은은한 것이 참 좋습니다."

"이 茶는 우리 뿌이족이 자랑하는 꾸냥茶라는 것입니다."

"이름이 재미있군요. 꾸냥茶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네, 글자 그대로 시집을 가지 않은 꾸냥들이 직접 따서 정성을 다 한 茶라는 것이죠. 가실 때 많이는 못 드리고 조금은 드릴 수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제가 한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네? 저에게 무슨 부탁을……?"

얘기를 듣고 보니 조금은 난감한 부탁이었다.

이 아저씨는 아들이 없고 딸만 셋이 있는데 얼굴이 못생겨서 청혼해 오는 청년도 없이 나이만 먹었다고 한탄을 한다.

제일 큰 딸이 21세, 둘째가 18세, 셋째가 16세라면서 세 명 모두가 대도시로 나가 공장 같은 곳에 취직을 하고 싶은데 아는 사람이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광동성에 나가면 한국인 공장도 많다고 얘기를 들었다. 혹시 아는 공장이 없겠느냐. 있으면 소개를 해주면 고맙겠다는 요지였다.

도시엔 나가본 일도 없는 딸들이어서 썩 맘이 내키지는 않지만 본인들이 무척 원하고 있으니 그 소원 풀어주고 싶다며 꼭 좀 도와달라며 애걸조로 나온다.

선뜻 대답을 못하고 꾸냥차만 연거푸 마셔 대다가 "내가 돌아가면 알아보겠습니다. 꼭 믿지는 마십쇼"라고 말 하려니 무척 힘이 들었다.

(약 3개월 후 필자는 惠州의 모 회사에 큰 딸을 소개, 공장일을 하게 되었고, 일년 후에는 큰 딸이 또 두 동생을 불러 공장에 취직을 시켰다는 얘기를 들었다.)

<다음주에 계속>

김인환 시인

김인환작가-118
김인환 시인은 시집<님의 마음에:1968년> (비가 내리는 :1970년) (다시 한밤에 돌아와:1973년) (시음집:1978년:한국 최초의 음반시집) (바람의 노래:1992년) (저 높은 곳을 향하여:1998년) (낙엽이 되어보지 못한 그대는;2013년) 등의 시집과 방송칼럼집 (내일을 향하여), 시론집으로 (마두금을 어디서 찾나) 등이 있다. 1972년 부산 최초의 시 전문지를 발간한 바 있으며 MBC, KBS, 한국경제 등에서 30여 년 간 언론인으로 활약했다. 부산 크리스천 문인협회 회장, 중국 광동성 한인문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 문인협회, 현대시인협회,국제 펜클럽, 대전 펜클럽 회원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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