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광장] 지방자치의 얼굴, 조례의 선진화

  • 오피니언

[목요광장] 지방자치의 얼굴, 조례의 선진화

손종학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승인 2019-01-09 08:47
  • 방원기 기자방원기 기자
손종학 01086489915
손종학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동서고금의 어느 국가이든, 나라다운 나라로 기틀을 잡아가는 시점에서 해야 하는 중요한 과업이 있다. 그것은 국가의 체계를 정하고 그 체계를 유지하기 위한 제반 법령을 정비하는 일이다. 로마가 조그만 언덕 국가에서 출발하여 세계를 호령하는 제국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겪은 법의 변모를 살펴보면 이 점이 더욱 뚜렷해진다.

BC 451~450년경 지배층인 귀족계급에 속하는 신관들의 전유물로 되어 있던 결정과 절차를 모아 로마 최초의 성문법인 12표법이 반포되었다. 12표법은 당시까지 성문화 없이 입으로만 전해오던 법을 행정관들이 멋대로 적용하자 이를 비난해온 평민의 요구에 따라 만든 것으로 청동에 새겨서 로마시 광장에 설치, 모든 사람이 그 내용을 알게 함은 물론 이를 통하여 권리관계를 명확히 하고, 권리구제의 수단으로 활용되게 하였다.



그리고 이 시기에 로마는 초기 도시 국가에서 벗어나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하고 본격적인 공화정으로 들어서면서 세계 국가로의 발판을 마련한다. 즉 법의 선진화를 통한 국가의 선진화다.

어디 서양만 그러할까? 우리도 마찬가지다.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세운 세력이 가장 심혈을 기울인 것도 나라의 근본 틀인 법의 제정으로 ‘경국대전’의 제정과 반포가 바로 그것이다. 이 경국대전 반포로 조선은 국가의 기본 시스템을 정비하고 본격적인 국가로의 틀을 다질 수 있었고, 이는 세계사상 그 유래를 찾기 어렵다는 단일 왕조에 의한 500년 왕국을 이루는 토대가 됐다.



시야를 돌려 우리가 터 잡고 일상을 영위해가는 지역을 바라보자. 나라의 근본 운영이 헌법과 법률에 따라 이뤄진다면, 지방자치단체는 조례에 따라 이뤄진다. 조례를 통해 지방자치단체의 정체성이 형성되고 시정과 도정의 주요 활동 방향과 내용이 결정된다. 조례의 중요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필자가 책임을 맡은 충남대학교 법률센터에서는 지난해 말 각계의 전문가를 모시고 대전과 충남의 조례를 검토해보는 전문 컨퍼런스를 개최한 적이 있다. 많은 문제점이 있음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별다른 의미도 없고 활용되지도 않는 조례, 상호 모순되거나 충돌하는 조례가 산재해 있음은 물론 법 체계성과 내용도 부실하기 짝이 없는 것이 부지기수였다.

또한 정말 필요한 분야임에도 조례화 되지 않은 소위 '빈 구멍'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한마디로 민망한 수준이었다.

지방자치의 성숙을 위하여, 지역의 발전을 위하여 이대로 둘 수는 없다고 본다. 그러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먼저 지방자치단체와 지방의회에서는 공동으로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기존 조례 현황과 문제점을 파악하고, 이를 재정비하는 작업에 착수하여야 할 것이다. 그래서 모순, 저촉되는 조례, 법의 체계성에 어긋나는 조례, 유명무실한 조례에 대한 대대적인 손질을 가해야만 한다.

그러는 한편 신규 조례 제정 시의 프로세스를 좀 더 전문화할 필요도 있다. 예를 들면, 순수한 의원 발의이든, 행정부 관여 발의이든, 의회에서의 최종 조례 의결 과정에 앞서 관련 분야의 전문가는 물론, 법률 전문가의 심사 내지는 스크린 과정을 반드시 거치게 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조례 내용의 충실화를 꾀할 수 있음은 물론 법률 전문가의 스크린을 통한 체계성 유지와 최고법인 헌법을 위시한 전체 법률과의 조화 등을 좀 더 도모할 수 있게 되는 장점이 있다.

다음으로 조례의 발의 및 제정 주체라고 할 수 있는 시의원과 도의원 등의 조례 제정과 의원 평가와의 연계성 강화책 마련이다. 이를 위하여 우선 조례 제정의 성과를 시민단체 등의 의원 평가에 필수적으로 반영하는 방안을 제도화하는 한편, 더 나아가서는 각 정당의 의원선거에서의 공천 시에도 이를 주요한 공천 결정 기준으로 삼을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여기서 그쳐서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가 없다. 자칫하면 의원들이 성과 내기에 급급해 조례의 제정 건수만 양산해낼 부작용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오히려 하지 않느니만 못한 결과의 초래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역시 법률가 등을 포함한 일단의 전문가 그룹에 의한 조례의 내용 평가까지 수반돼야 비로소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가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러한 내용 등이 지역 언론 등을 통해 시민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돼 시민들이 의원과 시장, 도지사의 능력과 성실성을 판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할 때 무의미한 조례의 생성을 저지할 수 있음은 물론 조례의 질적 충실화를 도모할 수 있고, 이는 훌륭한 능력과 인품을 지닌 양질의 의원 배출로 이어지는 선순환 효과를 낳을 수 있다. 이러한 제반 정책들이 함께 추진될 때 우리 충청권의 지방자치가 한층 성숙해지고, 타 지방자치단체에 견주어도 전혀 부끄럽지 않고 자랑스러운 지방자치단체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헌법과 법률이 그 나라의 얼굴이라면 조례야말로 지방자치단체의 얼굴이자 상징이다. 아니 더 노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각 지방자치단체의 질적 수준을 판가름하는 중요한 기준이라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새해 벽두 모두 바쁘고, 한해 지역 살림을 위해 많은 준비를 해야 할 시점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조례의 선진화 작업도 다른 과업 못지않게 중요한 과업임을 깊이 인식하고 조속히 정비 작업에 임해주기를 시민의 입장에서, 그리고 법률 전문가의 입장에서 제언하고 싶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방학 땐 교사 없이 오롯이…' 파업 나선 대전 유치원 방과후과정 전담사 처우 수면 위로
  2. 제1회 국제파크골프연합회장배 스크린파크골프대회 성료
  3. 국제라이온스협회 356-B지구 강도묵 전 총재 사랑의 밥차 급식 봉사
  4. 정부 유류세 인하조치 이달 말 종료 "기름 가득 채우세요"
  5. 대전사랑메세나·동안미소한의원, 연말연시 자선 영화제 성황리 개최
  1. 육상 꿈나무들 힘찬 도약 응원
  2. [독자칼럼]대전시 외국인정책에 대한 다섯 가지 제언
  3. '경기도 광역교통망 개선-철도망 중심’ 국회 토론회
  4. [2025 충남 안전골든벨 왕중왕전] 전형식 충남도 정무부지사 "안전지식 체득하는 시간되길"
  5. 2025년 한국수어통역방송 품질 향상 종합 세미나

헤드라인 뉴스


국민의힘 대전-충남 통합 엇박자…동력저하 우려

국민의힘 대전-충남 통합 엇박자…동력저하 우려

대전 충남 통합이 내년 지방선거 승패를 결정짓는 여야의 최대 승부처 중 하나로 떠오른 가운데 국민의힘 내부에서 엇박자 행보가 우려되고 있다. 애초 통합론을 처음 들고나온 이장우 대전시장과 김태흠 충남지사 등은 이슈 선점 효과를 이어가기 위해 초당적 협력 의지를 보이고 있다. 반면, 보수 야당 지도부는 찬성도 반대도 아닌 밋밋한 스탠스로 일관하면서 정부 여당 때리기에만 방점을 찍는 모양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22일 대전 충남 통합과 관련 "통일교 게이트를 덮으려는 이슈 전환용은 아닌지, 대통령이 관권선거에 시동을 거는 것은 아..

대전의 스타 류현진.오상욱, 꿈씨 패밀리를 만나다
대전의 스타 류현진.오상욱, 꿈씨 패밀리를 만나다

대전의 대표 스포츠 스타인 한화이글스 류현진 선수·펜싱 국가대표 오상욱 선수와 꿈씨패밀리의 콜라보 굿즈가 23일 출시된다. 22일 대전시에 따르면 시는 7월 류현진 선수와 오상욱 선수의 소속사, 대전관광공사, 대전디자인진흥원과 함께 '류현진·오상욱×꿈씨패밀리 굿즈 공동브랜딩 상호협력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번 협약에 따라 대전디자인진흥원이 선수별 품목 디자인을 완성했고, 대전관광공사가 제작과 유통, 판매를 맡았다. "우주올림픽 준비 대작전! 꿈씨패밀리 지구 특훈 모험!"이라는 스토리텔링으로, 각 캐릭터는 선수 특유의 귀여움과 훈훈..

`국가상징구역` 마스터플랜 확정, 2026년 이렇게 조성한다
'국가상징구역' 마스터플랜 확정, 2026년 이렇게 조성한다

에이앤유디자인그룹건축사사무소의 '모두가 만드는 미래'가 국가상징구역 마스터플랜 국제공모 최종 당선작 선정의 영예를 안았다. 강주엽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장은 22일 오전 10시 30분 어진동 정부세종청사 중앙동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와 관련한 진행 상황과 결과를 공표했다. 이번 공모는 한국토지주택공사(사장 직무대행 이상욱. 이하 LH)와 공동으로 추진했다. 당선작은 행복도시의 자연 경관을 우리 고유의 풍경인 '산수(山水)'로 해석했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가적 풍경을 구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주요 특징은 △국가상징구역을 관통하는..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동지 팥죽 새알 만들어요’ ‘동지 팥죽 새알 만들어요’

  • 신나는 스케이트 신나는 스케이트

  • 성금으로 잇는 희망…유성구 주민들 ‘순회모금’ 동참 성금으로 잇는 희망…유성구 주민들 ‘순회모금’ 동참

  • 시니어 모델들의 우아한 워킹 시니어 모델들의 우아한 워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