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생의 시네레터] 사랑, 존재와 부재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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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생의 시네레터] 사랑, 존재와 부재의 기억

-<8월의 크리스마스>(1998)

  • 승인 2020-03-26 08:02
  • 이해미 기자이해미 기자
8월의 크리스마스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온 세상이 어지럽습니다. 1년 중 가장 활기차고 생동감 넘쳐야 할 3월 한 달이 숨죽인 채 지나가고 있습니다. 극장들도 어렵습니다. 관객들이 거의 찾지 않아 하루에 한 번 상영하고 마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영화처럼 움직이던 세상이 흡사 사진처럼 멈춘 것 같습니다. 신작들이 개봉을 미루고, 있다 해도 관객들이 영화관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어서 당분간 최근작보다 옛 작품들을 다시 생각해 보려 합니다.

얼마 전 군산을 다녀왔습니다. 겨우내 움츠린 생활을 떨치고 바람을 쐬려는 심산이었습니다. 점심 먹은 40년 노포 바로 길 건너에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를 찍은 '초원 사진관'이 있었습니다. 죽을 날이 다가오는 젊은 사진사와 주차 단속원 간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생생히 떠올랐습니다. 당대 최고의 배우 한석규와 풋풋한 신인 심은하의 호흡도 좋고, 잔잔하고 담담한 허진호 감독의 연출도 훌륭합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을 끝으로 세상을 떠난 유영길 촬영감독의 앵글이 빼어납니다. 생전에 그는 "좋은 구도는 없다. 그러나 나쁜 구도는 있다. 나쁜 구도란 작위적인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이 작품 역시 그러합니다. 모든 장면이 극히 자연스러운데 보는 이의 마음을 흔듭니다.

<8월의 크리스마스>는 사진에 대한 영화이기도 합니다. 사진은 존재에 대한 기억입니다. 그 시간 그곳에 있던 대상을 생각하게 합니다. 동시에 사진은 부재의 표지입니다. 시간도 장소도 대상도 변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한 장의 사진을 보며 '그땐 그랬었지.'라고 생각하며 아울러 '지금은 그렇지 않지.'하고 느끼게 됩니다. 영화는 사진사 정원의 이야기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주차 단속원 다림의 기억에 의한 것입니다. 그는 떠났고, 그녀는 남았기 때문입니다.

대체로 시간과 장소, 대상 중 오래도록 변하지 않는 것은 장소입니다. 그래서 특정한 장소는 시간과 사람을 기억하게 하는 기표(記標) 노릇을 합니다. 군산의 '초원 사진관'도 그렇습니다. 영화와 배우들과 그 시절의 일들을 떠오르게 합니다. 군산시 10대 관광지 중 한 곳이 되어 <8월의 크리스마스> 이후에 태어난 젊은이들도 많이 찾는 것을 보며 우리 고장 대전을 생각합니다. 소제동 철도 관사촌에 전국의 많은 젊은이가 찾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대전시나 대다수 시민은 별로 관심이 없다는 소식이 안타깝습니다. 흐르는 시간과 변하는 사람을 어찌할 순 없지만 잠시 머물러 기억하는 일은 귀하고 소중합니다.

김선생의 시네레터
- 김대중(영화평론가/영화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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