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난순의 식탐] 고등어는 오미(五味) 중 어떤 맛일까

  • 오피니언
  • 우난순의 식탐

[우난순의 식탐] 고등어는 오미(五味) 중 어떤 맛일까

  • 승인 2020-08-12 11:21
  • 신문게재 2020-08-13 18면
  • 우난순 기자우난순 기자
고등어
게티이미지 뱅크
정확히 25년만에 들렀다. 거의 그대로였다. 방이었던 곳을 터서 홀과 합쳤을 뿐, 벽에 걸린 액자, 주방과 이제 얼굴에 검버섯이 핀 주인 아주머니의 온화한 표정도 여전했다. 오미식당. 새삼스레 이 식당에 다시 가게 된 건 순전히 친구 덕분이었다. 친애하는 나의 친구가 보령에 모임이 있어 갔다가 볼일만 끝내고 일부러 내 고향 청양에 들러 밥을 먹었단다. 친구는 나의 추억이 서리서리 밴 청양 어느 골목의 식당에서 삼계탕을 맛있게 먹었다고 기쁜 소식을 전했다. 나날이 쇠락해가는 시골의 소읍으로서 간신히 명맥만 유지하는 곳. 허름한 버스터미널, 약국, 과일가게, 병원, 그리고 오래된 식당들. 덤덤하게 무심히 지나쳤던 풍경이었건만 친구는 나의 소중한 기억을 소환해 선물로 안겼다.

끝도 없이 내리는 장맛비 탓에 식당 안은 눅눅했다. 휴일 점심시간의 식당은 한가로웠다. 낮게 가라앉은 잿빛 구름과 빗소리 때문인지 옆에 앉은 젊은 남녀의 목소리가 유난히 컸다. 그 건너편에선 중년의 여인들이 막 나온 음식을 앞에 놓고 손을 모아 기도를 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를 굽어 살피시고…아버지께 청하오니 어서 빨리 이 폭우를 그치게 해주시고…." 그들의 간절한 기도에 무신론자인 나도 숟가락을 얹었다. 고등어 구이 두 마리와 순두부찌개가 식탁에 차려지자 허기가 몰려왔다. 소담하게 담긴 반찬들이 먹음직스러웠다. 매콤한 꽈리고추 무침과 오이무침, 새콤한 무생채 등 반찬 하나하나가 깔끔했다. 노릇노릇 구워진 고등어 한 점을 떼어 입에 넣었다. 지난날의 추억이 고소한 고등어와 함께 아릿하게 씹혔다. 한 세월이 화살처럼 빠르게 지나갔다. 설 익고 갈피를 잡을 수 없어 혼란스럽기만 했던 청춘의 시절, 여기서 팔뚝만한 삼치와 고등어구이를 참 많이도 먹었는데.

다시 아이로 돌아가고 있는 엄마는 밥상 앞에서 '안 먹는다'는 말이 입에 뱄다. 당최 음식이 아무 맛이 없다는 것이다. 먹성 좋던 엄마는 작년부터 입맛을 딱 잃었다. 그 날도 역시 배가 안 고프다며 손사래를 쳤다. 밥 먹을 때마다 식구들은 그런 엄마를 달래느라 진땀을 뺀다. "엄마, 이 고등어 먹어봐. 맛있어.", "순두부가 참 부드럽고 얼큰하네?" "아, 이 오이무침 상큼하다." 먹네, 안먹네 실랑이하던 엄마가 간신히 한 술 뜨면 우리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본다. 몇 숟갈 더 뜨면 식구들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쉰다. 생전의 아버지도 잘 드셨지만 엄마도 맛있는 걸 드실 때 '맛있다, 맛있다'를 연발하던 분이었다. 입맛을 잃으면 삶의 의욕이 꺾이는 법인데, 그런 엄마를 볼 때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아침에 언니가 미역국을 끓여 엄마 앞에 놓으며 "삼복더위에 막내딸 낳느라 죽다 살았는데 미역국 먹어야지"라며 권했지만 엄마는 한 모금도 못 드셨다.

아이를 낳아보지 않은 나로선 부모의 사랑을 다만 짐작할 뿐, 감히 헤아리진 못한다.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고 했던가. 어미는 몸 속의 영양분을 자식에게 아낌없이 내어 준다. 짐승도 그렇다. 새끼들에게 젖을 먹이는 동안 어미 개는 갈비뼈가 툭 불거지고 털이 뭉텅이로 빠진다. 나의 엄마는 자식들을 먹이기 위해 평생 몸이 부서져라 일했다. 유년시절, 칼바람이 몰아치는 한겨울이 되면 엄마는 고등어에 무를 숭덩숭덩 썰어 넣은 찌개를 한 냄비 끓이곤 했다. 고추장이 듬뿍 들어간 얼큰한 국물엔 고등어 기름이 동동 떴다. 무와 버무려 푹 익은 고등어 토막을 가난한 흥부네 자식들 같은 우리 형제들은 서로 먹겠다고 아귀다툼을 벌였다. 감칠맛 나는 국물이 밴 뜨거운 무를 호호 불며 밥에 얹어 먹는 맛도 꿀맛이었다. 그때 먹은 고등어찌개가 그리워 지금도 종종 끓여 먹지만 엄마의 손맛이 안 난다. 추억은 쌓이고 쓸쓸함도 더해간다. <미디어부 부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1기 신도시 재건축 '판 깔렸지만'…못 웃는 지방 노후계획도시
  2. 밀알복지관 가족힐링캠프 '함께라서 행보캠'
  3. K-water 안전기동점검반 임명식...‘안전을 심다’
  4. 축산업의 미래, 가축분뇨 문제 해결에 달렸다
  5. 교정시설에서 동료 수형자 폭행 '실형'…기절시켜 깨우는 행위 반복
  1. 대전행복나눔무지개푸드마켓 1호점 공식 카카오톡 채널 개설
  2. 농산 부산물, 부가가치 창출...환경과 경제 살리는 동력
  3. 어촌서 재충전, '쉬어(漁)가요' 프로그램 참가자 모집
  4. 챗봇 '해수호봇', 해양안전 디지털 혁신 이끈다
  5. 정부 부동산 대책 지방 위한 추가대안 마련 시급

헤드라인 뉴스


정청래 국회연설 "내란청산은 정치보복이 아니다"

정청래 국회연설 "내란청산은 정치보복이 아니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9일 “남북이 다시 손잡는 핵심은 경제협력이고, 우리는 경제통일에 민생통일을 추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통일부가 2026년 남북협력기금으로 1조 25억원을 편성했다. 주목할 것은 경제협력사업 예산으로, 606억원에서 1789억원으로 세 배가량 증가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러면서 “개성공단과 같은 경제협력 사업의 재개를 위해 필요한 도로와 폐수 시설 같은 복구와 구축 사업 예산”이라며 “남북이 힘을 합치면 경제 규모도 커지고 일자리도 늘어나고, 동..

국내 증시 조정에도…충청권 상장사는 `선방`
국내 증시 조정에도…충청권 상장사는 '선방'

새 정부 출범 이후 가파른 상승세를 타던 국내 증시가 최근 조정 국면을 맞고 있지만, 충청권 상장사들은 비교적 선방하고 있다. 전체적인 시장의 침체 분위기 속 8월 한 달 간 충청권 상장법인의 시가총액 합계는 전월 대비 0.3%(4074억 원) 증가한 152조 3402억 원에 도달했다. 한국거래소 대전혁신성장센터가 9일 발표한 대전·충청지역 상장사 증시 동향에 따르면 8월 충청권 상장법인의 시가총액은 152조 3402억 원으로 전월(151조 9328억 원) 대비 0.3% 증가했다. 8월 한 달 동안 대전·세종·충남 지역의 시총은 근..

대전 공기업 임원 교체 `바람` 불까…대전관광공사 임원 교체 가닥
대전 공기업 임원 교체 '바람' 불까…대전관광공사 임원 교체 가닥

민선 8기 대전시 출범 이후 임명된 시 산하 공기업 임원이 속속 임기를 마치면서 연임과 교체의 '갈림길'에 놓였다. 이장우 시장의 임기가 1년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물갈이를 통한 조직 변화를 꾀할지, 연장으로 막바지 조직 안정화를 선택할지에 대한 관심이 쏠린다. 9일 대전시에 따르면 시 출자·출연 기관장은 시장과 임기를 같이 하기로 조례로 정했지만, 시 산하 공기업은 지방공기업법을 적용받아 이와 무관하다. 이에 민선 8기 출범 이후 임명된 시 산하 공기업 임원들의 3년 임기가 순차적으로 끝나고 있다. 대전관광공사는 임원 교체 분위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올바른 손씻기로 식중독 예방해요’ ‘올바른 손씻기로 식중독 예방해요’

  • 전통시장 화재안전 집중조사 전통시장 화재안전 집중조사

  • ‘한국의 情을 고향에 전하세요’ ‘한국의 情을 고향에 전하세요’

  • K-water 안전기동점검반 임명식...‘안전을 심다’ K-water 안전기동점검반 임명식...‘안전을 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