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속으로]주변'과 '중심'의 변증법

  • 오피니언
  • 세상속으로

[세상속으로]주변'과 '중심'의 변증법

김명주 충남대 교수

  • 승인 2020-11-23 09:56
  • 신문게재 2020-11-24 18면
  • 이상문 기자이상문 기자
김명주-충남대-교수
김명주 충남대 교수
많은 사람들이 '중심'을 선호할지 모르지만, '주변'의 장점은 생각보다 꽤 많다. 여럿이 밥 먹는 자리나 회의석상에서 나는 항상 구석진 가장자리를 선호한다. 좌중의 시선이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주변 가장자리에 앉으면 좌중을 한눈에 조망하는 이점이 생기기도 한다. 또 '중심'이 스스로 만들어놓은 틀에 함몰되어 있을 때, '주변'이 오히려 틀에서 벗어난 객관적이며, 유연하고 유익한 제안을 내놓을 가능성이 많아진다. 무엇보다도, 주변에 위치하는 사람들은 중심부 사람들보다 잃을 것이 별로 없기도 하거니와, 가진 게 아무것도 없도록 만든 구조의 불합리성과 불공평함에 민감한 탓에 새로운 변화에 진취적이다. 그래서 "분노하라"의 저자 스테판 에셀의 말대로 '주변'은 종종 "저항과 창조의 공간"이 되기도 한다.

충남대 여성젠더학과 2021년 3월 설립을 준비하면서 지난 9월 "대전지역 영영 페미니스트들과의 간담회"를 가졌다. 젊은 페미니스트 활동가들은 성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자신들의 활동에 대한 자신감과 자긍심에 넘치면서도 경제적 불안정, 불확실성, 익명에 기반한 활동의 한계를 느끼며, 무엇보다도, 한 발표자에 따르면, 서울(중심)이 아닌 지역(주변)에 존재하는 까닭에 고립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페미니즘 담론 생산과 교육이 거의 수도권을 중심으로 이뤄질 뿐만 아니라, 젊은 여성들의 모임들조차 수도권 중심이기 때문이다. 대전에 소재한 대학에서 대학 내 여성동아리가 있는 곳은 충남대와 카이스트 두 곳뿐이라고 했다.

그러나 '주변'의 고립감이 현실적으로 느끼는 감정이긴 해도 우리들의 '주변성'은 얼마든지 장점으로 변형 가능하니까 우리 모두 힘내자고 용기를 듬뿍 주고 싶었다. "우리들"이라고 말한 것은 발표자와 나와의 주변자로서의 동료의식에서 비롯된다. 나 역시 남성이 아닌 여성이고, 백인이 아닌 아시아인이고, 미국인이 아닌 한국인이고, 서울이 아닌 대전에 살고 있으며, 서울대 출신이 아니라 충남대 출신이다, 즉, 성, 인종, 지역, 학벌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우리는 동일하게 "주변"에 위치하고 있다. 앞서 말했듯이 그 "주변성"이 단점이 아니라 강점이 될 수 있는 까닭은 바로, 주변 시점의 객관성, 유연성, 권력화에 대한 비판능력 덕분이다.

"인류의 문명은 끊임없이 그 중심지가 변방으로 이동해온 역사"라고 흔히들 말한다. 중심은 다른 생각을 용납하지 않음으로써 권력화되어 마침내 서서히 와해의 길을 걷게 된다. 이때 주변은 중심의 권력에 저항하고, 유연한 활력을 제공하면서 새로운 중심이 되곤 한다. 푸코도 권력은 저항을 생산하고, 저항은 권력을 변형시키고, 권력은 다시금 저항을 만들어내는 변증법적 순환에 대해 말한 바 있다. 생물학에서도 지배종의 성공은 다른 종이 지배할 수 있는 조건을 내부적으로 만들어내면서, 개인이나 종의 지배는 언제나 한시적일 뿐이다. 영원한 '중심'도, 영원한 '주변'도 없다.

단, "변방이 전정한 힘이 되려면, 중심부에 대한 열등의식이 없어야 한다. 중심부에 대한 환상을 청산하지 않는 한 변방은 오히려 중심부보다 더욱 완고하고 교조적인 틀에 갇힐 수 있다"는 신영복 선생의 말은 가슴 깊이 새길만하다.

변방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충남대 여성젠더학은 자칫 권력화될 수 있는 한국 여성학의 중심 내에 새로운 활력을 제공하고, 지역성에 기반하는 여성젠더학 담론을 생산하고, 지역 현장의 여성 활동가들에게 이론을 지원하며, 현장의 활동경험을 이론화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뿐만 아니라, 여성, 인종, 계층, 지역이 교차하는 새로운 담론을 아시아지역 유학생 교육에 활용하여 그 지역의 유능한 인재를 양성하는데도 기여할 것이다. 내년에 설립할 충남대 여성젠더학 연구소는 대학 밖의 지역사회 공동체 여성들을 위하여 페미니즘이 일상화될 수 있도록 아웃리치 프로그램도 운영하여 여성학의 지평을 확대해나갈 것이다. 우리는 '주변'의 강점을 최대한 활용하고자 한다.

김명주 충남대 교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전례없는 늑대 포획 계획에 커지는 수색방식 논란
  2. 민주당 세종시의원 10개 선거구 '본선 진출자' 확정
  3. 이춘희→조상호 향해 "헛공약·네거티브 전략" 일침
  4. 지역 학원가 '동구 글로벌 드림캠퍼스' 운영 방식 항의서한
  5. 김도경 초대회장 “회원들의 든든한 울타리, 대전경제 새역사 쓰겠다”
  1. 취업 후에도 학자금 상환에 허덕이는 청년들…미상환 체납액 역대 최대
  2. 대전창조경제혁신센터 '피엑스프리메드'에 1억 원 시드 투자
  3. 양승조·용혜인, '산업혁신·기본사회·민주분권' 결합한 정책협약 체결
  4. [사설] 행정수도 특별법 '법안소위' 이제 끝내야
  5. [지선 D-50] 與 대전시장 경선 허태정 승리…이장우와 4년만의 리턴매치

헤드라인 뉴스


2029년 `서울 청와대→세종 집무실` 대통령 시대 요원

2029년 '서울 청와대→세종 집무실' 대통령 시대 요원

문재인·윤석열 전 정부에서 시작된 '청와대 이전' 움직임이 이재명 새 정부에서 어떻게 완성될지 주목된다. 문 전 대통령은 광화문 시대를 준비했으나 좌절됐고, 윤석열 전 정부는 용산 시대를 열었으나 결국 얼룩진 역사만 남겼다. 이재명 새 정부는 올 초 도로 청와대로 컴백한 만큼, 2030년 임기까지 판을 바꾸는 과감한 시도를 할지는 미지수다. 수도권 정치권 등 기득권 세력들은 여전히 대통령실의 지방 이전에 극렬히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규연 대통령실 홍보소통수석의 14일 긴급 브리핑이 한 걸음 더 나아가지 못한 배경이 여기에 있다..

편의점 업계 비닐봉지 가격 인상·발주량 제한에 편의점주들 `예의주시`
편의점 업계 비닐봉지 가격 인상·발주량 제한에 편의점주들 '예의주시'

편의점 업계가 매장에서 쓰는 비닐봉지 가격을 인상하거나 발주량을 제한하고 나섰다. 중동 전쟁으로 비닐 원재료인 나프타 가격이 급격히 오른 데 따른 조치인데, 편의점주 등은 고정 지출이 커지진 않을까 우려 섞인 목소리를 낸다. 14일 편의점 업계에 따르면 세븐일레븐은 최근 매장에서 점주들이 쓰레기를 담을 때 사용하는 비닐봉지 가격을 최대 39% 인상했다. 세븐일레븐이 점주에게 제공하는 비닐봉지는 50매 묶음으로 총 네 종류다. 검정 비닐봉지 큰 사이즈는 77원에서 106원으로 37.7% 인상했으며 작은 사이즈는 57원에서 78원으로..

학교에서 또… 계룡 교사피습에 도교육청 예방 체계 미흡 지적
학교에서 또… 계룡 교사피습에 도교육청 예방 체계 미흡 지적

충남 계룡 교사 피습 사건이 발생하면서 교육현장의 위기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형태는 다르지만 과거 비슷한 사건이 벌어진 바 있어 충남교육청의 시스템 구축이 미흡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또 충남 학생인권조례도 교사 신변보호에 제약이 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14일 경찰 등에 따르면 전날인 13일 오전 8시 40분께 계룡의 한 고등학교에서 교사와 상담을 하던 학생이 미리 준비한 흉기로 교사에게 해를 가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 교사는 즉시 병원으로 옮겨졌고 다행히 생명에 지장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학생은 중학..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세월호 참사 12주기, ‘잊지 않겠습니다’ 세월호 참사 12주기, ‘잊지 않겠습니다’

  • 대전오월드 인근에서 목격된 ‘늑구’ 포획에 나선 경찰들 대전오월드 인근에서 목격된 ‘늑구’ 포획에 나선 경찰들

  • 대전시 선관위, 지방선거 50여일 앞두고 투표참여 캠페인 대전시 선관위, 지방선거 50여일 앞두고 투표참여 캠페인

  • 초여름 날씨에 등장한 반팔 초여름 날씨에 등장한 반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