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 한글과 성경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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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 한글과 성경 번역

백낙천 배재대 인문사회대학 학장

  • 승인 2021-01-31 09:56
  • 신문게재 2021-02-01 19면
  • 송익준 기자송익준 기자
백낙천 배재대 인문사회학장
▲백낙천 배재대 인문사회대학 학장.
18세기 조선에 천주교가 전래된 후, 1779년 순 한글로 된 <천주공경가>, <십계명가>, <경세가> 등의 전도서가 나왔고, 1790년대에 <쥬교요지>, <성교요지>가 나오고, 1864년을 전후로 천주교리 서적들이 목판본으로 대량 간행 보급되었다. 즉, 천주교는 포교보다는 자생적인 교리 연구를 우선으로 하여 조선의 전통 풍속과 결속되면서 착근되었으며, 이후 천주교의 피의 순교 위에서 기독교의 선교가 이루어졌다.

기독교가 본격적으로 전래된 19세기 이후 조선은 서세동점(西勢東漸)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겪게 되었으며, 조선은 서서히 세계 체제로 편입되는 과정을 밟아 나갔다. 이 시기 조선의 근대화는 서구화와 동의적 개념으로 사용되었으며, 이런 상황 속에서 개화와 자주는 동시대적 상황과 공동체 내 주체적 의식과의 사이에서 긴장 관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역설적으로 우리나라는 근대적 국가로서의 기틀을 갖추게 되었다.

물론, 기독교가 신앙의 전파 외에도 한국의 근대적 교육, 문화, 언론, 출판, 보건, 의료 분야 등 한국 사회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개화기 지식인들의 사상적 배경에 기독교적 세계관이 깊숙이 관련되어 있다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더욱이 성경 번역을 통한 한글 보급의 확산은 개신교인 기독교에서 적극적으로 이루어졌다. 즉, 성경의 한글 번역과 이를 통한 한글 교육이 이루어졌고, 한글의 가치를 드높이는 데에 한글 성경이 미친 영향이 지대했다.

성경 번역은 한글의 저변 확대에 크나큰 역할을 수행했으며, 19세기 당시의 언어생활 전반과 국문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했다. 왜냐하면 기독교 신앙 전파를 위해서는 성경을 보급해야 하고 성경 보급을 위해서는 한글 교육이 선행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즉, 성경 번역이 문맹 퇴치를 위한 한글 교육에 기폭제가 되었으니, 학교 설립을 통한 근대교육의 시행과 한글에 대한 재인식으로 한글 사용이 전면적으로 확대될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초기 성경 번역이 순 한글로 표기되어 일반에 전파되었다는 점에서 한글과 기독교는 불가분의 관계였다고 할 수 있다.

독일인 선교사였던 귀츨라프(Gutzlaff)가 1832년 고대도에 머물면서 주기도문을 한글로 번역하면서 시작된 개신교 선교의 역사와 한글의 관계는 성경의 한글 번역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인 스코트랜드 출신 장로교 목사인 로스(Ross)에 의해 본격화되었다. 그는 중국 만주에서 38년간 선교 활동을 하던 중에 1874년 평북 의주 출신의 한약상 이응찬에게서 한국어를 배워 우리말 문법에 큰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으며, 나아가 같은 평북 출신의 백홍준, 이성하, 김진기 외에 1881년에는 의주 출신 서상륜이 로스의 번역 사업에 결정적으로 힘을 보태어 1882년 낱권 형태의 우리나라 최초의 번역 신약성경인 <예수셩교 누가복음젼셔>와 <요한니복음>이 번역되었으며, 뒤이어 1887년 합본 형태의 우리나라 최초의 완역 신약 성경인 <예수셩교젼셔>가 편찬되었다.

성경 번역이 한글 보급에 끼친 영향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인쇄 출판을 발전시킨 부분이다. 근대 지식과 문화의 보급과 향유가 인쇄 출판과 서적의 유통에 의해 전폭적으로 확대되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둘 때, 성경 번역과 보급이 인쇄 출판 기술의 발달과 긴밀한 관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한글로 성경 번역이 이루어졌다는 것은 1894년 모든 공문서는 국문을 본으로 삼는다는 고종 황제의 칙령 공포보다 10여 년 앞선 것으로 한문을 모르는 일반 백성들을 전도의 대상으로 삼고 이들을 위해 한글 문체를 사용하였다는 점에서 가히 문체의 혁명적 사건이라고 할 만하다. 이로써 15세기 한글 창제로 시작된 언문일치의 선언적 사건이 19세기 성경 번역을 통한 한글의 대중적 저변을 확보하는 데까지는 상당히 오랜 시간이 필요 했던 것이다.

기독교가 우리나라의 계몽을 일깨우고 문화를 선도했던 역사적 과정을 돌아보면서 코로나 시대에 기독교 공동체가 보편적 가치로서의 교양과 겸손의 미덕을 갖추고 자기 성찰을 해야 하는 이유를 여기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백낙천 배재대 인문사회대학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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