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 전에 없던 설을 지내며

  • 오피니언
  • 풍경소리

[풍경소리] 전에 없던 설을 지내며

  • 승인 2021-02-15 14:39
  • 수정 2021-02-16 10:49
  • 신문게재 2021-02-16 19면
  • 김소희 기자김소희 기자
이향배 충남대 한문학과 교수
이향배 충남대 한문학과 교수
설은 단오, 추석, 동지와 함께 4대 명절 중 하나다. 언제부터 설이 중요한 명절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설날은 한자로 원일(元日), 원단(元旦), 원조(元朝) 등 다양한 말로 쓰였다. 이는 한 해를 시작하는 첫날을 의미하므로 달력의 제작과 상관이 있다. 달력은 동양에서 요순(堯舜)시대 이전부터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지만 확실한 근거가 없다. 신뢰할 수 있는 문헌 기록으로 볼 때 서경(書經)의 기록이 제일 앞선다.

요임금은 희씨와 화씨에게 하늘의 태양, 달, 별을 관찰별 역서(曆書)로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농사철을 알려 줬다. 또한 1년은 366일인데 윤달을 써서 사시(四時)를 정해야만 한 해를 이룬다는 기삼백(朞三百)에 대한 기록이 있다. 순임금이 천자의 지위에 올라서는 천체 관측기인 선기옥형을 만들고 달력을 제작하여 농사의 때를 잃지 않게 했다. 역사적으로 보면 고대에는 시대마다 정월이 달랐다. 하(夏) 때는 현재 음력과 같은 달력을 사용했으므로 1월이 정월이었다. 그러나 은(殷)나라 때는 음력 12월을 정월로 삼았으며 주(周)나라 때는 음력 11월을 정월로 삼았다. 이는 하늘이 자시(子時)에 열리고 땅은 축시(丑時)에 열렸으며 사람은 인시(寅時)에 태어났다는 고대의 우주관 때문이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고고학적 유물로 볼 때 고조선 시기에 천문을 관측하여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순임금이 동이족이며, 하(夏)와 은(殷)은 동이족이 세운 나라이므로 우리나라도 고대부터 음력으로 사용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삼국사기에 음력을 사용한 기록이 있으니 삼국시대에 설날이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이로 보면 동양의 설날은 수 천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설날에 행하는 풍습은 시대마다 달라져 왔다. 현재 없어진 설날 풍습 중 하나가 술을 마시는 일이다. 설날에 마시는 술을 도소주(屠蘇酒)라 하는데 이는 악귀의 기운을 없애고 사람의 정신을 소생하게 한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조선 중기의 문인 심수경(沈守慶)의 견한잡록(遣閑雜錄)을 보면 "옛날에는 새해 아침에 젊은이가 먼저 마시고 노인이 뒤에 마시는데 지금 풍속은 설날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사람을 만나면 그 이름을 부르고 그 사람이 대답하면 '나의 허술한 것을 사가라' 한다. 이는 자기의 병을 팔아서 재앙을 면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했다.



설날에 서로 인사하는 것을 세배라고 한다. 임진왜란 때 정응태의 무고로 이항복과 이정귀, 황여일이 변무(辨誣)하러 명나라에 갈 때였다. 압록강을 건너서 이정귀가 "연조(燕趙) 지방에는 미녀가 많다는데 이번 길에 만나 볼 수 있으려나?" 했다. 오후에 탑소(塔所)에서 쉬는데, 마침 세시(歲時)인지라 20여 세쯤 된 주가(主家)의 딸이 세배하러 왔다. 녹색 명주 치마에 홍색 비단 저고리를 입었으며 수운리(繡雲履)를 신고 머리에는 꽃을 꽂고서 적표마(赤表馬)를 타고 문에 들어섰다. 이정귀는 깜짝 놀라 일어나서 그녀를 곁눈질로 보았다. 마침 황여일은 변소에 갔으므로, 이정귀는 빨리 와서 보라고 급히 불렀다. 황여일이 왔을 때는 그녀가 이미 당(堂)에 들어가서 문을 닫아버린 후였다. 그러자 이정귀는 "가는 곳마다 똥만 싸고 있으니, 무슨 일을 할 수가 있나"라고 했다. 타국에서 단장하고 세배하러 다닌 어린 여인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게 보였겠는가. 이 광경을 두고 이항복은 참으로 객지에서 한바탕 박장대소할 만하다고 적었다.

코로나로 인해 올해의 설은 전에 없던 풍습이 생겼다. 사실 설날은 아이들에게는 수금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내외가의 어른들을 찾아뵙고 세배하면서 세뱃돈을 받을 기회를 잃었으니 얼마나 안타깝겠는가. 대신 세배하는 모습을 동영상에 담아 어른에게 보여드려서 손자를 보고 싶은 마음을 해소해드리고 세뱃돈은 통장으로 입금받는 것이다. 반면 시댁에 가지 않아도 될 며느리는 시댁의 부담에서 해방될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다만 이를 계기로 친척 간에 왕래도 끊기고 차례도 동영상을 틀어놓고 지내는 것이 일반화될까 걱정스럽긴 하다. 안 지내는 것보다 낫다지만 세배와 차례는 인간의 정이며 정성인데…. /이향배 충남대 한문학과 교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양주시, 옥정물류창고 2부지 사업 취소·용도변경 양해각서 체결
  2. 노희준 전 충남도정무보좌관,'이시대 한국을 빛낸 청렴인 대상'
  3. 천안시농업기술센터, 2026년 1~2월 새해농업인실용교육 추진
  4. 천안문화재단, 2026년 한 뼘 갤러리 상반기 정기대관 접수
  5. 천안법원, 토지매매 동의서 확보한 것처럼 기망해 편취한 50대 남성 '징역 3년'
  1. [독자칼럼]센트럴 스테이트(Central State), 진수도권(眞首都圈)의 탄생
  2. 천안중앙도서관, '1318채움 청소년 놀이터' 운영
  3. 대전 아파트 화재로 20·30대 형제 숨져…소방·경찰 합동감식 예정
  4. 은둔고립지원단체 시내와 대전 중구 청년센터 청년모아 업무협약
  5. 백석대학교 물리치료학과, 성장기 아동 척추 건강 선제적 관리 나서

헤드라인 뉴스


대전충남 행정통합 `반대 여론` 어쩌나

대전충남 행정통합 '반대 여론' 어쩌나

대전·충남 행정통합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는 가운데 지역사회에서 주민 동의가 필요하다며 '신중론'이 나오고 있다. 대전·충남 행정통합은 이달 초 이재명 대통령이 내년 지방선거 전 추진 의지를 밝히면서 강한 추진 동력을 얻었다. 더불어민주당은 '충청지역 발전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내년 3월까지 통합 관련 법안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대전·충남 행정통합의 시작점인 김태흠 충남지사와 이장우 대전시장도 24일 만나 통합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대전·충남 행정통합에 속도를 내면서 지역에서 '주민 의견 부족' 등 졸속 추진에 대한 우려..

대전·충남통합 추진 속 민주당 대전시장 후보 경쟁 `3자 구도`로
대전·충남통합 추진 속 민주당 대전시장 후보 경쟁 '3자 구도'로

대전·충남통합 추진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더불어민주당 대전시장 후보 경쟁이 3파전으로 재편된다. 출마를 고심하던 장종태 국회의원(대전 서구갑)이 경쟁에 뛰어들면서다. 기존 후보군인 허태정 전 대전시장과 장철민 국회의원(대전 동구)은 대전·충남통합과 맞물려 전략 재수립과 충남으로 본격적인 세력 확장을 준비하는 등 더욱 분주해진 모습이다. 장종태 국회의원은 29일 대전시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대전시장 출마를 공식 선언한다. 그동안 장 의원은 시장 출마를 고심해왔다. 국회의원직을 유지하며 민주당의 대전·충청권 지방선거 승리를 견인해야 한..

정부 개입에 원·달러 환율 1440원대 진정세… 지역경제계 "한숨 돌렸지만, 불확실성 여전"
정부 개입에 원·달러 환율 1440원대 진정세… 지역경제계 "한숨 돌렸지만, 불확실성 여전"

고공행진을 이어가던 원·달러 환율이 정부의 본격적인 시장 개입으로 1440원대로 내려앉았다. 지역 경제계는 가파르게 치솟던 환율이 진정되자 한숨을 돌리면서도, 불확실성은 여전하다며 우려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28일 금융시장과 지역 경제계 등에 따르면 지난 26일 서울 외환시장에서의 원·달러 환율 주간거래 종가(오후 3시 30분 기준)는 1440.3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달 4일 1437.9원 이후 약 한 달 반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환율은 지난주 초 1480원대로 치솟으며 연고점에 바짝 다가섰으나, 24일 외환 당국의..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세밑 주말 만끽하는 시민들 세밑 주말 만끽하는 시민들

  • 유류세 인하 2개월 연장…기름값은 하락세 유류세 인하 2개월 연장…기름값은 하락세

  • 성탄 미사 성탄 미사

  • 크리스마스 기념 피겨쇼…‘환상의 연기’ 크리스마스 기념 피겨쇼…‘환상의 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