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난순의 식탐] 서러워라 잊혀진다는 것은

  • 오피니언
  • 우난순의 식탐

[우난순의 식탐] 서러워라 잊혀진다는 것은

  • 승인 2021-03-03 11:11
  • 신문게재 2021-03-04 18면
  • 우난순 기자우난순 기자
2


도시락을 싸갖고 다니기 전, 일주일에 꼭 한번은 가는 식당이 있었다. 회사 근처에 있는데 짜장면이 맛있기로 소문난 집이었다. 사실 동네에 흔한 게 중국집 아니던가. 짜장면 맛도 거기서 거기고. 아마 중국요리에서 가장 간단한 요리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성산반점의 짜장면은 특별했다. 뭐랄까, 소스가 남달랐다. 꿀을 넣은 것처럼 걸쭉하고 된장을 넣었나 싶게 구수했다. 점심시간만 되면 성산반점은 북새통이었다. 맛 집으로 소문 나 직장인들로 바글바글했다. 좀 늦게 가면 자리가 없어 입맛만 다시며 되돌아 나오기 십상이었다. 허름하고 옹색했지만 짜장면 맛 하나는 정말 끝내줬다. 따끈따끈한 방바닥에 철퍼덕 퍼지고 앉아 먹는 마성의 짜장면. 후루룩 쩝쩝 입가에 시커먼 소스를 묻혀가며 볼이 미어터지게 먹곤 했다. 아, 레몬을 듬뿍 썰어 넣은 새콤달콤한 소스를 바삭한 탕수육에 부어먹는 맛도 일품이었다.



며칠 전 볼일이 있어 그 식당 앞을 지나갔다. 와글와글한 손님들의 목소리와 사방팔방 진동하던 짜장면 냄새는 연기처럼 사라졌다. 문은 굳게 잠겼고 입구 시멘트 계단은 무너져 덩어리들이 나뒹굴었다. 한낮의 햇살만이 거미줄 친 어둑한 식당 안에 스며들었다. 작년 봄에 코로나 때문인지, 다른 이유가 있는지 어느날 갑자기 문을 닫았다. 사내는 주방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볶고 튀기고, 여자는 부지런히 음식을 나르고. 늘 상냥한 미소로 "맛있게 드셨쎄요? 잘 가요오?"라며 어깨를 두드려주던 싹싹한 여자였다. 유년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알록달록 촌스런 꽃무늬 벽지와 싸구려 레이스 커튼도 추억으로 남았다. 모든 사라지는 것은 잊혀진다. 어느 소설가는 잊혀진다는 건 서럽다고 고백했다.

코로나 이후 여행다운 여행을 못하고 있다. 새벽기차 타 본 게 언제였던가. 여행은 사람과 맛의 기억이다. 늦가을 봉화 춘양에서 먹은 짜장면도 잊지 못한다. 식당 주인 가족들과 식탁에 둘러앉아 짜장면을 비벼먹던 그 날을 어찌 잊을까. 여행자의 배낭에 사과 몇 알을 넣어주며 배웅하던 따스한 마음이 지금도 생생하다. 이른 아침 허기진 배를 채워준 목포 항구의 후미진 시장 뒷골목의 해장국집도 아스름하게 떠오른다. 돼지등뼈 해장국에 밥을 말아 쿰쿰한 갈치 젓갈을 정신없이 찍어먹었는데 꼭 이맘때였다. 소주 나눠 마시던 할머니들은 건강하실까. 인심은 곳간에서 나오는 게 아니란 걸 여행하면서 알았다. 생면부지의 여행자의 손을 잡아끌며 한 끼 밥을 먹여 준 이들은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고단한 삶이지만 열심히 하루하루 살아내는 사람들. 하나같이 눈빛이 따뜻한 사람들이었다.



고등어구이백반을 제일 맛있게 먹은 곳은 부산 자갈치 시장 인근 골목 식당이다. 싼 맛에 노동자들이 찾는 곳이었다. 다닥다닥 붙은 서너 개 되는 식탁에서 낯선 이들과 어깨를 부딪치며 혹은 마주보며 먹어야 하는 곳. 기름이 지글지글 끓는 고소한 고등어구이가 나오는 소박한 밥을 한진중공업 해고자 김진숙도 먹어보기나 했을까. 소금 꽃이 핀 '빵꾸' 난 작업복을 입고 서러운 기름밥 먹으며 영도다리 건너던 땜쟁이 김진숙들 말이다. 입가심하라고 김이 펄펄 나는 구수한 눌은밥을 스뎅 대접에 가득 담아주던 부산 아지매. 늦은 밤 희미한 형광등 불빛 아래서 곱창전골 안주 삼아 소주잔 기울이면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토해내던 속초 당진댁…. 다들 안녕하신지. 낯선 도시의 골목 사이사이 오래된 식당에서 새어나오는 불빛과 음식냄새 그리고 그 사람들의 체취가 내 정서의 근간이다. 예기치 못한 재난에 휩쓸려 몰락하고 벼랑 끝으로 내몰린 이들이 한 둘일까마는 잠깐 스친 인연들의 안위가 궁금하다. 민들레꽃 피는 봄날, 지상의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 살아있는 시간을 누리는 기쁨을 맛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디지털룸 2팀 부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파멥신' 상장 폐지...뱅크그룹 '자금 유출' 논란 반박
  2. "충청의 거목 고이 잠드소서" 이해찬 前총리 별세 지역與 '애통'
  3. 이기순 세종시사회서비스원장 "더 좋은 사회서비스 제공"
  4. 2월 충청권 아파트 3000여 세대 집들이…지방 전체 물량의 42.9%
  5. 대전시립중고교 김병한 교장 '사회공헌 대상' 수상
  1. "중부권 산학연 역량 모은 혁신 벨트 구축 필요"…충남대 초광역 RISE 포럼 성료
  2. 포춘쿠키 열고 ‘청렴의식 쑥’
  3. [사설] 지역이 '행정수도 설계자'를 기억하는 이유
  4. 대청호 수질개선 토지매수 작년 18만2319㎡…하천 50m 이내 82%
  5. 2025 대전시 꿈드림 활동자료집 '드림이쥬3'

헤드라인 뉴스


`행정수도 설계자` 이해찬, 미완의 숙제 남기고 영면에…

'행정수도 설계자' 이해찬, 미완의 숙제 남기고 영면에…

故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미완의 '세종시=행정수도' 숙제를 남기고 영면에 들었다. 행정수도와 인연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궤를 같이 한다. 2004년 참여정부의 초대 국무총리로서 국토균형발전 정책을 선두에서 이끌었다. 운명의 끈은 거기서 끊어지지 않았다. 1988년부터 서울 관악 을에서 국회의원 5선을 역임한 뒤 사실상 정치 일선에서 물러났으나, 당원들은 2011년 당시 민주당 상임 고문인 이 전 총리를 소환했다. 결국 그는 2012년 세종시 출범 직전 진행된 제19대 총선에서 47.88% 득표율을 얻어 당선됐고, 2015년 3월 임..

대전 자영업 수 나홀로 사장님만 늘었다... 경기 한파 꽁꽁 얼었나
대전 자영업 수 나홀로 사장님만 늘었다... 경기 한파 꽁꽁 얼었나

경기 한파로 전국의 자영업자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대전은 오히려 자영업자 수가 늘어나는 기이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직원을 고용해 매장을 운영하는 자영업자 보다 1인 가게와 무인점포 등 혼자 운영하는 '나 홀로 사장님'이 늘어난 데 따른 것이다. 26일 국가데이터처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2025년 취업자 중 대전 자영업자 수는 15만 5000명으로, 2024년(14만 1000명)보다 1만 4000명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코로나 19가 발발하기 이전인 2019년 14만 2000명보다도 높은 수준이다. 지역 자영업자 수는..

대전시 "행정통합 항구적 법,제도 마련 안되면 주민투표 요구할 것"
대전시 "행정통합 항구적 법,제도 마련 안되면 주민투표 요구할 것"

대전시가 대전·충남 행정통합에 따른 정부의 대폭적인 재정·권한 이양을 요구하며, 미흡할 경우 주민투표 가능성을 시사하는 등 압박 수위를 높였다. 이장우 대전시장은 26일 대전시 주간업무회의에서 "주민투표를 요구하는 시민 목소리가 높아지면 시장은 시민의 뜻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다"면서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대전·충남 행정통합에 대한 주민투표를 요구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이 시장은 "항구적인 법적·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지 않으면 주민투표 요구가 높아질 수 있다. 단순한 물리적 통합으로 비치면 시민 동의를 얻기 어려울 것"이라며 "..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포춘쿠키 열고 ‘청렴의식 쑥’ 포춘쿠키 열고 ‘청렴의식 쑥’

  • 강추위에 얼어붙은 인공폭포 강추위에 얼어붙은 인공폭포

  • 100도 달성한 사랑의 온도탑과 무료배식의 긴 줄 100도 달성한 사랑의 온도탑과 무료배식의 긴 줄

  • 코스피, 코스닥 상승 마감…‘천스닥을 향해’ 코스피, 코스닥 상승 마감…‘천스닥을 향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