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난순의 식탐] 국수와 이슬람

  • 오피니언
  • 우난순의 식탐

[우난순의 식탐] 국수와 이슬람

  • 승인 2021-09-15 10:16
  • 신문게재 2021-09-16 18면
  • 우난순 기자우난순 기자
KakaoTalk_20210915_093315591
라그만은 아니지만 비슷하게 요리해 봤다. 위구르인들은 면실유로 재료를 볶는다는데 난 올리브오일을 썼다. 라그만을 생각하며 맛있게 먹었다. 우난순 기자
국수는 별미다. 국수는 많이 먹어도 금방 소화돼 위에 부담이 없다. 올 여름엔 일주일에 두 번 꼴로 국수를 해먹었다. 삶은 국수에 매콤한 양념장을 만들어 오이, 상추 등을 넣고 비벼먹는 국수야말로 먹는 행복의 묘미를 느끼게 한다. 오래전부터 꼭 먹어보고 싶은 국수가 있다. 10여년 전 KBS에서 방영한 '누들로드'에서 나온 중앙아시아 어느 지역의 국수였는데 이름을 몰라 궁금해 하던 차였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연초에 예능 프로에 '누들로드' 이욱정 PD가 나와 신장위구르에서 먹은 '라그만'이란 국수가 제일 맛있었다고 했다. 아, 그 국수가 라그만이었구나. 해서 라그만이란 걸 만들어 먹었다. 수타면 대신 굵은 국수와 양고기 대신 돼지고기로 흉내를 낸 것이다. 냉장고를 뒤져 있는 야채는 다 꺼냈다. 고기와 당근, 양파, 깻잎, 부추 등에 마늘, 대파를 넣고 볶아 삶은 국수 위에 얹었다. 모양은 비슷했지만 라그만일 리 없었다. 도대체 라그만은 어떤 맛일까.

라그만은 중앙아시아 이슬람인들이 먹는다. 위구르를 비롯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도 볼 수 있다. 중앙아시아는 실크로드의 중심지다. 아시아 내륙을 통과하는 낙타 도로를 따라 종이, 향신료 등이 페르시아를 거쳐 유럽으로 갔다. 실크로드는 동과 서를 연결하는 문명의 길이었다. 실크로드는 국수의 도로라고도 할 수 있다. 이 문화의 공간에 국수 요리도 반영됐다.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무역상들은 다른 문화들을 접촉하고 물품, 종교 그리고 요리법을 교환했다. 국수의 재료인 밀이 메소포타미아에서 시작해 동쪽으론 중국·한국·일본까지 그리고 서쪽의 유럽까지 퍼져 각 지역에서 독자적으로 국수요리가 생겨났다. 밀이 귀했던 한국은 메밀로 만든,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냉면이라는 면 요리가 만들어졌다.

면 요리의 탄생지 중앙아시아 남쪽엔 아프가니스탄이 자리하고 있다. 아프간의 아우시는 라그만의 일종으로 실크로드 여러 지방의 별미들을 합쳐 놓은 거라고 한다. 콩과 고기, 요구르트가 모두 들어가기 때문이다. 지구촌 뉴스의 중심이 된 아프가니스탄. '제국의 무덤'이란 별칭이 붙은 아프간의 역사는 파란만장하다. 19세기 영국과 러시아는 100년 가까이 제국주의적 영토 팽창과 식민지 수호를 위해 거대한 상금이 걸린 체스판 같은 전쟁을 벌였다. 이름하여 '그레이트 게임'이다. 그리고 1978년 소련, 9.11 테러 직후 2001년 10월 미국. 결과는 하나같이 아프간을 침공해 마음대로 요리하려다 국물도 못 먹어보고 체면만 구긴 채 서둘러 발을 뺐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탈레반은 서구 강대국의 욕망과 패권 다툼으로 탄생했다.

미군이 철수한 아프간에 중국이 발을 담글 것이라는 보도가 나온다. 21세기 그레이트 게임이 시작되는 건가. 중국은 옛 실크로드 부활을 꿈꾼다. 그래서 영토 확장에 혈안이 됐다. 신장 위구르도 오래전에 중국의 자치구가 됐다. 위구르인들은 이슬람교도로 종교적 관습과 역사, 문화, 언어를 지키며 오아시스 농사를 짓는다. 중국은 이런 위구르인의 문화와 종교를 말살하는데 서슴지 않는다. 그러니 위구르인의 저항은 당연한 것. 결국 위구르 독립세력이 탈레반과 연결되자 중국으로선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다. 각자 손익계산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신장을 사이에 두고 중국과 탈레반은 어떤 액션을 취할까. 우리는 다분히 미국 시각에서 무슬림을 바라본다. '잔혹한 테러집단', '악의 무리'. 실크로드를 걷고 기행문을 쓴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나는 걷는다>는 낯선 방문객에 대한 무슬림의 무한한 환대를 보여준다. 폭력은 이슬람의 본질이 아니다. 나는 꿈꾼다. 실크로드를 걸으며 위구르인들과 라그만을 먹으며 우정을 나누는 날을. <지방부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이진숙 교육장관 후보자 첫 출근 "서울대 10개 만들기, 사립대·지방대와 동반성장"
  2. '개원 53년' 조강희 충남대병원장 "암 중심의 현대화 병원 준비할 것"
  3. 법원, '초등생 살인' 명재완 정신감정 신청 인용…"신중한 심리 필요"
  4. 33도 폭염에 논산서 60대 길 걷다 쓰러져…연일 온열질환 '주의'
  5. 세종시 이응패스 가입률 주춤...'1만 패스' 나오나
  1. 필수의료 공백 대응 '포괄2차종합병원' 충청권 22곳 선정
  2. 폭력예방 및 권리보장 위한 협약 체결
  3. 임채성 세종시의장, 지역신문의 날 ‘의정대상’ 수상
  4. 건물 흔들림 대전가원학교, 결국 여름방학 조기 돌입
  5. (사)한국청소년육성연맹, 관저종합사회복지관에 후원물품 전달식

헤드라인 뉴스


야권에서도 비충청권서도… 해수부 부산이전 반대 확산

야권에서도 비충청권서도… 해수부 부산이전 반대 확산

이재명 정부가 강공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보수야권을 중심으로 원심력이 커지고 있다. 그동안 충청권에서만 반대 여론이 들끓었지만, 행정수도 완성 역행과 공론화 과정 없는 일방통행식 추진되는 해수부 이전에 대해 비(非) 충청권에서도 불가론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원내 2당인 국민의힘이 이 같은 이유로 전재수 장관 후보자 청문회와 정기국회 대정부질문, 국정감사 등 향후 정치 일정에서 해수부 이전에 제동을 걸고 나설 경우 이번 논란이 중대 변곡점을 맞을 전망이다. 전북 익산 출신 국민의힘 조배숙..

李정부 민생쿠폰 전액 국비로… 충청권 재정숨통
李정부 민생쿠폰 전액 국비로… 충청권 재정숨통

이재명 정부가 민생 회복을 위해 지급키로 한 소비쿠폰이 전액 국비로 지원된다. 이로써 충청권 시도의 지방비 매칭 부담이 사라지면서 행정당국의 열악한 재정 여건이 다소 숨통을 틀 것으로 기대된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1일 전체회의를 열어 13조2000억원 규모의 '민생회복 소비쿠폰' 지급 관련 추가경정예산안을 의결했다. 행안위는 이날 2조9143억550만원을 증액한 2025년도 행정안전부 추경안을 처리했다. 행안위는 소비쿠폰 발행 예산에서 중앙정부가 10조3000억원, 지방정부가 2조9000억원을 부담하도록 한 정부 원안에서 지방정..

대전·충남기업 33곳 `초격차 스타트업 1000+` 뽑혔다
대전·충남기업 33곳 '초격차 스타트업 1000+' 뽑혔다

대전과 충남의 스타트업들이 정부의 '초격차 스타트업 1000+ 프로젝트'에 대거 선정되며, 딥테크 기술창업 거점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1일 중소벤처기업부가 주관하는 '2025년 초격차 스타트업 1000+ 프로젝트'에 전국 197개 기업 중 대전·충남에선 33개 기업이 이름을 올렸다. 이는 전체의 16.8%에 달하는 수치로, 6곳 중 1곳이 대전·충남에서 배출된 셈이다. 특히 대전지역에서는 27개 기업이 선정되며, 서울·경기에 이어 비수도권 중 최다를 기록했다. 대전은 2023년 해당 프로젝트 시행 이래 누적 선정 기업 수 기준으로..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수영하며 야구본다’…한화 인피니티풀 첫 선 ‘수영하며 야구본다’…한화 인피니티풀 첫 선

  • 시구하는 김동일 보령시장 시구하는 김동일 보령시장

  • 故 채수근 상병 묘역 찾은 이명현 특검팀, 진실규명 의지 피력 故 채수근 상병 묘역 찾은 이명현 특검팀, 진실규명 의지 피력

  • 류현진, 오상욱, 꿈씨패밀리 ‘대전 얼굴’ 됐다 류현진, 오상욱, 꿈씨패밀리 ‘대전 얼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