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광장]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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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광장]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법무법인 윈 신기용 대표변호사

  • 승인 2022-06-08 09:26
  • 이현제 기자이현제 기자
신기용
신기용 대표변호사
서울중앙지검에는 장미단이라고 불리는 '조직'이 있었다. 필자도 얼떨결에 자리를 맡게 되기 전까지는 존재조차 알지 못했고 검찰 내부에서도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장미단은 꽃처럼 아름다운 이름과는 달리 사실 가시처럼 피하고 싶은 곳이었다. 바로 검찰청 내에 켜켜이 쌓여있던 장기 미제 사건들, 오랫동안 해결되지 못한 사건들을 신속히 처리하라는 지시를 받은 검사들을 장기 미제 수사단이라고 불렀고 그걸 줄여서 장미단이라고 칭했던 것이다.

장기 미제 사건이라면 개구리 소년 실종 사건 같은 미스터리한 사건들을 떠올릴지 모르겠다. 하지만 수사 일선에서의 장기 미제사건이라 함은 그보다 훨씬 우리에게 가깝고, 특히나 수많은 형사 사건의 당사자들에게는 더 절실할 수 있는 개념이다.

검찰에 사건이 계류된 지 적어도 4개월 이상 지난 사건을 통틀어 장기 미제라 부르는데, 필자가 인계받았던 것은 최소 6개월, 길게는 1년 6개월이 넘도록 기소 또는 불기소 결정을 내리지 못한 사건들이었다. 그 대부분은 고소·고발로 시작된 데다 통상 경찰에서도 6개월 이상 수사가 진행되었기에 고소한지 1~2년은 훌쩍 넘은 사건들이었다.

장기 미제 사건 당사자들의 고통은 말로 다 하기 어렵다. 고소인이라고 할지라도 고소장만 던져놓고 신경을 쓰지 않는 사람은 찾기 어렵다. 오랜 시간 인내를 거듭하다 마지막 방법으로 고소를 택하는 것이 대부분인데, 재판은커녕 수사 단계에서 몇 년의 시간이 흘러버리면 애가 타기 마련이다. 피의자들은 더하다. 혐의를 벗을 수 있을지, 없을지, 혹시나 구속되는 것은 아닌지 헤아릴 수 없는 걱정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이 계속된다.

가뜩이나 어렵고 복잡한 사건들이 장기 미제 사건이 되곤 한다. 거기에 당사자들의 한숨까지 무게를 더하니 장미단 검사들의 몸이 무겁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도 방 하나를 가득 채울 정도로 가득 차 있던 수사기록들을 하나하나 처리하며 느꼈던 보람이 있던 기억이다.

아직도 장미단이 존재하는지는 알 수 없다. 정식 직제도 아니었거니와 당시 여러 가지 이유로 사건 처리가 늦어지면서 취했던 일종의 특단의 조치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변호사로서 확실히 알고 있는 것은 지금은 오히려 그런 장기 미제 사건이 더 늘어났다는 것이다.

지난해인 2021년부터 수사권 조정이 시행된 이후로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현상은 사건 처리 기간이 매우 장기화 됐다는 것이다. 그래도 필자가 장미단에서 사건 처리에 열을 올릴 때에는 수사지휘 제도가 있었고 경찰에 3개월 내의 시간을 정해 수사할 것을 지휘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휘 사건들은 검사의 사건처리부에 남아 지휘 기간이 도과하면 빠른 수사를 촉구하고, 안되면 송치 명령을 발해 직접 사건을 처리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대부분 고소 사건을 검찰에서 접수조차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경찰에서 검찰에 송치된 사건의 수사가 미진하더라도 보완수사 '요구'를 할 수 있을 뿐이며 그러한 요구에 기한을 정하지도 못한다. 게다가 보완수사요구가 이루어진 사건들의 목록을 검찰에서 관리하지도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이제 고소장이 제출된 지 1년이 넘도록 사건이 경찰에 계류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할 지경이다. 보완수사요구가 이루어진 다음 6개월 이내에 처리되는 사건은 아직 보지도 못했다. 설령 검찰로 송치된다고 하더라도 그 다음에 검찰에서 얼마나 더 오랜 시간이 걸릴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수사권 조정 이후로 점점 더 지연되는 사건 처리에 많은 당사자가 힘들어하고 있다. 사건 처리 장기화에 대한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장미단 같은 미봉책이라도 시급히 고려되어야 할 시점이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고 했다. 정의를 내세우는 위정자들이 이 법언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법무법인 윈 신기용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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