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속으로] 시작과 끝이 환(還)이 된다면…

  • 오피니언
  • 세상속으로

[세상속으로] 시작과 끝이 환(還)이 된다면…

김재석 소설가

  • 승인 2022-12-26 13:40
  • 신문게재 2022-12-27 18면
  • 김소희 기자김소희 기자
김재석 소설가
베트남의 틱낫한 승려는 '시작'에 대해 경구와 같은 시를 남겼다.

"모든 것은 하나부터 시작한다/ 한 곡의 노래가 순간에 활기를 줄 수 있다./ 한 자루의 촛불이 어둠을 몰아낼 수 있고, 한 번의 웃음이 우울함을 날려 보낼 수 있다./ 한 가지 희망이 당신의 정신을 새롭게 하고, 한 번의 손길이 당신의 마음을 보여줄 수 있다./한 개의 별이 바다에서 배를 인도할 수 있다./ …중략… /한 사람의 가슴이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있고, 한 사람의 삶이 세상에 차이를 가져다준다./한 걸음이 모든 여행의 시작이고, 한 단어가 모든 기도의 시작이다."



나는 새벽에 명상을 하다 가끔 이 시를 떠올리곤 한다. 아기가 일어서 내딛는 첫걸음이 엄마에게는 경이로운 순간이었다면, 인류에게는 원숭이에서 직립보행하는 인간으로의 상징적 첫걸음이었다. 우리가 티셔츠, 컵, 카페 벽에 '처음처럼'을 경구처럼 새겼을 때, 신이 선물한 희망은 시작되었다. 시작은 그런 것이다. 인류라는 종이 무의식의 뇌에 쌓아온 두려움과 공포가 앞길을 주저하게 할 때, 누군가 내딛은 첫걸음은 우리에게 용기를 준다.

올해도 책상 달력은 12월 끝에 와 있다. '내 시작은 미약했으나 끝은 창대하리라'란 성경구절이 아니라 '계획은 거창했으나 돌아보니 남는 건 없네.'로 올해가 마무리될 지도 모르겠다.



'끝'에 관해서는 터키의 시인 나짐 히크메트가 노래한 시가 있다.

"가장 훌륭한 시는 아직 쓰이지 않았다./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리지 않았다./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가장 넓은 바다는 아직 항해되지 않았고/가장 먼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중략…/어느 길로 가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그 때가 비로소 진정한 여행의 시작이다."

누군가 끝자락에 선 듯한 마음이 들 때 이 시는 진정한 여행이 시작되었음을 알린다. 12월의 달력은 끝을 표시하지만 뒷장을 넘기면 꼭 내년의 1월이 한 장 더 붙어있다. 시작과 끝은 우로보로스의 뱀처럼 꼬리를 물고 있다.

나는 그런 점에서 '마음가짐'에 대해 생각을 해봤다. 마음은 어디를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꼭 두 가지 생각이 대립될 때 마음이 심장의 박동처럼 고동친다. '초심을 잃지 않을 것인가?', '이쯤에서 끝장을 볼 것인가?' 이런 생각이 음양으로 대립될 때 마음이 작동한다. 두 음양의 균형추처럼…. 실체도 없는 것이 괴로울 때나 슬플 때, 갈등으로 치달을 때 중심을 잡아주려고 뜬구름처럼 일어난다. 우리 인지하는 뇌의 중심에 형체가 없는 마음이 있다니….

서양의 학문이 인지하는 뇌를 살폈다면 동양의 인문학에서는 형체가 없는 마음을 살펴 '중용'의 도를 이야기했다. 만약 서양의 직선적 시간개념처럼 시작과 끝이 있다면 마음은 그 중간쯤 도착해 있을 것이다. 그 자리에서 '처음처럼'을 되뇌기도 하고, 더 이상 앞길이 안보일 때, '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 이라며 다독이기도 할 것이다.

나에게는 이런 자작시가 있다.

"그녀가 그의 발을 베개 삼아 모로 누웠다./ 그도 그러했다./ 그녀가 머리를 맞대도 모자랄 판에, 하며…./발바닥에는 금이 있어 손금으로 맞대어본다./그대의 운명선이 나에게 닿았다면 76년마다 한바퀴 돌아온다는 헬리혜성의 긴 꼬리표같은 지문일진데/닳고 달아 꼬리에 꼬리를 무는 발냄새와 새벽 출근길 종종걸음으로 내려갔을 굳은살이/ 그 자리에 무늬만 지문인양 남아있다./그녀가 헬리혜성을 타고 긴 여행에서 다녀온 꿈을 꾸고는/우리 환이 되어요/서로의 입술로 발끝을 물고/ 그대의 시작이 나의 끝이 되고/나의 시작이 그대의 끝이 되도록/우리 물고 물리는 사이처럼 보이지만/ 영원히 헤어지지 않는 마음을 가질 거예요./그의 눈물이 그녀의 발바닥 깊은 고랑을 흐른다."

시작과 끝이 늘 물고 물려서 회전하는 마음처럼 인생의 수레바퀴를 굴려가야겠다.
김재석 소설가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정부부처·위원회'의 세종시 이전… 6.3 지방선거 분수령
  2. '결국 일자리'…천안·청주, 청년친화지수 전국 상위권
  3. 역할 커진 의용소방대… 처우 개선·내부 개선 함께 가야
  4. [세종시의원 후보군 릴레이 인터뷰] 17선거구 김현옥 "현장서 답을 찾는 실천형 정치"
  5. 345㎸ 송전선로 대전 5개 자치구와 충남 14개 시군 영향권…"정부차원 재검토를"
  1. 퇴행성 관절염 치료 시대 열리나… 연골 '방패' 단백질 찾았다
  2. 민주당 세종시의원 후보 신청 38명 "검증 개시, AI도 도입"
  3. 지역서 키운 쌍둥이 경찰의 꿈… 건양대 글로컬캠퍼스서 현실로
  4. 도심 유휴공간, ‘스마트팜으로 대변신’
  5. [사설] 수도권 잔류 정부부처·위원회 세종 이전해야

헤드라인 뉴스


李정부 국정과제 후속조치 하세월…충청 핵심 현안 지지부진

李정부 국정과제 후속조치 하세월…충청 핵심 현안 지지부진

이재명 정부가 국정과제 반영을 통해 충청권 등 지역 현안 해결을 약속했지만, 이를 뒷받침할 후속 조치는 여전히 지지부진하다. 특히 혁신도시 공공기관 2차 이전 등 주요 사업이 포함된 지역 과제 세부 계획 발표가 늦어지면서, 사업 추진 동력은 물론 국가 계획 반영 여부마저 불투명해지고 있다. 19일 지방시대위원회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해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맞춰 '17개 시·도별 7대 공약, 15대 지역 과제'를 확정하고, 이를 국가균형성장 종합계획에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후속 절차는 속도를 내지 못한 채 답보 상태다. 당..

충청권 혼인 늘고 이혼 줄었다…대전 조혼인율 전국 1위
충청권 혼인 늘고 이혼 줄었다…대전 조혼인율 전국 1위

대전과 세종이 전국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조혼인율을 기록하며 '젊은 도시'의 면모를 다시 한번 입증했다. 특히 대전은 인구 1000명당 혼인 건수를 의미하는 조혼인율이 6.1건으로 전국 1위를 기록하며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가장 높은 곳에 이름을 올렸다. 19일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2025년 혼인·이혼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결혼 건수가 높은 증가세를 유지한 24만 건으로 전년보다 1만 8000건(8.1%) 증가하며 팬데믹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이는 2018년(25만 8000건) 이후 7년 만에 가장 많은 규모다. 국가데..

세종시·국회의원 `행정수도 명문화` 협력… 시기와 방법은 이견
세종시·국회의원 '행정수도 명문화' 협력… 시기와 방법은 이견

우원식 국회의장이 제안하고 이재명 대통령이 재차 주문한 ‘단계적 개헌’과 관련, 세종시와 세종시 국회의원이 행정수도 명문화 개헌에 힘을 모으기로 했다. 다만 정부와 정치권에 검토 중인 6월 3일 지방선거와 ‘5·18 정신 헌법 전문 수록과 비상계엄 요건 강화, 지역균형발전 정신’을 담은 개헌 국민투표에 '행정수도 세종'을 포함하는 것에 대해선 이견을 보였다. 세종시는 19일 여의도 서울사무소에서 최민호 세종시장과 더불어민주당 강준현(세종시을)·조국혁신당 황운하(비례) 의원의 '세종시 행정수도 완성을 위한 정책간담회를 마련했다. 간담..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번호판 키우고 더 뚜렷해졌다’…이륜차 전국번호판 도입 ‘번호판 키우고 더 뚜렷해졌다’…이륜차 전국번호판 도입

  • 지역사회 든든한 파트너…제5주년 의용소방대의 날 개최 지역사회 든든한 파트너…제5주년 의용소방대의 날 개최

  • 이란 침략 전쟁 중단 촉구 기자회견 이란 침략 전쟁 중단 촉구 기자회견

  • 도심 유휴공간, ‘스마트팜으로 대변신’ 도심 유휴공간, ‘스마트팜으로 대변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