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人칼럼] 자연과 함께하는 삶의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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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人칼럼] 자연과 함께하는 삶의 즐거움

이은봉 시인·대전문학관 관장

  • 승인 2023-03-15 11:12
  • 신문게재 2023-03-16 19면
  • 정바름 기자정바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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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봉 관장
봄비가 촉촉이 대지를 적시고 있는 주말 오후다. 유리창에 붙어 있는 물방울을 바라보다가 이런저런 생각에 잠긴다. 우산을 쓰고 거리로 나가볼까. 모듬내 둑길이라도 걸어볼까. 아직은 바람이 찰 것만 같다.

오늘은 이렇게 비가 내리지만, 어제는 햇볕이 아주 밝았다. 확연히 봄이 온 듯싶었다. 그렇다. 어제는 날씨가 따뜻할 뿐만 아니라 조금은 덥기까지 했다. 그런데도 오늘은 봄비가 내리고 바람이 부는 것이다. 변덕이 심한 자연이라니!

어제는 토요일, 모처럼 하루의 시간을 통째로 냈다. 겨우내 버려두었던 정안의 부채밭에 가볼 계획이었다. 정안의 부채밭에는 내가 '월산재'라고 이름 붙인 작은 농막이 있고, '해평고'라고 이름 붙인 작은 창고가 있다. 부채밭과 농막과 창고는 자연과 더불어 살고자 하는 내 오랜 꿈이 만든 터전이다.

물론 어제도 아내와 동행했다. 이곳에 작은 파라다이스를 건설하는 데 좀 더 적극적인 것은 나보다 아내였는지도 모른다. 이 작은 파라다이스에 대한 사랑도 나보다 아내가 더 크지 않을까.

온종일 따듯한 햇볕이 들기는 했지만 부채밭에는 아직 봄이 다 와 있지는 않았다. 밭둑의 풀들도 미처 잎을 피우지 못했고, 화단의 꽃들도 미처 송이를 열지 못했다. 산수유만 겨우 노란 입술을 뽀짝뽀짝 내밀고 있었다. 청매와 홍매도 간신히 꽃송이를 다독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목련은 채 꽃봉오리를 모으지도 못하고 있었다. 산속 마을이라 아무래도 봄이 늦게 오는 듯했다

그렇다고는 하더라도 완두콩을 심을 때가, 감자를 심을 때가 된 것은 사실이었다. 완두콩 씨는 정안의 농협에서 진작 아내가 사 둔 것이 있었고, 씨감자는 장기의 종묘상에서 오늘 내가 구입한 것이 있었다. 씨감자를 구입하면서 딸기 모종도 4개를 구입했다. 흙을 고르는 일에 도움이 될 것 같아 쇠갈퀴도 하나 샀다.

농사일은 아무리 서둘러도 끝이 없었다. 온종일 종종댔지만 오늘 하루 해야 할 몫을 다 마치지는 못했다. 완두콩은 모두 파종을 했지만 감자는 거름을 섞으며 두둑을 다 만들고도 끝내 파종을 못했다. 거름을 섞으며 두둑을 만드는 일이 정작은 힘든 일이기는 하지만! 물론 이들 일을 하는 사이에 회양목 7주를 심기도 했고, 복분자 딸기나무 6주를 심기도 했다. 오늘 구입한 딸기 모종 4개도 심었고, 지난 연말 사둔 튤립 10뿌리도 심었다.

갑자기 밭일에 휘둘리다 보니 온몸이 찌그러드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기분은 상쾌했다. 마음이 깨끗하게 정화되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는 뜻이다. 자연과 함께하다 보면 몸은 좀 피곤하더라도 마음이 맑아지는 체험을 하고는 한다.

내가 보기에 자연은 대개 두 가지의 특성을 갖는다. 하나는 '운행하는 질서'라는 특성을 갖고, 다른 하나는 '깨어 있는 생명'이라는 특성을 갖는다. 자연을 '운행하는 질서'로 인식하는 것은 고전주의적 시각과 연결되어 있고, '깨어 있는 생명'으로 인식하는 것은 낭만주의적 시각과 연결되어 있다.

자연이 고전주의적 시각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그것이 원리이고 이치라는 것을 가리킨다. 자연이 낭만주의적 시각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그것이 에너지이고 충동衝動)이라는 것을 뜻한다. 자연은 이처럼 '원리 및 이치로서의 특성'과 '에너지 및 충동으로서의 특성'을 동시에 갖는다.

자연이 갖는 이 두 가지 특성은 공히 다 소중하다. 어느 것은 옳고 어느 것은 그른 것이 아니다. 자연은 '운행하는 질서'로서의 특성도 있고, '깨어 있는 생명'으로서의 특성도 있다. 자연이 갖는 '질서'와 '생명'이라는 특성은 동전의 양면과 갖는 것이라는 얘기이다.

자연과 함께할 때 몸과 마음이 맑게 정화되는 것도 그것이 지닌 이러한 특성과 무관하지 않다. 자연이 갖는 이들 특성 때문에 그것과 함께할 때 인간은 몸과 마음이 맑게 정화되는 느낌을 갖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자연과 함께하는 삶이 어찌 즐겁지 아니하겠는가. 남은 생을 자연과 함께하며 '운행하는 질서'로, '깨어 있는 생명으로 살고 싶은 것이 오늘의 내 바람이다. / 이은봉 시인·대전문학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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