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자전적 다성의 목소리로 살아낸 세월의 집”

  • 오피니언
  • 사외칼럼

[기고] “자전적 다성의 목소리로 살아낸 세월의 집”

극단 '앙상블' 연극 '봄 여름 가을 겨울' 비평

  • 승인 2023-06-20 08:49
  • 정바름 기자정바름 기자
clip20230620083155
김충일 연극비평가
2020년도 대한민국 대표 희곡 명작선으로 선정되어 관객과 평단의 사랑을 꾸준히 받아온 도완석 작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전문예술단체 극단 '앙상블' 130회 정기 공연 작품으로, 지난 5월 30일부터 6월 2일까지 한남대학교 서의필 홀에서 초연됐다.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에 강폭이 넓고 물이 흐려 건너기 힘들다면, 뒤를 돌아보지 말고 흐린 강물이 되어 디딤돌을 놓아야 한다. 우리는 '삶의 노을'이 질 때까지 사람을 만나기 위해 강물을 건너려 애쓰면서, 강물이 만들어내는 거리감을 감내하면서, 다른 디딤돌을 늘 수고롭게 예비하면서, 사람을 만나러 다니는 인생을 산다. 연극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이를 담담히 풀어내고 있다.

이 연극은 연출을 맡은 도완석의 자전적인 삶의 속내가 녹아든 초연 창작극. '봄 여름 가을 겨울' 속 봄은 어린 시절, 여름은 청년 시절, 가을은 중년 시절, 겨울은 노년 시절이란 순환적인 삶의 디딤돌로 이어져 흐린 강물이 되어 흘러간다. 6.25 때 부모를 잃은 시골의 한 소년이 누나를 고향에 두고 혼자 아버지를 찾으러 서울에 갔다가 자수성가해 유명한 판사가 된 뒤 갖은 고생을 뒤로하고 살아온 누나를 찾아가는 삶의 이야기이다. 궁핍하고 엄혹한 시대를 실제로 살아냈던 동시대인들이 자신의 떠나보낸 강물을 되새겨 볼 계기가 되면서 세대 구분 없는 시대극으로 다가온다.

우리는 자신의 과거에 대한 물음과 대답에 있어서조차 변덕스러운 존재이기에 연극 속 등장인물들은 삶에 속임을 당하면서 빗나간 '봄, 여름, 가을, 겨울' 속, 인생이란 강물을 건너간다. 그 속에서 배고파 울고 추워 울고 잃어버린 가족들 그리워 울고 사람 인심 서럽고 더러워 울기도 한다. 그러다 사람 사이의 흐린 강물을 인정하면서 다행히 나한테는 어릴 적부터 예배당에 다닌 덕에 신앙이 있어 힘들 때마다 고비를 넘기며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삶을 성찰하고, 게다가 차분히 참아내며 사람다움을 잃지 않는다. 즉 자전적 스토리텔링을 통해 자신의 삶을 사유하고 치유하는 예술 체험으로서의 '치유극(Healing play)'으로 자리 잡는다.



무대는 관객의 간접 체험현장이다. 사계(四季)가 옴니버스(omnibus)식 무대 형식으로 연결되는 가운데, 그 속에서 수준 높은 생활 연기를 보여준 베테랑 배우들의 연기는 새롭게 합류한 장애우, 다문화가정 아역 배우들과의 부딪힘과 어울려 극에 활력과 신선감을 더해 주었다. 특히 극의 흐름을 조율하는 드라마 트루기(Dramaturgy)적 감각 연기를 보여준 이종국 배우는 극의 중심을 잡아주었다. 또한 시대적 현장감은 영상화면, 자막해설, 흘러간 트롯 등이 무대 위에서 당대의 사실적 모습으로 재현되었는데 '이 작품'을 볼만하게 만든 놓칠 수 없는 또 하나의 감상 포인트가 됐다.

궁핍한 시대를 살아낸 우리들의 자화상인 '봄 여름 가을 겨울'. 작/연출가의 '개인사적인 고백이라는 사적 역사'를 뛰어넘어 6.25전쟁, 분단, 4.19, 새천년으로 이어지는 공적 역사 속 기억의 체험을 '다성(多聲)적 예술 장치'를 통해 '자신이 만들어낸 의미의 망'으로 육화한 '좋은 작품'으로의 즐거운 만남이었다. '청소년들에게 인성 회복, 올바른 역사 가치관 정립 등을 목표로 한 생활교육 연극'을 가로질러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모든 이(부모와 자녀)들이 무대 앞에 손잡고 함께 앉아 볼 수 있는 연극으로 '재탄생'하기를 기대한다.

6월의 더위를 품은 바람을 맞으며 공연장을 나서는데 마지막 트롯 곡인 양희은의 '인생의 선물'이란 노래 속 청아한 목소리와 "일장 춘몽이라카드니 모두 다 그렇게 사라지는 갑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은 이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진다 카는 말씀이 맞는기라 이기 인생인 줄도 모르고"란 정남의 독백이 흐린 강물을 건너며 디딤돌 찾기에 바쁜 필자의 발걸음을 힘 있게 해줬다. / 김충일 연극비평·북 칼럼니스트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사설] 최교진 교육장관의 '교권 보호' 언급
  2. [월요논단] 교통약자의 편리한 이동을 위한 공공교통
  3. 지질자원연 창립 77주년, 새 슬로건 'NEO KIGAM 지구를 위한 혁신'
  4. [사설] K-스틸법으로 철강산업 살려내야 한다
  5. 특구재단 16~17일 '대덕특구 딥테크 창업·투자주간'
  1. 대전권 4년제 수시 경쟁률 상승… 한밭대·우송대 선전
  2. [홍석환의 3분 경영] 무능한 리더가 조직에 미치는 영향
  3. 폭우에 도로 잠기고 나무 쓰러져…당진서 알레르기 환자 긴급 이송
  4. 9월 무더위 계속…16일 충남 서해안 강우
  5. 조선 조운선 '마도4호선' 첫 발굴 10년만에 선체인양…나무못과 볏짚 활용 첫 확인

헤드라인 뉴스


역대 정부 `금강 세종보` 입장 오락가락… 찬반 논쟁 키웠다

역대 정부 '금강 세종보' 입장 오락가락… 찬반 논쟁 키웠다

이재명 새 정부가 금강 세종보 '철거 vs 유지' 사이에서 오락가락 행보를 보이면서, 찬반 양측 모두의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미래 방향성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이는 이전 정부부터 반복되는 악순환이다. 실제 노무현 정부 당시에는 행복도시 내 '금강 친수보' 건립으로 추진했으나, 문재인 정부에선 주민 의견수렴 과정을 거쳐 '철거'란 상호 배치된 흐름을 보였다. 이명박 정부의 '4대강 보'와 태생이 다르나 같은 성격으로 분류되면서다. 지방정부 역시 중립적이고 실용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어, 환경부가 밀어부치기식 정책 추진을 할..

규제도 피하고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 주택신축판매업자 급증
규제도 피하고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 주택신축판매업자 급증

국토교통부 장관에게 건설 승인을 받지 않고 주택 통계에도 포함되지 않는 ‘주택신축판매업자’가 전국적으로 8만7876개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엄격한 주택법을 피하면서 주민 복리시설이나 소방시설 등 엄격한 규제조차 제대로 받지 않는 데다, 정부의 주택통계 작성과정에서도 빠져 부실한 관리를 초래해왔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더불어민주당 박용갑 의원(대전 중구)이 국토교통부로 받은 ‘주택신축판매업을 영위하는 개인·법인 가동사업자 현황’ 자료를 분석한 결과, 전국적으로 모두 8만7876개의 주택신축판매업자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주택신..

정부, 추석 성수품 역대 최대 규모 공급... 최대 900억 투입 과일 등 할인
정부, 추석 성수품 역대 최대 규모 공급... 최대 900억 투입 과일 등 할인

정부가 추석 성수품을 역대 최대 규모인 17만 2000톤을 공급한다. 최대 900억원을 투입해 과일·한우 등 선물 세트를 최대 50% 할인하며, 전국에 2700여 곳의 직거래장터를 개설한다. 정부는 15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열어 이러한 내용의 '추석 민생안정대책'을 발표했다. 정부는 농·축·수산물의 가격·수급 안정을 위해 공급을 확대한다. 공급 물량은 농산물 5만톤, 축산물 10만 8000톤, 수산물 1만 4000톤 등 17만 2000톤으로, 평시의 1.6배 규모다...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새마을문고 사랑의 책 나눔…‘나눔의 의미 배워요’ 새마을문고 사랑의 책 나눔…‘나눔의 의미 배워요’

  • 추석맞이 자동차 무상점검 추석맞이 자동차 무상점검

  • 제16회 대전시 동구청장배 전국풋살대회 초등3~4학년부 FS오산 우승 제16회 대전시 동구청장배 전국풋살대회 초등3~4학년부 FS오산 우승

  • 제16회 대전시 동구청장배 전국풋살대회 여성부 예선 제16회 대전시 동구청장배 전국풋살대회 여성부 예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