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광장] 당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 오피니언
  • 목요광장

[목요광장] 당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진영 변호사

  • 승인 2023-08-02 15:10
  • 신문게재 2023-08-03 18면
  • 심효준 기자심효준 기자
2023041201000914900036461
이진영 변호사.
변호사의 일 중 하나는 역사적 사건을 정리하는 것이기도 한데, 여기서 '역사'는 사람들이 기억할 만한 중요한 일(historic)이라는 의미는 아니고, 일정 시점과 장소에서 벌어진 하나의 사건에 대한 역사적 정의(historical definition)에 가깝다.

법은 재미있게도, 일정한 인간의 '행위'의 원인을 인간의 '의사'에서 찾는다. 좀더 일상적인 말로 하자면, "네가 그러한 행동을 한 데에는 다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냐"고 생각한다는 뜻이다(그래서 법을 처음 공부하는 학생들이 듣는 수업과목인 민법총칙 시간에 '의사'를 다시 '행위의사', '표시의사', '효과의사'등으로 구분해 배우는데, 사실 무슨 말인지 전혀 알아듣지 못한다).

이러한 법의 논리에는 인간의 선택이 합리적일 것이라는 일종의 가정이 깔려 있다. 법을 처음 공부할 때는 대체 무슨 소리인지 모르다가도, 오랜 시간 동안 비슷비슷한 내용을 반복하게 되는 변호사들은 알게 모르게 위와 같은 '가정'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그런데 여기에는 일정한 의도가 깔려 있다. 법은 인간의 행위에 대한 책임을 그 행위를 한 인간에게 귀속시키고자 하는데, 누군가의 행위가 그 사람의 책임이 되기 위해서는 '다 알고 선택한 게 아니냐'라는 전제가 필요한 것이다. 이런 생각은 사실 근대의 발명품인 '합리적 인간'의 핵심이기도 하다.

우리는 점심시간에 나가서 밥을 사서 먹을 때도 무엇을 먹으면 맛있을지, 또 그게 얼마인지를 계산하는 일(경제학에서는 이를 기회비용 같은 말로 설명한다)을 일상적으로 반복하고 있으므로 법의 이러한 가정은 일견 타당해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변호사로서 다른 사람들의 역사적 사건을 듣다 보면 상당히 많은 경우에 '그때 그 사람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잘 알기 어려운 때가 있다(알기 어렵다는 것은 청자인 내가 화자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지만, 화자가 그 당시에 딱히 명확한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간단한 예를 들면, A가 몇 월 며칠 B에게 1억 원의 돈을 주었다는 사실은 명확하지만, A가 B에게 그 돈을 준 이유가 무엇인지(빌려준 것인지, 투자를 한 것인지), B가 돈을 돌려주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A도 알고 있었는지(위험 발생의 예상 가능성), B가 돈을 돌려주지 못하게 될 경우 책임은 누가 지기로 한 것인지가 언제나 명확하지는 않다는 뜻이다.

법이 생각하는 '역사적 사실'은 단순히 일어난 사실이라기보다 누가 어떤 의도로 이러한 행위를 했는가를 의미하는 것이 된다는 점에서, 실제로는 행위자의 의도 자체가 불분명한 경우 사실 자체를 확정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그럴 때면 사람들이 자신의 의사에 따라 행동을 하는 것이라는 법적 전제 자체가 맞는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들기도 한다. 나쁘게 말하면 사람들은 '결과가 좋다면 그 결과는 나의 것이 되어야 하지만. 상황이 나빠진다면 그 책임까지 내가 지기로 한 것은 아니다'라는 정도로 생각하기도 하고, '사실은 내가 그러려고 그런 것은 아닌데 상대방이 오해를 한 것이다'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선택에 대한 책임. 말은 쉽지만, 전혀 쉽지 않은 이야기이다. 변호사가 되고 나서 가장 무겁게 다가오는 말이기도 하다. 한편 모든 결과의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는 것이 사회적으로 옳은가에 대한 의문도 있다. 개인으로서 나는 하루에도 무수히 내려야만 하는 다양한 선택들을 늦지 않게 내리는 일이 늘 피곤하다. 변호사로서 나는, 법이 그토록 인간의 의사를 중요시하는 것이, 행위의 책임을 개인에게 지우기 위한 방법이고, 이를 통해 사회를 유지하는 방식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됐다. 물론 때로는 가혹하며 부당하다고 여겨질 때도 있다. 어쩌면 변호사는 그 사이에서 구체적인 사실을 발견하고 거기에 맞는 타당한 해결책을 찾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진영 변호사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함께 지켜온 물, 대청호의 다음 25년] 24년 거버넌스의 한계… 충청의 물, 이제 유역 전체를 보자
  2. [2026 기초기본캠페인]학하초, 더 촘촘해진 RISE…학생의 '성장 속도'를 맞추다
  3. 예년보다 이른 '9월 독감' 유행…국가예방접종 어르신은 추석 이후
  4. 충청권 초등 급식비도 지역차…충북 4322원·대전 3620원
  5. 55년 만에 바뀌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 교육감들 “재정 감소 검증해야”
  1. 6개월 아들 방치해 사망… 20대 부부, 살해 혐의는 부인
  2. 건양대병원, 위험에 빠진 고위험 산모 새벽 응급수용으로 출산 도와
  3. 충남대 교수·간호사 부부 ‘해먹’에서 찾은 욕창 방지 매트리스 개발
  4. 글로벌 식품기업 '아이씨푸드' 충남대병원에 5천만원 기탁
  5. 대전경찰, 추석 연휴 종합치안대책 추진…“시민이 체감하는 안전에 최선”

헤드라인 뉴스


충청광역연합 다시 기지개… 출범후 21개월만에 첫 협의회

충청광역연합 다시 기지개… 출범후 21개월만에 첫 협의회

2024년 전국 최초 특별지방자치단체 출범 이후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던 충청광역연합이 민선 9기에서는 충청권 4개 시·도의 진정한 구심점으로 거듭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충청광역연합은 17일 천안 독립기념관 겨레누리관에서 '제1회 충청광역연합 협의회'를 개최했다. 회의에는 연합장 박수현 충남지사를 비롯해 허태정 대전시장, 조상호 세종시장, 신용한 충북지사가 모두 참석했다. 이들은 이날 '발전공기업 통합본사 충남 설치 충청권 4개 시·도지사 공동성명'을 전격 채택하며 첫 공식 행보로 충남도 안건에 힘을 실었다. 정부가 기후위기 대..

기업 10곳 중 9곳 "올 추석, 나흘 이상 쉰다"
기업 10곳 중 9곳 "올 추석, 나흘 이상 쉰다"

올 추석 연휴 휴무를 실시하는 기업 10곳 중 9곳이 나흘 이상 쉬는 것으로 나타났다. 추석상여금을 지급하는 기업은 지난해보다 줄었고, 기업 절반가량은 추석 경기가 나빠졌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17일 발표한 '2026년 추석 휴무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 기업의 97.0%가 올해 추석 연휴에 휴무를 실시한다고 답했다. 휴무를 실시하는 기업 중 휴무 기간이 '4일'이라는 응답은 76.5%로 가장 많았고, '5일 이상'도 14.2%로 조사돼 나흘 이상 쉬는 기업은 전체의 90.7%에 달했다. 반면 '3일 이..

충남교원 10명 중 9명 "초등 저학년 교육시간 확대 반대"
충남교원 10명 중 9명 "초등 저학년 교육시간 확대 반대"

충남지역 교원 10명 중 9명 이상이 초등학교 저학년 정규수업시간 확대에 반대하고, 교육시간 확대를 통한 돌봄 공백 해소 효과에도 부정적인 전망이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충남교원단체총연합회(이하 충남교총)는 정책 논의 기준을 도입 여부가 아닌, 교육적 타당성 검증으로 재설정해야 한다며 전면 재검토를 촉구했다. 충남교총은 17일 충남 유·초·중·고 교원 181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초등 저학년 교육시간 확대 논의에 관한 교원 인식 조사 결과, 정규수업시간 확대를 반대하는 교원은 93.5%, 찬성은 5.3%로 집계됐다고 발표..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사랑의 송편 나눔’…명절 꾸러미 한가득 ‘사랑의 송편 나눔’…명절 꾸러미 한가득

  • 대전 동부소방서, 추석 앞 화재안전 점검 대전 동부소방서, 추석 앞 화재안전 점검

  • ‘대한민국의 情을 보냅니다’ ‘대한민국의 情을 보냅니다’

  • 경영악화로 폐업하는 대전서남부터미널 경영악화로 폐업하는 대전서남부터미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