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 역사가 기억하는 것들

  • 오피니언
  • 풍경소리

[풍경소리] 역사가 기억하는 것들

송기한 대전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 승인 2023-10-30 10:28
  • 수정 2023-10-30 11:33
  • 신문게재 2023-10-31 19면
  • 이유나 기자이유나 기자
송기한
송기한 대전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역사가 기억하는 것들, 소위 청사(靑史)에 남는 것들이란 무엇일까.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악보다는 선을, 자신의 이익보다는 타자의 이익을, 힘센 자보다는 약한 자들을 위해 살아간 사람들, 곧 대의(大義)를 위해서 살아간 사람들을 역사는 기억하고 또 이들을 찬양할 것이다. 비단 이러한 일들은 보편의 차원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현재의 삶의 공간을 만들어준 이들도 좋은 실존의 환경을 마련해준 것에 대해 마찬가지의 찬양을 받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진영 논리에서 비롯된 분열의 시대에 놓여 있거니와 더 나아가 분단의 시대에 살고 있다. 전자는 그 양상이 점점 심화하고고 있지만, 후자는 우리들의 기억에서 서서히 잊혀가고 있다. 한때 분단의 극복이니 통일의 시대니 하는 담론들이 우리 사회에 유행처럼 번져 나간 적이 있다. 그리하여 그것이 시대의 당면 과제로 받아들여지면서 조만간 하나의 민족으로 거듭 태어날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갖게 했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한때의 유행에 그친 감이 없지 않고, 이제는 대중들의 기억에서조차 잊혀가고 있다.

이런 상황은 미국의 경우와 좋은 대비가 된다. 예전에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 간 적이 있다. 역사 도시답게 독립선언서가 낭독된 자리라든가 초대 대통령이 취임한 곳이 잘 보존되어 있음을 볼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과거의 역사적 인물들, 가령, 남북 전쟁을 승리로 이끈 링컨이나 독립선언서를 기초한 토머스 제퍼슨의 기념관 등등이 곳곳에 세워져 있었다. 그 가운데 미국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은 링컨기념관이다. 16대 대통령에 오른 링컨의 업적은 대단히 많다. 민주주의를 향한 유명한 게티즈버그의 연설이라든가 노예 해방, 남북 전쟁에서의 승리 등등이 그 본보기들이다. 그런데 이 가운데 미국인들이 가장 주목하는 것은 그가 연방파였다는 것,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남북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점이다.

역사란 승자의 기록이라고는 하지만, 미국인들이 링컨에게서 들은 것은 승자의 나팔소리 만이 아니었다. 그는 연방을 지지했고, 이를 위해 노력했으며 궁극에는 이를 지켜냈다는 사실이다. 이는 곧 지금의 미합중국을 만든 토대가 되었는데, 만약 링컨의 연방파가 비연방파에 패했다면, 현재의 팍스아메리카나(大美國, Pax Americana)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전 세계의 경찰 국가를 자처하는 미국, 세계 최강의 미국이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것이 자신들만의 이기주의에 빠져서 미국의 분열을 조장했던 남부의 인사들, 특히 분열파인 남부의 초대 대통령인 제퍼슨 데이비스 등을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이유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수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저출산으로 인해 민족 소멸 단계의 초입에 서 있기도 하고, 극심한 진영 논리로 우리 국민은 이리저리 갈라져 있다. 표를 많이 얻기 위해서는 훌륭한 정책 등이 아니라 감정이 실린 진영 논리만큼 좋은 수단도 없을 것이다. 이 시대에 그것처럼 손쉬운 득표 활동이 있을까. 합리적으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은 이에 쉽게 휘말려 들어가는 까닭이다. 이로 인해 남북뿐만 아니라 남쪽 내부도 분열될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이 우리의 현 상황이다.

언제가 한반도는 통일이라는 대업의 시대를 분명 맞이할 것이다. 202X년, 20XX년, 2XXX년이 될 터인데, 만약 그 시대가 도래한다면 2XXX년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지금 이 시대의 우리를 어떻게 기억하고 평가할 것인가.

통일은 팍스 코리아나, 곧 대한국(大韓國)의 시대가 되는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들은 진영 논리를 전파하며 국민을 갈라치고 증오의 정서를 전파한 사람들을 기억할 것인가, 아니면 국민의 갈등을 봉합시키고 팍스 코리아나의 초석을 세운 사람들에 가치를 둘 것인가. 2XXX년의 사람들은 말할 것이다. 분단을 막고 통일 정부를 위해 애쓴 백범 김구를, 분단을 넘기 위해 햇볕 정책을 신념으로 펼쳐나간 김대중 대통령을 기억할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평화를 위해 노구의 몸을 이끌고 소 떼 수백 마리를 데리고 북으로 간 정주영 현대 회장도 알 것이다. 그리고 갈등보다는 평화를, 분열보다는 통합을, 복수보다는 용서를 위해 살다간 이 시대 대다수 사람들을 그들은 역사 영웅으로 또한 기억할 것이다.

송기한 대전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당신을 노리고 있습니다”…대전 서부경찰서 멈춤봉투 눈길
  2. 충청권 4년제 대학생 2만 명 학교 떠나… 대전 사립대 이탈 심각
  3. 대전·충북 회복기 재활의료기관 총량 축소? 환자들 어디로
  4. 충남도, 국비 12조 확보 위해 지역 국회의원과 힘 모은다
  5. 경영책임자 실형 선고한 중대재해처벌법 사건 상소…"형식적 위험요인 평가 등 주의해야"
  1. 충남도의회, 학교 체육시설 개방 기반 마련… 활성화 '청신호'
  2. ‘푸른 하늘, 함께 만들어가요’
  3. 대전동부교육지원청, 학교생활기록부 업무 담당자 연수
  4. ‘대전 병입 수돗물 싣고 강릉으로 떠납니다’
  5. 충남권 역대급 더운 여름…대전·서산 가장 이른 열대야

헤드라인 뉴스


충청권 4년제 대학생 2만 명 학교 떠나… 대전 사립대 이탈 심각

충청권 4년제 대학생 2만 명 학교 떠나… 대전 사립대 이탈 심각

전국 4년제 대학 중도탈락자 수가 역대 최대인 10만 명에 달했던 지난해 수도권을 제외하고 충청권 대학생들이 가장 많이 학교를 떠난 것으로 조사됐다. 대전권에선 목원대와 배재대, 대전대 등 4년제 사립대학생 이탈률이 가장 높아 지역 대학 경쟁력에서도 뒤처진 것으로 나타났다. 4일 종로학원이 발표한 교육부 '대학알리미' 분석에 따르면, 2024년 전국 4년제 대학 223곳(일반대, 교대, 산업대 기준, 폐교는 제외)의 중도탈락자 수는 10만 817명이다. 이는 집계를 시작한 2007년 이후 역대 최대 규모인데, 전년인 2023년(10..

꿈돌이 컵라면 5일 출시... 도시캐릭터 마케팅 `탄력`
꿈돌이 컵라면 5일 출시... 도시캐릭터 마케팅 '탄력'

출시 3개월여 만에 80만 개가 팔린 꿈돌이 라면의 인기에 힘입어 '꿈돌이 컵라면'이 5일 출시된다. 4일 대전시에 따르면 '꿈돌이 컵라면'은 매콤한 스프로 반응이 좋았던 쇠고기맛으로 우선 출시되며 가격은 개당 1900원이다. 제품은 대전역 3층 '꿈돌이와 대전여행', 꿈돌이하우스, 트래블라운지, 신세계백화점 대전홍보관, GS25 등 주요 판매처에서 구매할 수 있다. 출시 기념 이벤트는 12일부터 14일까지 3일간 유성구 도룡동 엑스포과학공원 내 꿈돌이하우스 2호점에서 열린다. 행사 기간 ▲신제품 시식 ▲꿈돌이 포토존 ▲이벤트 참여..

서산 A 중학교 남 교사, `학생 성추행·성희롱` 의혹, 경찰 조사 중
서산 A 중학교 남 교사, '학생 성추행·성희롱' 의혹, 경찰 조사 중

충남 서산의 한 중학교에서 남성 교사 A씨가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개월간 성추행과 성희롱을 했다는 고소장이 접수돼 경찰이 수사 중이다. 일부 피해 학생 학부모들은 올해 학기 초부터 해당 교사가 학생들을 대상으로 반복된 부적절한 언행과 과도한 신체접촉을 주장하며, 학교에 즉각적인 교사 분리 조치를 요구했다. 이에 학교 측은 사건이 접수 된 후, A씨를 학생들과 분리 조치하고, 자체 조사 및 3일 이사회를 개최해 직위해제하고 학생들과의 접촉을 완전히 차단했으며, 이어 학교장 명의의 사과문을 누리집에 게시했다. 학교 측은 "서산교육지원청과..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대전 동구 원도심에 둥지 튼 대전일자리경제진흥원 대전 동구 원도심에 둥지 튼 대전일자리경제진흥원

  • ‘대전 병입 수돗물 싣고 강릉으로 떠납니다’ ‘대전 병입 수돗물 싣고 강릉으로 떠납니다’

  • ‘푸른 하늘, 함께 만들어가요’ ‘푸른 하늘, 함께 만들어가요’

  • 늦더위를 쫓는 다양한 방식 늦더위를 쫓는 다양한 방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