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난순의 식탐] 오 소올레 오 솔레 미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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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난순의 식탐] 오 소올레 오 솔레 미이오~

  • 승인 2023-11-15 10:37
  • 신문게재 2023-11-16 18면
  • 우난순 기자우난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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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봄 다니던 직장을 미련없이 때려치웠다. 얼마 안되는 퇴직금이 내 손에 쥐여졌다. 미래에 대한 계획은 안갯속이었다. 그래도 후련했다. 초여름 어느날, 피자가 확 당겼다. 당시 피자집은 '피자 헛' 하나였다. 오류동 미성스포츠 건물(현재 중도일보 건물) 1층에 자리잡은 '피자 헛'으로 달려가 한 판을 시켰다. 도톰한 도우 위의 토핑이 푸짐했다. 치즈가 쭈욱 늘어나는 따끈한 피자 한 조각을 들어 입에 넣자마자 식욕이 폭발했다. 입 안 가득 넣고 쩝쩝거리면서 톡 쏘는 콜라로 입가심했다. 피자와 콜라의 궁합이 환상이었다. 그땐 하루살이같은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뭐 어떻게 되겠지, 그런 마음이었다. 눈 앞에 있는 먹잇감에만 집중했다. 김치부침개 만한 피자가 내 삶의 전부인 양, 골치아픈 앞날은 애써 생각하지 않았다. 피자 한 판을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먹었지만 20% 부족했다.

3주 전 서울 사는 친구를 1년 만에 만났다. 점심은 성심당 '플라잉팬'으로 정했다. 꼭 20년 전에 후배 친구가 이곳 매니저로 있다고 해서 여러명이 피자를 먹은 적이 있다. 그러곤 이번이 두 번째다. 우리는 피자와 리소토를 주문했다. 콰트로 포르마지오. 이름이 생소했는데 고르곤졸라라고 친구가 알려줬다. 도우가 얇고 토핑도 단순했다. 표면이 거뭇거뭇 탄 것이 화덕 피자 맞았다. 친구와 나는 쉴새없이 떠들면서 먹었다. 리소토는 말만 들었지 처음 먹어보는 음식이었다. 문득 멀리 이탈리아 나폴리에 여행 온 듯한 착각이 일었다. 식당의 분위기도 한 몫 했다. 빈티지한 소품들이 고풍스러웠다. 테이블마다 간격이 짧지만 세련된 인테리어 덕분에 답답하지 않았다. 오히려 옛날 안방에서 온 식구가 두리반에 둘러앉아 밥먹던 추억이 떠올랐다. 서빙하는 직원에게 음식이 참 맛있다고 하자 "제가 요리한 건 아니지만 감사합니다"라며 활짝 웃었다.

친구는 내년에 명예퇴직 할 거라고 했다. 몇 년 일찍 하지만 나머지 월급도 다 받는다나? 노후를 완벽하게 준비한 친구가 겁나게 부러웠다. 잊고 있었던 저번에 산 로또가 생각났다. 로또만 된다면. 하늘님께 뇌물이라도 써야 하나. 친구는 나에겐 멘토 같은 사람이다. 나이를 먹으면서 마당발 같은 인간관계보다는 진실한 마음을 주고받는 한명의 친구가 소중하다는 걸 깨닫는다. 자신한테는 지극히 검소하지만 주변사람에겐 아낌없이 베푸는 내 친구. 무간지옥 같은 세상에서 버텨내는 나에게 친구와의 만남은 권태로운 일상에서 한줌 햇살이다. 고행의 달인 싯타르타도 이런 내 마음 백번 공감하겠지?

세계적으로 피자만큼 사랑받는 음식이 있을까. 피자의 탄생지는 이탈리아다. 그래서 피자의 본토발음은 '핏짜'라고 한다. 핏짜! 이탈리아 냄새가 물씬 풍긴다. '오 솔레 미오~'. 피자는 원래 나폴리의 빈민층과 노동자들이 삼시세끼 먹는 누추한 음식이었다. 쉽게 구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재료를 얹은 둥글납작한 빵이다. 피자는 단순하면서 복잡하다. 전통적인 피자는 밀가루와 토마토, 모차렐라, 바질만 있으면 충분하다. 이 단순한 피자가 전 세계적으로 퍼지면서 여러 가지로 변주됐다. 사실 피자가 세계적으로 널리 인기를 얻게 된 일등공신은 미국이다. 미국에 정착한 이탈리아 이민자들에 의해 미국인의 입맛을 사로잡은 게 계기였다. 정복욕이 강한 미 제국주의자들은 냉동피자로 프랜차이즈화 해 전 세계로 대중화시켰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피자 헛, 도미노 같은 브랜드 말이다. 수제 피자와는 다른 규격화된 미국식 피자. 피자의 매력은 토핑의 소재가 무한하다는 것. 한국식 피자는 감자, 고구마도 있고 김치 피자도 있던가? 피자라면 사족을 못 쓰는 나로선 피자의 고향 나폴리에서 마르게리타 피자를 먹어보는 게 꿈이다. 비행 공포증만 아니면 당장. <지방부장>
우난순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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