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여행] 15-연탄불에 은은하게 구워 먹는 예산 고덕갈비

  • 문화
  • 맛있는 여행

[맛있는 여행] 15-연탄불에 은은하게 구워 먹는 예산 고덕갈비

김영복 식생활문화연구가

  • 승인 2023-11-27 09:24
  • 정바름 기자정바름 기자
KakaoTalk_20231127_090221886_04
고덕갈비 모습
이번 주 '맛있는 여행' 쇠갈비의 고장이라 할 수 있는 예산을 향해 차를 몰았다. 차가 많이 밀리는 탓에 너무 일찍 출발해 아침 9시에 예산 고덕면에 도착했다. 오늘 취재는 충남도민회중앙회 이명범 회장 고향의 맛, ‘고덕갈비’를 하기로 했다.

이른 시간에 연락하기는 실례인 것 같아 예당저수지(禮唐貯水池)로 향했다. '고덕갈비'는 예당저수지를 찾는 많은 조사(釣士)들의 입소문으로 더 많이 알려진 맛집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애마를 운전해 가는데, 멀리 예당호 출렁다리가 보이는 지점에 갑자기 촬영 포인트가 눈에 들어온다. 차에서 내려 스마트폰을 꺼내 구도를 맞춰 보니 한 폭의 산수화가 눈에 들어온다. 예당저수지에서 사진 한 장 건지고 앙상한 가지에 붉게 익은 사과밭을 지나 고덕면 소재지에 들어오니 아침 10시다. 이 회장에게 전화하니 덕산 사우나를 막 나오는 중이라 한다. 비록 맛 투어라 해도 늦은 아침으로 고덕농협 앞에서 맛있는 소머리국밥으로 우선 늦은 조반을 해결했다.

KakaoTalk_20231127_090221886_01
예당 저수지
늦은 아침을 먹고 바로 고덕갈비를 먹기에는 부담이 되어 이 회장께서 고향에 기여한 흔적을 찾아 고덕초등학교 부근에 있는 고덕만세공원으로 향했다. 고덕만세공원에는 대의사(大義祠)가 있고 좌측에 '한내장 4·3운동 기념탑'이 있는데, 이 뜻을 기리기 위한 한내장 4·3운동 기념사업회 초대 회장을 지내면서 이 탑을 세웠다.

고덕면 대천리 시냇가 양측을 따라 3일과 8일에 5일 장이 열리는 한내장터가 있었는데, 장날에는 장꾼이 오천여 명이 왕래하는 내포에서 가장 큰 장터로 이곳에서 1919년 즉 기미년 4월 3일에 수천 명이 모인 가운데 조국 광복을 외치며 독립만세를 부르던 현장이다. 이 회장은 고덕만세공원 조성에도 1000만원을 쾌척한 기록이 기념비에 새겨져 있었다.



KakaoTalk_20231127_090221886
한내장4.3운동기념비와 기념사업회 초대회장 이명범
다시 갈비 이야기로 돌아가자. 예산은 갈비의 고장이라 할 만큼 유명한 3대 갈비로 소복갈비와 삼우갈비, 고덕갈비가 있다. 이 중에 제일 역사가 오래된 집이 1941년에 김영호 할머니가 시장에서 좌판을 깔고 갈비를 구워 팔기 시작했고, 장사가 잘 되자 가게를 얻어 소복옥이라는 상호를 걸고 선술집을 하게 되었는데, 이때 역시 술안주로 갈비를 구워냈다고 한다. 당시는 소복옥 주변에 화신옥, 삼선옥 등 여러 술집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소복옥의 갈비가 소문이 나고 손님이 몰려들자 1958년 다시 상호를 '소복갈비'로 변경해 지금까지 5대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 소복갈비는 '대통령 갈비집'이라는 별칭을 얻게 되었는데, 고 박정희 대통령의 마지막 오찬 메뉴가 바로 소복갈비라고 한다.

1979년 10월 26일 삽교천 방조제 준공식은 박정희 대통령의 마지막 공식행사였는데, 그날 삽교천방조제 행사를 마치고 아산 도고별장으로 소복식당의 양념갈비 100인분을 주문해서 맛있게 드셨다고 한다. 그 후 전두환, 김영삼, 노무현 등의 전직 대통령들은 물론 국회의원들까지 소복식당을 향한 발걸음은 끝이지 않았다고 한다.

삼우갈비는 소복갈비에서 일하던 이천종 아주머니가 1986년에 따로 가게를 차려 시작한 갈비집이다. 그래서 그런지 소복갈비와 삼우갈비는 미리 구워져 나오는 방식이 같고 밑반찬, 설렁탕, 굴젓 등이 나오는 푸짐함이 유사하다.

KakaoTalk_20231127_090221886_02
고덕갈비 식당 전경
오늘 찾은 고덕갈비는 삼우갈비와 같은 1986년부터 갈비집을 했지만, 이 두 집과는 갈비 굽는 방식이나 태생이 전혀 다른 집이다.

고덕은 옛날 구만리의 구만포를 통해 교역이 발달한 곳으로 현재는 없어졌지만, 근방에서 제일 큰 우시장이 형성되었던 재래시장이 있던 지역이다. 고덕갈비(충남 예산군 고덕면 고덕중앙로 86 대천리 727-2)는 재래시장 인근에서 연탄불 세 개를 놓고 목로점을 하며 양념한 소갈비를 구워 팔면서 시작되었다.

불고기나 갈비를 굽는데, 물론 참숯이 좋기는 하지만 갈비 굽기에는 화력이 비교적 일정하게 유지되는 연탄불도 상당히 좋다. 이 집은 오로지 한우갈비, 단일 메뉴만 있는 곳으로 맛에 대한 정직함과 전문성을 동시에 느껴볼 수 있는 곳이다. 한우 암소갈비에 간장과 다진 야채로 아주 살짝만 간을 맞춘 후 연탄불에 구워 먹으면 되는데 양념 맛이 세지 않으면서 은은하게 고기의 뒷맛을 받쳐주고 여기에 불향이 덧입혀져 일반 양념갈비와는 또 다른 맛을 즐겨볼 수 있다.

오후 4시 정도면 그 날 장만한 갈비가 다 소진되어 문을 닫는다고 하는 고덕갈비는 대기표를 받고 기다려야 먹을 수 있는 맛집이다. 오늘은 다행히 비어 있는 한자리가 있어 대기하지 않고 자리를 차지하고 앉을 수가 있었다. 둥근 식탁 가운데, 구멍탄 불이 붉게 이글거렸다.

개방된 주방에는 사장의 촘촘한 칼질로 부드러워진 고기가 켜켜이 쌓여 있다. 사장에게 작업하는 광경을 사진에 담도록 해 달라니 칼을 잡고 작업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KakaoTalk_20231127_090221886_03
고덕갈비 칼집내는 모습
우리 테이블 옆에서는 아줌마가 갈비를 뭉치째 집게로 들었다 놓기를 여러 번 하자 고기가 윤기를 내며 익어간다. 초벌구이를 하는 거다. 한 점씩 한 점씩 구우면 고기가 마르는데 이렇게 뭉치로 들었다 놨다 하며 구우면 촉촉하게 먹을 수 있다고 한다. 그냥 구워 먹어도 끝내줄듯 한 신선한 갈비의 빛깔과 마블링의 자태와 맵지도 달지도 않은 간장양념이 훈연된 고기의 맛을 온전히 살리고 있었다.

초벌구이 한 암소한우갈비 두 대가 연탄불 위로 올라간다. 특히 소스로 나온 고추장을 찍어 먹어도 맛있다. 고향의 맛을 아는 이 회장께서는 마늘을 얹고 상추쌈을 싸 드신다. 역시 고덕갈비 맛을 안다는 포스다. 고덕갈비 덕산점은 형이 하고 있고, 동생은 고덕갈비 원래의 자리에서 계속 이어나가고 있으며, 양념도 동생이 만들어 형에게 제공하고 있다고 한다.

KakaoTalk_20231127_090221886_05
고덕갈비 연탄불
옛 문헌을 보면 갈비를 협(脇)이라고 나온다. 『경모궁의궤(景慕宮儀軌)』 조선 후기의 문신 서호수(徐浩修)가 편찬한 농서(農書) 『해동농서 (海東農書)』에 중국의 『거가필용(居家必用)』『신은지(神隱志)』를 인용하여 "껍질 붙은 양 갈비를 쪽마다 2토막씩 내어 망사(중국 당나라 약재)가루에 비벼 끓는 물에 따뜻하게 담가 적셔지면 굽는데 재빨리 뒤적거려 익지 않도록 한다. 다시 적셨다가 굽기를 3차례 한 다음 좋은 술에 살짝 담갔다가 산(자루가 달린 쇠로 만든 불판) 위에 놓고 한 번 뒤적이면 바로 먹을 수 있다"라고 하였다.

여기서도 갈비는 협(脇)으로 나온다. 조선후기 실학자 정약용(1762-1836)이 어휘에 대한 풀이와 올바른 용법을 제시하여 1819년에 저술한 유서(類書) 『아언각비(雅言覺非)』에도 우협(牛脇)을 갈비(曷非)라 하고 갈비에 붙은 고기에서 고기만 떼어서 파는 것을 갈비색임이라 하였으며 갈비 끝에 붙은 고기를 쇠가리라 하였다. 쇠가리를 푹 고아서 끓인 가리탕이 1890년 궁중연회상차림에 보이나 갈비는 고려시대전부터 먹어온 것으로 추측된다.

『해동죽지(海東竹枝)』(1925)에는 '설야적(雪夜炙)'이 나오는데, 개성부(開城府)의 명물로 소갈비나 염통을 기름과 훈채로 조미해 굽다가 반쯤 익으면 찬물에 잠깐 담갔다가 센 숯불에 다시 굽는다. 눈 오는 겨울밤의 안주로 좋고 고기가 매우 연하여 맛이 좋다'고 하였다.

조선의 종묘 예절을 기록한 『종묘의궤(宗廟儀軌)』에도 갈비(乫非)가 나오며, 『일성록(日省錄)』정조(正祖)16년(1792)윤4월23일 자에 '갈비족적(乫非足炙)'이 나오고, 이 당시 갈비찜(乫非蒸)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정조시기에는 한문으로 갈비(乫非)라고 했다.

그러나 19세기 말 이후 1920년대 초반에 나온 한글 요리책에서는 갈비라 하지 않고 '가리'라고 적었다. 1890년대에 쓰였을 것으로 여겨지는 『시의전서(是議全書)』 [음식방문]에서는 '가리구이'라는 음식 이름이 보인다. "가리를 두치 삼사푼 길이씩 잘라서 정히 빨아 가로결로 매우 잘게 안팎을 어히고(자르고) 세로도 어히고 가운데를 타(갈라) 좌우로 젖히고 가진(갖은) 양념하여 새우젓국에 함담(간) 맞추어 주물러 재여 구어라"고 했다.

1913년 방신영이 쓴 『조선요리제법(朝鮮調理製法)』에도 가리구이라는 조리법이 나와 있고, 1924년에 출판된 이용기(李用基 1870~1933)의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朝鮮無雙新式料理製法)』에서는 '갈비구의'라고 적은 다음에 '가리쟁임'과 '협적(脅炙)'이라는 다른 명칭을 붙였다. '구의'는 구이의 다른 표기이다. '가리쟁임'은 가리를 양념하여 재여 두었다가 굽기 때문에 붙인 이름인 듯하다.

KakaoTalk_20231127_090221886_06
고덕갈비
국어사전에는 (가리=소의 갈비를 식용으로 일 컽는 말)이라고 되어있다. 그러니까 갈비탕이니 갈비찜이니 생갈비구이는 원래 서울 표준말이 아니었다. 서울에서는 가리는 고깃간에서 짝으로만 판매했었다 그러므로 일반 서민들은 갈비를 먹자고 짝으로 살 형편이 못되니 명절이나 잔치 때가 아니면 가리 음식을 먹을 수가 없었다.

조풍연(趙豊衍, 1914~1991)의 『서울잡학사전』을 보면 1939년에 서울 낙원동에 갈비집이 있었다고 했다. 그 집에서는 냉면과 함께 가리구이를 팔았다. 당시 저녁 늦은 시간에 극장이나 요리옥·카페·바 등이 끝나면 술 깨는 데 냉면이 좋다고 하여 갈비집에 손님이 몰려들었다. 손님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냉면과 함께 갈비 두 대를 시켰다. 왠지 가리구이 달라고 하면 복잡하였고, 간단히 줄여서 '갈비 두 대'라고 했다. 이로부터 갈비 하면 가리구이가 되어 버렸다는 주장이다. 그래서 갈비구이는 선술집에서 술안주로 먹는 음식이었다. 그 값도 보통 한 대에 얼마 혹은 두 대에 얼마 이런 식이었다.

1930년 12월 7일자 동아일보에서는 강릉의 식당 요리 가격을 기사로 다루었다. 국밥 한 그릇에 15전인데 비해 갈비 한 대는 5전에 지나지 않았다. 지금과 비교하면 갈비구이 한 대 값이 설렁탕의 3분의 1에 지나지 않았던 셈이다. 결국 1920년대 이후 갈비구이는 선술집의 술안주에 지나지 않았고, 갈비찜은 요리옥에서 신선로 다음으로 자리를 차지하는 고급음식이 되었다.

그밖에 동양루, 부벽루등이 생겨났으며 점차 전남 송정리, 수원갈비, 예산갈비 등 여러곳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갈비집이 늘어나게 되었다. 결론은 갈비집 이란 명칭은 지방에서 올라온 상인들에 의해 생긴 역사가 그리 얼마 되지 않은 신종어이지만, 요즘 사람들에게 가리구이라 하면 몇 사람이나 알아듣겠는가. 결국 1970년대 초 국어사전 편찬 위원들도 개정판 사전을 집필하게 될 때, 토론 끝에 전국적으로 갈비로 통용이 되다 보니 시류에 따르자며 20여명의 위원 중 단 두 사람만 반대했고 다수의 찬성으로 '가리' 대신 '갈비'를 표준어로 택했다.

/김영복 식생활문화연구가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세종시 나성동 '도시상징광장'서 매주 릴레이 축제
  2. [사이언스 칼럼] 4개의 사과 이야기
  3. 이종수 미술관 건립 '빨간불' 정부 사전평가 또 고배
  4. 거점국립대 교수 시국선언 "의대 정원 합리적 조정을"
  5. 학생 안전관리에 학부모 민원까지… 교사 현장체험학습 '이중고'
  1. "가뜩이나 어려운데…" 식당서 먹고 튀는 '무전취식' 횡행
  2. [홍석환의 3분 경영]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
  3. '월성원전 감사방해' 산업부 전 공무원들 무죄 확정
  4. [중도일보 사내 연수] 나로부터 시작하는 안전한 공동체
  5. 김용하 건양대 총장 학생들과 함께 뛰며 'DYT 러닝 수업'

헤드라인 뉴스


[취임 2주년] 국힘 “진솔”· 민주 “실망”· 조국당 “3년은 너무 길다”

[취임 2주년] 국힘 “진솔”· 민주 “실망”· 조국당 “3년은 너무 길다”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 대해 여당인 국민의힘은 “진솔했다”고 평가한 반면 야당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며 혹평했다. 다만 더불어민주당은 ‘저출생대응기획부’ 신설에 대해선 찬성하며 전향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정희용 수석대변인은 9일 논평을 내고 "기자들과 질의응답에서 모든 현안에 진솔하고 허심탄회한 입장을 들을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정 수석대변인은 "민생의 어려움에 대한 송구한 마음을 직접 전하는 것을 시작으로 국민의 삶을 바꾸는 데 부족한 점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며 질책과 꾸짖음을 겸허한..

배틀그라운드 모바일 시즌1 파이널 경기 10일 성공적 개막
배틀그라운드 모바일 시즌1 파이널 경기 10일 성공적 개막

'2024 배틀그라운드 모바일 프로 시리즈(PMPS)' 시즌1 파이널 경기가 10일 대전 이스포츠 경기장(대전드림아레나)에서 성공적으로 개막했다. 이번 경기는 앞서 3월에 개최된 시즌0에 이어 본격적인 프로시리즈가 시작되는 경기로, Beyond Strotos Gaming, Dplus 기아, 덕산 ESPORTS, Eagle Owls, emTex StormX, 젠지 Esports, IFYOUMINE GAME PT, 미래앤세종, 농심 RedForce, ROX, ANGRY, FOCUS, INFINITY, Join uS, VEGA ESPOR..

따뜻한 한끼에 커지는 나눔…도시락 봉사 훈훈
따뜻한 한끼에 커지는 나눔…도시락 봉사 훈훈

어려운 이웃에게 정기적으로 도시락을 제공하고 있는 50대 음식점 사장이 있어 훈훈함을 주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대전 중구 오류동에서 도시락과 토스트 전문점 '나두나두'(NADU NADU)를 운영하는 김은주(51)씨다. 김씨는 얼마 전 중도일보 유튜브 '곽성열의 판 깔아드립니다' 생방송 중 댓글 이벤트에 당첨된 당첨자 이름으로 손수 만든 도시락을 중구에 사는 불우이웃에게 전달했다. 무료로 주는 도시락이라고 해서 대충대충 만들지 않았다. 김씨가 전달한 도시락은 흰쌀 밥에 국, 일곱 가지 반찬이 곁들어져 있어 든든한 '한 끼'로서 충..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金값된 김값’…장바구니 물가 부담 ‘金값된 김값’…장바구니 물가 부담

  • ‘온천에 빠지다’…유성온천 문화축제 10일 개막 ‘온천에 빠지다’…유성온천 문화축제 10일 개막

  • 윤석열 대통령 입에 쏠린 관심 윤석열 대통령 입에 쏠린 관심

  • ‘5월의 여왕’ 장미 만개 ‘5월의 여왕’ 장미 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