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 조영출의 '꿈꾸는 백마강'과 충청대망론

  • 오피니언
  • 풍경소리

[풍경소리] 조영출의 '꿈꾸는 백마강'과 충청대망론

송기한 대전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 승인 2023-12-25 10:34
  • 신문게재 2023-12-26 19면
  • 이유나 기자이유나 기자
송기한
송기한 대전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꿈꾸는 백마강'을 작사한 조영출은 1913년 충남 아산의 탕정 출신이다. 그의 본명은 영출(靈出)이고 필명은 조명암(趙鳴岩)이다. 그가 이름을 지은 것은 자신의 고향 뒷산이 영인산(靈仁山)이고 그곳 출신임을 강조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는 일제 강점기 민족 의식이 누구보다도 투철했던 시인이다. 우선, 자신의 본명을 영출이라고 한 데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그는 고향에 대한 애착이 매우 강한 시인이었기 때문이다. 이 시기 고향에 대한 정서가 생리적인 차원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닌데, 이는 그 너머의 더 큰 세상과 불가피하게 연결될 수밖에 없었고, 결국 국가에 대한 간절한 애정의 또 다른 표현으로 받아들여졌다.

조영출이 이렇게 강렬한 민족 의식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바로 금강산 건봉사의 학승 출신이라는 점 때문이다. 이 사찰이 만해 한용운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기에 그는 만해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게 된 것이다. 보성고보를 들어갈 때도 만해의 추천이 있었다. 만해야말로 이 시기 최고의 민족주의자가 아니었던가. 그는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고향과 민족에 대한 사랑을 키워나가게 된다.

초기 조영출의 시 세계는 신인답게 여러 다양한 경향을 보였다. 하지만 그 가운데 무엇보다 주목을 끌었던 것은 민족 모순에 기반을 둔 시들이었다. 가령, '이 동굴 안을 거니는 자여-경주 석굴암'에서 보이는 민족 의식이 그러하고, 암울한 현실을 딛고 일어서고자 하는 의지를 드러낸 '동방의 태양을 쏘라'와 같은 시들이 그러하다.

하지만 그의 시작 행위는 1930년대 중반에 이르러 새로운 단계를 맞이하게 된다. 흔히 대중 가요로 알려진 가요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이에 대한 창작으로 매진했기 때문이다. 그가 처음 가요시를 쓴 것은 1934년이고, 곡명은 '서울 노래'였다. 그는 이 가요시를 음반으로 만들고자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검열에 걸렸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성과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민족이 처한 어려운 현실을 더욱 알게 되었고, 그러한 현실을 대중에게 직접 호소할 수 있는 일이 어떤 것인지 고민하게 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서정시보다 노래체의 가요시가 가진 감응력의 힘을 아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조영출은 본격적으로 가요시 창작에 나서게 된다. 이때 그는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꿈꾸는 백마강', '선창', '알뜰한 당신' 등을 연달아 발표하게 된다. 이 가운데 무엇보다 주목되는 가요시가 1940년에 나온 '꿈꾸는 백마강'이다. 점점 조선적인 것들이 사라져가는 현실에서 백제 멸망의 역사를 담고 있는 이 노래를 발표하는 일에는 분명 커다란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가요가 발표되자 대중의 반응은 뜨거웠다. 그러니 일제가 이를 그냥 놔뒀을 리가 없었다. '꿈꾸는 백마강'의 가사는 이러하다. "백마강 달밤에 물새가 울어/잊어버린 옛날이 애달프구나/저어라 사공아 일엽편주 두둥실/낙화암 그늘에서 울어나 보자//고란사 종소리 사무치면은/구곡간장 올올이 찢어지는 듯/누구라 알리요 백마강 탄식을/깨어진 달빛만 옛날 같으리". 일제 강점기 백제 멸망의 역사란 곧 조국 멸망의 역사를 환기하는 일이다. 일제는 백제의 슬픈 역사가, 조선의 왜곡된 역사로 이어지는 것이 두려웠던 것이고, 이는 결국 금지곡이라는 결과를 낳고 만다.

해방은 되었고, 강요된 현실에서 그는 북으로 갔다. 월북한 사람이 작사한 노래가 남쪽에서 애창되는 것이 불편했을 터, '꿈꾸는 백마강'은 또다시 금지곡이 되고 만다. 이 노래는 남북의 관계가 해빙되면서 그 어두운 굴레에서 벗어나게 된다. 세상은 바뀌었지만, 이 노래가 담고 있는 여파는 여전히 남아 있다. 일제 강점기에는 역사가 서러워서 불렸지만, 이후에는 옛 영광과 회한이 그립고 안타까워 논산의 아버지가, 그리고 예산의 옛 연인의 어머니가 즐겨 불렀기 때문이다.

굴곡진 이 노래만큼이나 충청인들에게는 아픔이 서려 있다. 현실에는 충청대망론이라는 것이 있었다. 실체가 무엇인지 모르지만 충청대망론에 기댄 대선주자들이 허무하게 무너질 때마다 '꿈꾸는 백마강'이 환기되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 "구곡간장 올올이 찢어지는 아픔"을, "이 백마강의 탄식"을 누군가는 알고 있는 것인가.

송기한 대전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셔츠에 흰 운동화차림' 천태산 실종 열흘째 '위기감'…구조까지 시간이
  2. 노노갈등 논란에 항우연 1노조도 "우주항공청, 성과급 체계 개편 추진해야"
  3. ['충'분히 '남'다른 충남 직업계고] 홍성공업고, 산학 결합 실무중심 교육 '현장형 스마트 기술인' 양성
  4. 대전 중구, 국공립어린이집 위·수탁 협약식 개최
  5. 충청권 국립대·부속병원·시도교육청 23일 국정감사
  1. '충남 1호 영업사원' 김태흠 충남지사, 23일부터 일본 출장
  2. 한화이글스 우승 기원 이벤트
  3. 대전관평초 '학교도서관 운영 유공' 국무총리 표창
  4. 상서 하이패스 IC 23일 오후 2시 개통
  5. 대전권 대학 산학협의체, ‘한국-베트남 글로벌 청년 경진대회 행사 개최

헤드라인 뉴스


대전시-KAIST 국내 최대 양자팹 구축 착수

대전시-KAIST 국내 최대 양자팹 구축 착수

국내 최대 규모 '개방형 양자공정 인프라'(이하 개방형 양자팹) 구축에 대전시와 KAIST가 나섰다. 대전시와 KAIST는 23일 이장우 대전시장과 KAIST 이광형 총장이 참석한 가운데 KAIST 본원에서 '개방형 양자팹 구축 및 운영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번 협약은 양자 산업화 시대를 대비한 필수 기반 시설인 '개방형 양자팹' 구축사업의 성공적인 추진을 위해 마련됐다. KAIST '개방형 양자팹' 구축사업은 국내 최대 규모의 첨단 양자팹 건립과 양자 인프라 시설 및 장비 구축을 포함한 사업으로, 2031년까지 국비 2..

개물림 피했으나 맹견 사육허가제 부실관리 여전…허가주소와 사육장소 달라
개물림 피했으나 맹견 사육허가제 부실관리 여전…허가주소와 사육장소 달라

대전에서 맹견 핏불테리어가 목줄을 끊고 탈출해 대전시가 시민들에게 재난안전문자를 발송한 사건에서 견주가 동물보호법을 지키지 않은 정황이 여럿 확인됐다. 담장도 없는 열린 마당에 목줄만 채웠고, 탈출 사실을 파악하고도 최소 6시간 지나서야 신고했다. 맹견사육을 유성구에 허가받고 실제로는 대덕구에서 사육됐는데, 허가 주소지와 실제 사육 장소가 다를 때 지자체의 맹견 안전점검에 공백이 발생하는 행정적 문제도 드러났다. 22일 오후 6시께 대전 대덕구 삼정동에서 맹견 핏불테리어가 사육 장소를 탈출해 행방을 찾고 있으니 조심하라는 경고 재난..

[2025 국감] 적자에 차입금 부담만 커져… 충남대병원 재정문제 도마 위
[2025 국감] 적자에 차입금 부담만 커져… 충남대병원 재정문제 도마 위

차입금 부담만 수천억 원에 달하는 충남대병원의 누적 적자액이 1300억 원이 넘고 재원 환자도 줄고 있어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국회에서 제기됐다. 국회 교육위원회가 23일 충북대에서 연 충남대·충북대·부속 병원 국정감사에서다. 이날 오전 피감기관 대표로 조강희 충남대병원장과 김원섭 충북대병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문정복(더불어민주당·경기 시흥갑) 의원은 "누적적자가 충남대병원은 1374억 원, 충북대병원은 1173억 원"이라며 "독립 재산제로 운영되는 국립대병원에서 차입금 상환은 어떻게 할 것이냐"며 따져 물었다. 최근 3년간 두..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유등교 가설교량 안전점검 유등교 가설교량 안전점검

  • ‘자랑스런 우리 땅 독도에 대해 공부해요’ ‘자랑스런 우리 땅 독도에 대해 공부해요’

  • 상서 하이패스 IC 23일 오후 2시 개통 상서 하이패스 IC 23일 오후 2시 개통

  • 한화이글스 우승 기원 이벤트 한화이글스 우승 기원 이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