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톡] 정직보다 더 좋은 배경이 어디 있을까!

  • 오피니언
  • 여론광장

[수필 톡] 정직보다 더 좋은 배경이 어디 있을까!

남상선/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전 조정위원

  • 승인 2024-02-14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한가위 날 밤 11시 넘은 시각에 낯선 전화가 왔다. 잠자리에 들려 하는 시각이었다.

내키지 않는 전화인지라 받질 않았다. 잠시 후에 벨 소리가 그치는가 싶더니, 금세 신경을 자극하는 소리가 재차 들렸다. 직감이 이상했다. 무슨 일이 있어 걸려온 전화라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 33보 3473 차주 되시지요? >, < 예, 그렇습니다만‥. > 했더니, 자신이 운전 미숙으로 차량 번호판을 살짝 들이받아 약간 이상이 생겼으니 나와 확인해 보라는 거였다.

나가 보니 70대 중반 정도 돼 보이는 아저씨였다. 운전 차량은 봉고차였다. 옆에는 가족들로 추정되는 남녀 몇 사람이 차에서 내려 서성대고 있었다. 지명(知命)이나 이순(耳順)은 됐을 것 같은 여인 둘에다, 머리 반백이 다된 남자 셋이 동승을 했다가 내려서 심란한 얼굴들을 하고 있었다.

아마도 친척집에 명절 인사를 왔다가 마치고 돌아가는 참에 지금 같은 불상사를 저지른 것 같았다.

나는, 그들 차량이 충격을 가했다고 하는, 내 승용차 번호판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그들 다섯 사람의 얼굴은 내 반응이 어떻게 나올지에 초점이 모아졌는지, 말 한 마디 없이 초조한 모습들이었다.

나는 차를 살펴보았다. 차체는 별 이상이 없었으나 차량번호판과 그 언저리가 약간 일그러져 있었다.

바라보고 있던 운전자가 입을 열었다. < 얼마 정도 보상을 해드리면 될까요? >, < 보상이라니요! 괜찮습니다. 저도 운전을 하는 사람인데 이런 정도로 마음을 무겁게 해드려서야 되겠습니까? 저 주실 돈 있으시면, 가셔서 불우이웃돕기 성금에 쓰십시오, 오히려 제가 감사를 드립니다. 이런 정도 차 흠집이라면 말씀 안 하시고 슬쩍 가셔도 될 만한데. 귀하께서는 너무 정직하셔서 연락까지 주셨으니 참으로 훌륭하시고 감사합니다. 밤이 깊었으니 아무 염려 마시고 편안히 가십시오. >

순간 무거웠던 분위기가 해빙기 봄을 맞은 듯한 얼굴들이었다. 초조했던 얼굴들에 환한 미소가 감돌기 시작했다. 나도 정직한 운전자의 솔직한 고백 한 마디에 마음이 흐뭇했다. 정직한 사람한테서 많은 것을 얻었으니, 차는 조금 손볼 데가 생겼지만 왜 이리 마음이 편안한지 모를 일이었다.

차주는 정직하게 고백해서 자유스런 몸이 되었다. 모르는 척 달아났더라면 두고두고 가책을 받아 마음이 편칠 못했을 텐데 이 분은 진정 훌륭한 인격자였다. 죄 짓고 달아났던 범인들이 자수하는 그 심정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정직과 양심은 인간에게 주어진 최상의 선물이란 생각까지 들었다.

'정직' 이야기를 하다 보니, 정직해서 사업체를 성공으로 이끌었던 한국유리공업주식회사의 설립자, 고최태섭 회장의 실화가 떠올랐다. 최태섭 회장의 정직성을 기리는 마음으로 그의 얘기를 해봐야겠다.

서울에 있는 한 은행에서 융자를 받아 작은 규모의 사업 운영을 하던 그는 6·25 전쟁 발발로 한시 바삐 피난을 떠나야 할 형편이었다. 그런데 피난길에 오를 준비를 하던 중 그는 자신이 빌린 돈을 은행에 갚아야 할 기일이 다된 것을 알고, 돈을 준비해 은행에 갔다. 전쟁이 나자 사람들은 돈이 될 만한 것은 뭐든 챙겨서 떠나는 상황이었는데, 그는 반대로 돈을 들고 은행을 찾아간 것이다.

이렇게 전쟁 중에도 정직성으로 신뢰를 얻은 그는, 어려운 시기에도 정직성을 밑천으로 사업을 번창시켜 국내 굴지의 기업가가 되었다. 그 덕분에 급기야는 대한민국이 유리를 수출하는 나라가 되었다.

정직은 신뢰로 통하고 양심과 직결된다. 상대방의 귀를 솔깃하게 하는 말 잘하는 사람보다는 정직한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 정직은 권세와 금력을 능가한다. 천하를 호령하는 권력가나 돈이 많은 백만장자도 정직성이 무너져 신뢰가 깨어지면 권세와 부를 잃게 된다. 유명 유수기관에서도 직원을 채용할 때, 우선 정직한 사람을 뽑고 있다. 정직성은 사람을 신뢰할 수 있고, 그것을 바탕으로 하는 양심인은, 그가 바로, 자타를 위해서 열심히 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정직'은 최상의 무기요, 용기와 힘이 되는 것이다.

'정직'보다 더 좋은 배경이 어디 있을까!

소금이 짠 맛을 잃으면 소금 구실을 못한다.

사람도 정직하지 못하면 신뢰성을 잃고, 양심이 무디어져 쓸모없는 사람이 된다.

과연 내가 살고 있는 정직성의 무게는 몇 g이나 될까?

정직은, 권세나 돈으로 해낼 수 없는 것을 이루어내고 있다.

이러하니, 정직보다 더 좋은 배경이 아디 있다 하겠는가?

남상선/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전 조정위원

남상선
남상선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세종시 '조치원·연서·연기면 공동주택' 1.2만 호 공급 무산
  2. 대전 샘머리초 인근서 승용차 가로수 충돌… 19세 운전자 사망
  3. 대통령 집무실·국회 의사당 가시화 "행정수도특별법 제정 뒷받침돼야"
  4. 홈플러스 정상화 시동…충청권 8개 점포 영업 재개 추진
  5. 충남대-국립공주대 통합 '동상이몽'… 리더십 시험대 오른 대학본부
  1. '문화재 때문에'… 세종 軍비행장 이전사업 또 늦어진다
  2. 허태정 "정부 초과세수, 지방교부세로 확대" 전격 건의
  3. 대통령 세종 집무실, 건축설계 본격화 "2029년 입주 문제 없다"
  4.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수소 누출 사고··· 인명 피해 없어
  5. [사설] 청소년 미래 위협하는 사이버도박

헤드라인 뉴스


충남도-15개 시군, 발전 5사 통합 본사 유치 위해 총 결집

충남도-15개 시군, 발전 5사 통합 본사 유치 위해 총 결집

충남도와 도내 15개 시군이 발전 5사 통합 본사 유치 공동 대응, 서산공항 건설 추진 등 정부 차원의 협조가 필요한 지역 현안 해결을 위해 행정력을 총 결집하기로 했다. 도는 23일 도청 대회의실에서 박수현 지사와 15개 시군 시장·군수 등 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민선 9기 첫 지방정부회의를 개최했다. 이번 지방정부회의는 민선 9기 도와 시군 비전을 공유하고, 상생 발전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회의를 통해 진행된 시장·군수와의 대화에서는 발전 5사 통합 본사를 충남 지역에 유치해야 한다는 것에 공감대가 모였다. 엄승용..

세종 장군면에 첫 산업단지, 조성 절차 본격화…"35만여 평 계획"
세종 장군면에 첫 산업단지, 조성 절차 본격화…"35만여 평 계획"

산업 기반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세종 서남부권에 첫 산업단지 조성이 본격화되고 있다. 민간 주도로 장군면 은용리 일원에 산단 조성을 추진 중인데, 최근 공급 물량 배정을 위한 사전 행정절차가 마무리되면서 본격적인 개발계획 수립 단계에 들어섰다. 23일 세종시에 따르면 최근 장군면 은용리 산 15-4 일원의 일반산업단지 조성과 관련해 지정계획 고시가 이뤄졌다. 이 사업은 시행자인 ㈜그린랩을 통해 민간 주도로 추진 중이다. 관할기관에 투자의향서가 제출된 기준으로는 관내 첫 민간 주도 산단 조성사업이며, 장군면 첫 산단으로도 부각된다. 지..

이 대통령 "부동산정책은 최대 과제… 사회적 합의과정  중요"
이 대통령 "부동산정책은 최대 과제… 사회적 합의과정 중요"

이재명 대통령은 23일 부동산정책과 관련, "대한민국의 최대 과제 중 하나"라며 해법을 마련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 과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수도권과 비교해 투기 수요가 낮은 비수도권 대출 규제 완화를 비롯해 재개발·재건축사업의 과도한 공사비, 보유세 강화, 청년이나 신혼부부에 불리한 대출·청약 제도 등에 대한 의견에 대해서도 공감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오전 서울 KBS 별관에서 학계와 언론계를 비롯해 건설과 금융계, 공인중개사와 시민·청년단체, 유튜버와 부동산 관련 카페 등 14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부동산정책 국민 대토..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도심 속 공원에서 즐기는 물놀이 도심 속 공원에서 즐기는 물놀이

  • 개인형 이동장치 수거차량 ‘무법 질주’ 개인형 이동장치 수거차량 ‘무법 질주’

  • 대전 동부소방서, 온열질환 예방 총력 대전 동부소방서, 온열질환 예방 총력

  • ‘문제 풀고 교통안전 배워요’ ‘문제 풀고 교통안전 배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