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난순의 식탐] 케밥집에서 '만찢남'을 봤어

  • 오피니언
  • 우난순의 식탐

[우난순의 식탐] 케밥집에서 '만찢남'을 봤어

  • 승인 2024-02-28 10:28
  • 신문게재 2024-02-29 18면
  • 우난순 기자우난순 기자
KakaoTalk_20240228_095410027
피데케밥
그 식당을 지날 때마다 한번씩 기웃거렸다. 이번엔 문을 쓱 열고 들어갔다. 식당 상호는 딱히 없다. 그냥 '튀르키예 케밥'. 외국음식 식당은 다 그렇다. 베트남 쌀국수, 네팔 요리. 손님은 중년여성들 한 팀과 아랍인 젊은 여성 한 사람. 종업원인 듯한 여성에게 다가갔다. 터키사람인가? 쌍꺼풀이 굵고 눈썹이 진해 영락없는 아랍여성이었다. 주방 위 메뉴판엔 도네르케밥, 피데케밥 등 케밥 종류 6개가 이미지 사진과 함께 소개돼 있었다. 나는 '지니' 같은 여성에게 피데케밥을 주문했다. 고기는 뭘로 할거냐기에 메뉴판을 다시 봤다. 치킨, 램, 믹스미트. 당연히 양고기지. 케밥인데. 뜸을 들이다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터키여성이냐고 물었다. 지니는 웃으며 "저 한국인이에요"라고 말했다.

스피커에선 튀르키예 노래가 흘러나오고 벽걸이 TV도 그 나라 도시 풍경을 보여줬다. 올리브가 황금빛으로 익어가는 볕 좋은 가을날, 이스탄불의 어느 카페에 앉은 나를 상상한다. 주방에선 검은 색의 반팔 티와 바지를 입은 요리사가 바쁘게 움직였다. 그런데 외모가 모델 뺨쳤다. 호리호리한 몸과 이목구비가 '만찢남'이었다. 알고보니 우즈베키스탄에서 왔단다. 전엔 다른 일을 했는데 지금은 케밥 요리사가 됐다고. 그러니까 한국여성은 사장이고 우즈베크 청년은 고용된 요리사라는 말씀! 만찢남이 잠깐 밖을 나간 사이 주방 안을 들여다봤다. 한쪽에 펼쳐진 책이 있었다. 요리하는 틈틈이 읽는 모양이었다. 이방인에 대한 호기심이 더해진다.

드디어 케밥이 나왔다. 돌돌 만 종이를 벗기고 입안 가득 물어 뜯었다. 생소한 맛은 아니었다. 베트남 식당에서 먹은 '반미'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차이라면 반미는 바게트인데 케밥은 납작한 빵 안에 고기와 양파, 토마토, 오이피클, 양상추 등이 들어간다. 살짝 매콤한 맛도 났다. 어라? 양고기는 누린내가 난다고 알고 있는데. 하나도 안 나네? 맛있고 배도 고픈 터여서 천천히 음미할 새도 없이 순식간에 먹어치웠다. 서너 개는 먹어야 배가 찰 것 같았다. 1만원이면 가격이 비싼 편이다. 도네르케밥은 7500원.

세계 선사문명에서 가장 중요한 트로이의 땅 튀르키예. 신과 인간, 자연이 완벽하게 어우러져 호메로스를 비롯해 지금도 인류에게 영감을 불어넣고 있다. 튀르키예는 풍요롭고 비옥하다. 식량자급률이 100%다. 주식인 밀은 먹고 남아 돌고 과일도 풍부해 싸고 실컷 먹을 수 있단다. 프랑스, 중국과 함께 튀르키예는 세계 3대 미식의 나라로 알려졌다. 튀르키예는 실크로드에 위치해 향신료 무역이 발달해 오래전부터 향신료를 많이 쓴다. 작년에 후배가 튀르키예로 연수를 간다길래 겁나게 부러워했다. 돌아온 후배에게 음식부터 물어보자 고개를 저었다. 향신료가 너무 강해 입맛에 안 맞았다나? 아, 이 나라 음식에 대한 욕망이 더 커진다. 하긴 동남아 요리에 들어가는 고수도 호불호가 강한 향신료 아닌가.

튀르키예는 지리적으로 동서 무역의 교차로여서 오스만 제국 시기부터 전 세계의 음식문화에 영향을 미쳤다. 흡수하는데도 주저하지 않았다. 다양하고 화려한 요리가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다. 이 나라는 세속적이긴 하지만 엄연히 이슬람교를 믿는다. 이슬람교는 '할랄'이라는 음식문화가 있다. 돼지고기를 금기시하는 것. 그런데 대구 대현동 이슬람사원 반대 주민들이 그들 앞에서 삼겹살 파티를 벌였다. '이슬람 아웃 무섭다!'며 이슬람교에 대한 온갖 혐오의 언어를 쏟아냈다. 단지 기도할 사원을 짓겠다는데. 이들이 테러리스트인가? 한국인은 다분히 미국의 시각으로 세계를 재단한다. 선입견처럼 위험한 것은 없다. 생각만 해도 입안에 침이 고이는 크루아상 모양은 초승달이다. 당신이 먹는 이 빵의 역사가 무슬림과 깊은 인연이 있는 걸 아시는지.
우난순 수정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갑천 야경즐기며 워킹' 대전달빛걷기대회 5월 10일 개막
  2. 수도 서울의 높은 벽...'세종시=행정수도' 골든타임 놓치나
  3. 이상철 항우연 원장 "한화에어로 지재권 갈등 원만하게 협의"
  4. 충남 미래신산업 국가산단 윤곽… "환황해권 수소에너지 메카로"
  5. [근로자의 날] 작업복에 묻은 노동자 하루…"고된 흔적 싹 없애드려요"
  1. 충청권 학생 10명 중 3명이 '비만'… 세종 비만도 전국서 가장 낮아
  2. 대학 10곳중 7곳 올해 등록금 올려... 평균 710만원·의학계열 1016만원 ↑
  3.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
  4. [춘하추동]삶이 힘든 사람들을 위하여
  5. 2025 세종 한우축제 개최...맛과 가격, 영양 모두 잡는다

헤드라인 뉴스


[근로자의 날] 작업복에 묻은 노동자 하루…"고된 흔적 싹 없애드려요"

[근로자의 날] 작업복에 묻은 노동자 하루…"고된 흔적 싹 없애드려요"

"이제는 작업복만 봐도 이 사람의 삶을 알 수 있어요." 28일 오전 9시께 매일 고된 노동의 흔적을 깨끗이 없애주는 세탁소. 커다란 세탁기 3대가 쉴 틈 없이 돌아가고 노동자 작업복 100여 벌이 세탁기 안에서 시원하게 묵은 때를 씻어낼 때, 세탁소 근로자 고모(53)씨는 이같이 말했다. 이곳은 대전 대덕구 대화동에서 4년째 운영 중인 노동자 작업복 전문 세탁소 '덕구클리닝'. 대덕산업단지 공장 근로자 등 생산·기술직 노동자들이 이용하는 곳으로 일반 세탁으로는 지우기 힘든 기름, 분진 등으로 때가 탄 작업복을 대상으로 세탁한다...

`운명의 9연전`…한화이글스 선두권 경쟁 돌입
'운명의 9연전'…한화이글스 선두권 경쟁 돌입

올 시즌 절정의 기량을 선보이는 프로야구 한화이글스가 9연전을 통해 리그 선두권 경쟁에 돌입한다. 한국프로야구 10개 구단은 29일부터 다음 달 7일까지 '휴식 없는 9연전'을 펼친다. KBO리그는 통상적으로 잔여 경기 편성 기간 전에는 월요일에 경기를 치르지 않지만, 5월 5일 어린이날에는 프로야구 5경기가 편성했다. 휴식일로 예정된 건 사흘 후인 8일이다. 9연전에서 가장 주목하는 경기는 29일부터 5월 1일까지 대전 한화생명볼파크에서 열리는 LG 트윈스와 승부다. 리그 1위와 3위의 맞대결인 만큼, 순위표 상단이 한순간에 뒤바..

학교서 흉기 난동 "학생·학부모 불안"…교원단체 "재발방지 대책"
학교서 흉기 난동 "학생·학부모 불안"…교원단체 "재발방지 대책"

학생이 교직원과 시민을 상대로 흉기 난동을 부리고, 교사가 어린 학생을 살해하는 끔찍한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학생·학부모는 물론 교사들까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경찰과 충북교육청에 따르면 28일 오전 8시 33분쯤 청주의 한 고등학교에서 특수교육대상 2학년 A(18) 군이 교장을 비롯한 교직원 4명과 행인 2명에게 흉기를 휘둘러 A 군을 포함한 모두 7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경계성 지능을 가진 이 학생은 특수교육 대상이지만, 학부모 요구로 일반학급에서 공부해 왔다. 가해 학생은 사건 당일 평소보다 일찍 학교에 도착해 특..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2025 유성온천 문화축제 5월 2일 개막 2025 유성온천 문화축제 5월 2일 개막

  • 오색 연등에 비는 소원 오색 연등에 비는 소원

  • ‘꼭 일하고 싶습니다’ ‘꼭 일하고 싶습니다’

  •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