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 스스로 영웅되기의 비극

  • 오피니언
  • 풍경소리

[풍경소리] 스스로 영웅되기의 비극

송기한 대전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 승인 2024-03-11 14:07
  • 신문게재 2024-03-12 19면
  • 조훈희 기자조훈희 기자
송기한 대전대 교수
송기한 대전대 교수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알게 모르게 세뇌를 받는다. 어느 한쪽의 사고로 치우치는 것이 세뇌인데, 그것이 사전적으로는 이렇게 정의되어 있다. "어떤 사상이나 주의, 신념 등을 머릿속에 주입하거나 받아들이도록 설득하여, 본래 가지고 있던 생각이나 행동을 개조함"이 세뇌라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세뇌 유형들은 다음과 같은 군상들이다. 지금까지 다른 당에 대해서 단 한 번도 투표하지 않은 사람, 다른 사람의 입장에 결코 서 있지 않았던 사람, 비판력을 상실한 사람 등등이다. 이 가운데 가장 문제 되는 경우가 "비판력을 상실한 사람'일 것이다. 이런 사람은 자신이 옹호하고 지지하는 사람이나 집단에 대해 거의 맹목적으로 편향된 사고를 보인다. 비판력을 상실했으니 현재 자신이 떠받치고 있는 사람이나 집단을 크나큰 잘못을 하더라도 어떡하든 합리화시키려 든다. "현재 A라는 사람이 부족해도 과거의 B보다는 낫다"식으로 호인(護人)하는 것이다.



얼마 전 정치인들에 대한 폭력, 곧 테러가 벌건 백주에 일어났다.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라고 인식되는 우리 사회에서 반평화적인 테러 행위가 자행된 것이다. 그런데 이런 테러는 객관성이 결여된, 주관에 함몰된 자의 "스스로 영웅 되기"가 빚어낸 비극이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어느 한쪽으로의 편향된 사고를 갖는다는 점에서 세뇌는 흔히 부정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지만, 그렇다고 해서 세뇌가 모두 긍정의 범위를 벗어나 있는 것은 아니다. 종교의 경우가 그러한데, 배타성이 없는 종교란 성립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반만년에 걸친 아름다운 역사를 갖고 있는 나라, 동방예의지국이라고 알려진 이 나라에서 왜 이런 비극적인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테러리스트의 탄생은 어느 순간 갑자기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대개 몇 단계를 거쳐서 만들어진다. 첫째가 '스스로 세뇌하기'의 과정이다. 우리 사회는 지난 몇십 년 동안 편향된 교육, 곧 세뇌를 강요당했다. 전쟁을 거치면서 만들어진 좌우 논리는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자신의 취향이나 경제적 기반 등이 여기에 동반하면서 이에 동조하는 사유나 사건들만이 수용되는데, '스스로 세뇌하기'란 이런 과정을 통해서 탄생한다.

'스스로 세뇌하기'의 과정이 끝나게 되면, 이제 '세뇌 시키기'의 단계로 넘어가게 된다. 세뇌된 '내가' 절대적으로 옳으니 상대방 또한 자신 입장이나 견해에 따라야 한다는 논리이다. 이 정서를 뒷받침하고 있는 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아니 해야만 하는 사회에 대한 의무감, 당위감이다. 그래서 자신에게 들어온 정보, 혹은 스스로가 찾아낸 정보들에 대해 타인에게 '퍼나르기'를 시도한다. 자신의 휴대폰에 있는 타인의 메일이나 카톡방 등에 스스로 옳다고 믿는, 아니 믿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정보들을 계속 올려댄다. 물론 이런 정보들에 어떤 객관성이나 합리성이 담보되어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러한 과정이 끝나게 되면, 이제 '스스로 영웅되기'라는 마지막 단계에 이르게 된다. 자신의 관점에서 보면, 세상은 온갖 부조리로 가득차 있고, 그런 한계 상황을 구해낼 만한 어떠한 힘도 없는 것처럼 느끼게 된다. 그래서 자신이 나서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오판하게 된다. 객관성을 상실한 '스스로 영웅되기'에 올라서게 되는 것이다.

'스스로가 영웅된 사람'은 세뇌의 정점에 이른 자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그릇된 영웅의식에 물든 자가 자신은 결코 세뇌되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면서 자신의 사유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들을 오히려 세뇌되었다고 역으로 비판한다. 뿐만 아니라 가끔 TV에서 나오는 북쪽 사회의 편향된 사고들과 그 일사불란한 모습들에 대해 탄식하기도 한다

북쪽은 정보가 차단되어 있으니 하나의 단선적인 생각만을 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하나된 광기(狂氣)가 나오는 것이라고 이해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러 다양한 정보를 쉽게 마주할 수 있는, 지금 이곳의 세뇌된 사람들의 광기는 어떻게 볼 것인가. 정보가 부재한 상황에서 오는 광기와 다양한 정보에 노출되어서 오는 광기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우매하고 잘못된 것인가. /송기한 대전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충남 통합 표류 속…정부 통합 시·도 교육 지원 가시화
  2. 대전 새학기 급식 정상화됐지만 파행 불씨 계속… 학비노조 "교육청과 교섭 일정 못정해"
  3. 국제존타 32지구 3지역 대전 Ⅶ클럽,차세대 여성 인재에게 장학금 수여
  4. 상급종합병원 지정 때 충남 서부·동부권 분리 검토…상급 추가지정 기회
  5. 공공기술 이전 기반 대덕특구 창업기업 '액스비스' 특구형 딥테크 혁신
  1. [풍경소리] 할매
  2. [편집국에서] 청년이라 묶기엔 너무 다른 청년들
  3. '한국자유총연맹' 쇄신과 독립의 길...김상욱 총재가 이끈다
  4. 새벽 1차선 걷던 보행자 치어 숨지게 한 운전자 항소심서도 '무죄'
  5. 교육부 AI 중점학교 운영… 충청 4개 시·도 219개 학교 선정

헤드라인 뉴스


행정통합법 12일 본회의 처리 무산…대전충남 정치권 뭐했나

행정통합법 12일 본회의 처리 무산…대전충남 정치권 뭐했나

대전·충남 행정통합 특별법 12일 국회 본회의 처리가 끝내 무산됐다. 6·3 지방선거 통합시장 선출, 7월 1일 통합시 출범을 위해선 늦어도 4월 초까지 특별법을 처리해야 하는 데 이날 본회의가 중대 분수령으로 인식돼왔다. 하지만, 안건 상정조차 이뤄지지 않으면서 통합 추진 동력 상실로 사실상 물 건너간 것 아니냐는 지적에 무게감이 더욱 실린다. 10일 더불어민주당 천준호, 국민의힘 유상범 원내수석은 국회에서 만나 12일 본회의 안건을 조율했다. TK와 대전·충남 통합법은 끝내 합의되지 못했고 대미투자특별법을 비롯해 60여 건 법안..

충남경찰, 지난해 태안화력발전소 근로자 사망 관련 안전 책임자 8명 송치
충남경찰, 지난해 태안화력발전소 근로자 사망 관련 안전 책임자 8명 송치

지난해 6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발생한 고 김충현씨 사망 사건과 관련해 경찰이 한국서부발전 안전책임자 등 관계자 8명을 검찰에 불구속 송치했다. 김상훈 충남경찰청 형사기동대장은 10일 도경 프레스센터에서 언론브리핑을 열고 태안화력발전소 안전사고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김 대장은 "태안화력발전소 근로자 사망에 있어 한국서부발전, 한전KPS, 한국파워O&M의 관리감독자의 업무상과실치사 혐의가 인정된다"며 서부발전 1명, 한전KPS 4명, 한국파워O&M 3명 등 8명을 불구속 송치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선반 방호장치 미흡과 안전관리 소홀로..

대전선관위, ‘꿈돌이 선거택시’ 운행…4월부터 2000대 지선 홍보나서
대전선관위, ‘꿈돌이 선거택시’ 운행…4월부터 2000대 지선 홍보나서

대전시선거관리위원회는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홍보를 위해 지역 가맹택시인 '꿈돌이택시'를 활용한 '꿈돌이 선거택시'를 운행키로 했다. 대전선관위는 9일 선관위 대회의실에서 애니콜모빌리티(주)와 '꿈돌이 선거택시' 운영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꿈돌이택시(꿈T)'는 대전시 공식 캐릭터 '꿈씨패밀리'가 UFO에 탑승한 디자인의 차량표시등을 부착한 지역형 가맹택시로, 애니콜모빌리티가 대전시와 협력해 운영하고 있다. 협약식에서는 양 기관 대표가 협약서에 서명한 뒤 꿈돌이택시에 직접 탑승해 협약서를 들고 기념촬영을 하는 퍼포먼..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대전 도심 곳곳 봄맞이 꽃단장 대전 도심 곳곳 봄맞이 꽃단장

  • 갈고 닦은 실력 뽐내는 세계 미용인 갈고 닦은 실력 뽐내는 세계 미용인

  • 어린이보호구역 과속 금지 어린이보호구역 과속 금지

  • 3.8민주의거 역사적 의미 살펴보는 시민들 3.8민주의거 역사적 의미 살펴보는 시민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