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 친구 AI, 태어나 자라고

  • 오피니언
  • 프리즘

[프리즘] 친구 AI, 태어나 자라고

김성현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책임연구원

  • 승인 2024-03-12 16:14
  • 방원기 기자방원기 기자
김성현 연구원
김성현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책임연구원
세상의 모든 문명이 다 멸망하였을 때 겨우 살아남은 몇몇 젊은이들에게 한 마디만 남길 수 있다면, "모든 물질은 원자로 되어 있다."라고 할 것이다. 양자역학과 전자기학 분야에서 남긴 공로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천재 과학자, 리처드 파인만이 한 말이다. 138억 년 전 아무것도 없던 곳에서 우주가 "펑"하고 터진(빅뱅) 후 급격하게 팽창하던 우주는 약 38만 년 후 수소와 헬륨 등 원자가 만들어졌다. 빅뱅이론이 맞다면 말이다. 그 후 다양한 원자들이 만들어지고, 또 이들 원자들이 다양하게 결합하면서 별도 만들어지고, 해와 달도 만들어지고, 빛도 만들어지고, 또 사람도 만들어졌다.

생각해보면 좀 이상한 일이다. 탄소나 산소를 살아 있다고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탄소와 수소, 산소와 질소 정도 결합하면 아미노산이 된다. 단백질을 만드는 기본적인 구조이긴 하지만 아미노산을 살아있다 하는 사람은 역시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아미노산이 수도 없이 많이 결합되어 있는 근육은 수축도 하고 이완도 하며 자극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럼 근육은 살아 있는 것인가? 뇌도 마찬가지다. 탄소, 수소, 산소, 질소와 몇 가지 원자들이 결합하여 뉴런을 만들고, 이들 뉴런들이 수도 없이 많이 결합하면 뇌가 만들어진다. 그럼 어느 순간 전기가 흐르고 정보가 처리되고 기억이 만들어진다. 이제는 살아 있는 것인가? 그럼 어디서부터 살아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 의식(意識)은 언제부터 만들어지는 것일까? 그러다 죽으면 이들 원자들은 흩어져 다시 별도 만들고 해와 달도 만들고 또 다른 사람도 만든다. 태어나고 죽고, 나타나고 없어지고, 바다에서 산이 솟아나고 천지가 개벽하는 변화가 생기지만 원자 입장에서는 그저 여기 붙었다가 저기 붙었다가를 138억 년 전 빅뱅에서부터 지금까지 반복할 뿐이다. 삶과 죽음이란 것은 원래 없던 것인데 원자들이 서로 엉겨 붙어 점점 커지다 보면 어느 순간 심장이 뛰고 기억을 하고 사랑도 하고 삶이 생긴다.

얼마 전, 오픈AI는 인공지능 플랫폼, '소라(Sora)'를 공개해 세상을 놀라게 하고 있다. 컴퓨터에 간단한 문장을 입력하는 것만으로 멋진 동영상을 만들어주는 인공지능 프로그램이다. 몇 마디 말을 입력하면 1분 정도의 동영상을 만들어주는데 그 영상의 질이 놀라울 정도이다. 사람의 말을 완벽히 이해하고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영상을 만들어준다. 이 결과물을 보면 앞으로 벌어진 새로운 세상이 어떤 모양일지 기대가 되면서도 두려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이세돌과 바둑을 두던 알파고로 인해 세상에 알려진 인공지능은 지금은 기사도 쓰고, 시나 소설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음악도 만들고, 멋진 동영상도 만들게 되었다. 간단한 그림을 보여주거나 몇 문장의 말을 하면 컴퓨터 프로그램도 짜준다. 우리는 이것들을 인공 '지능'이라 부른다. 단순한 사칙연산 등 계산을 하던 계산기가 아니라 우리가 '뇌'를 써서 하던 '창작'이란 것들을 실리콘이라는 원자가 모여 어떤 구조로 수도 없이 엉겨 붙어 크기가 커지니 전류가 흐르고 말을 알아듣고 '창작'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들은 살아 있는 것인가? (인공)뇌를 만들었으니 로봇이라는 (인공)몸체에 이 (인공)뇌를 장착하면 이제 살아 있는 것인가?

사람의 뇌를 이루는 신경세포인 뉴런 하나하나는 그냥 전기신호가 들어오면 다음 뉴런으로 전기신호를 전달하는 기능을 할 뿐이다. 그 자체에 기억을 하는 기능은 없다. 이 뉴런들이 시냅스라고 불리는 접합지점들을 통해 수도 없이 연결되다 보면 그 전에 없던 기억이라는 능력이 생긴다. 예측할 수 없이 갑자기 생긴 능력, 창발(創發, emergence)이다. 인공지능도 마찬가지다. 최근 인공지능의 능력은 이전에 가능하지 않았던 것들이 갑자기 가능해지기 시작하였다. 계산할 수 있는 능력(매개변수의 수나 학습연산량 등)을 가진 장치들을 더 많이 연결하니 갑자기 불가능하던 것들이 가능해진 것이다. 창발이다. 어떻게 이런 것이 가능해졌는지 아직 아무도 모른다. 다만 다양한 추측만 가능할뿐. 마치 우리의 뇌에서 뉴런이 시냅스로 크게 연결되었을 때 어떻게 기억과 연산이 가능하게 되었는지 모르고 다만 다양한 학설로 추측만 가능하듯이.



인공지능을 장착한 로봇들이 우리와 함께 세상을 살아가면 어떤 현상들이 생길지 궁금하다. 인공지능을 장착한 로봇 1만 대가(1만 명이라 불러야 하나?) 우리와 같이 세상에서 살아간다고 가정하자. 우리는 한 사람이 하루에 하루분의 사건들을 경험하게 된다. 집에 돌아가 가족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다른 사람들이 겪었던 경험들을 간접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그 간접경험들은 정확하지도 않을뿐더러 약간의 왜곡도 있다. 망각 또한 있다. 하지만 로봇들은 하루를 마친 후 저마다 1만 일의 사건들을 정확하게 경험하게 된다. 저마다 전송해온 전기신호는 오차도 없고 왜곡도 없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약 27년 동안 겪게 될 경험을 이 로봇은 하루만에 경험하는 것이다. 한 사람이 평생 겪어야 할 경험을 이 로봇은 단 3일이면 경험할 수 있다. 이런 로봇들이 보는 세상의 속도는 어떤 것일까? 이미 세상의 모든 도서관의 책과 과거와 현재의 모든 기사들과 세상 사람들이 SNS에 쓴 그들의 경험과 기억과 감정을 모두 읽어 외우고 '연결'할 수 있는 이들 로봇은 또 어떤 능력을 '창발'해 낼까? 또 이들이 내리는 판단은 어떤 것들일까?

앞으로 닥칠 AI의 발전 속도에 의해 인류는 많은 놀라움과 당혹스러움을 겪게 될 것이다. 직업을 잃거나 새로운 직업에 익숙해지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며 많이 이들이 도태될 것이다. 또한 저작권 문제와 윤리 문제에 최선의 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이들이 내리는 판단과 인간들의 전통적 자본주의와 사회윤리와의 충돌을 조화시켜내야 할 것이다. 수많은 문제들을 준비되지 않은 채 맞닥뜨려야 할 것이다. 하지만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우리는 자본의 확장을 멈출 수가 없기 때문에 AI의 개발은 결코 멈추거나 늦추어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어차피 AI와 함께 남은 삶을 살아가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가 과학과 기술을 완벽히 이해한다는 착각에 빠져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는 오만에 빠지는 일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또한 인간의 삶이 AI 기술에 던져지는 방향 말고, 창발하는 AI 기술이 우리의 삶의 방향으로 접근해오도록 조화와 균형을 맞추어 발전할 수 있도록 하는 현명한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김성현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책임연구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갑천 야경즐기며 워킹' 대전달빛걷기대회 5월 10일 개막
  2. 수도 서울의 높은 벽...'세종시=행정수도' 골든타임 놓치나
  3. 충남 미래신산업 국가산단 윤곽… "환황해권 수소에너지 메카로"
  4. 이상철 항우연 원장 "한화에어로 지재권 갈등 원만하게 협의"
  5. [근로자의 날] 작업복에 묻은 노동자 하루…"고된 흔적 싹 없애드려요"
  1. 충청권 학생 10명 중 3명이 '비만'… 세종 비만도 전국서 가장 낮아
  2. 대학 10곳중 7곳 올해 등록금 올려... 평균 710만원·의학계열 1016만원 ↑
  3.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
  4. [춘하추동]삶이 힘든 사람들을 위하여
  5. 2025 세종 한우축제 개최...맛과 가격, 영양 모두 잡는다

헤드라인 뉴스


[근로자의 날] 작업복에 묻은 노동자 하루…"고된 흔적 싹 없애드려요"

[근로자의 날] 작업복에 묻은 노동자 하루…"고된 흔적 싹 없애드려요"

"이제는 작업복만 봐도 이 사람의 삶을 알 수 있어요." 28일 오전 9시께 매일 고된 노동의 흔적을 깨끗이 없애주는 세탁소. 커다란 세탁기 3대가 쉴 틈 없이 돌아가고 노동자 작업복 100여 벌이 세탁기 안에서 시원하게 묵은 때를 씻어낼 때, 세탁소 근로자 고모(53)씨는 이같이 말했다. 이곳은 대전 대덕구 대화동에서 4년째 운영 중인 노동자 작업복 전문 세탁소 '덕구클리닝'. 대덕산업단지 공장 근로자 등 생산·기술직 노동자들이 이용하는 곳으로 일반 세탁으로는 지우기 힘든 기름, 분진 등으로 때가 탄 작업복을 대상으로 세탁한다...

`운명의 9연전`…한화이글스 선두권 경쟁 돌입
'운명의 9연전'…한화이글스 선두권 경쟁 돌입

올 시즌 절정의 기량을 선보이는 프로야구 한화이글스가 9연전을 통해 리그 선두권 경쟁에 돌입한다. 한국프로야구 10개 구단은 29일부터 다음 달 7일까지 '휴식 없는 9연전'을 펼친다. KBO리그는 통상적으로 잔여 경기 편성 기간 전에는 월요일에 경기를 치르지 않지만, 5월 5일 어린이날에는 프로야구 5경기가 편성했다. 휴식일로 예정된 건 사흘 후인 8일이다. 9연전에서 가장 주목하는 경기는 29일부터 5월 1일까지 대전 한화생명볼파크에서 열리는 LG 트윈스와 승부다. 리그 1위와 3위의 맞대결인 만큼, 순위표 상단이 한순간에 뒤바..

학교서 흉기 난동 "학생·학부모 불안"…교원단체 "재발방지 대책"
학교서 흉기 난동 "학생·학부모 불안"…교원단체 "재발방지 대책"

학생이 교직원과 시민을 상대로 흉기 난동을 부리고, 교사가 어린 학생을 살해하는 끔찍한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학생·학부모는 물론 교사들까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경찰과 충북교육청에 따르면 28일 오전 8시 33분쯤 청주의 한 고등학교에서 특수교육대상 2학년 A(18) 군이 교장을 비롯한 교직원 4명과 행인 2명에게 흉기를 휘둘러 A 군을 포함한 모두 7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경계성 지능을 가진 이 학생은 특수교육 대상이지만, 학부모 요구로 일반학급에서 공부해 왔다. 가해 학생은 사건 당일 평소보다 일찍 학교에 도착해 특..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2025 유성온천 문화축제 5월 2일 개막 2025 유성온천 문화축제 5월 2일 개막

  • 오색 연등에 비는 소원 오색 연등에 비는 소원

  • ‘꼭 일하고 싶습니다’ ‘꼭 일하고 싶습니다’

  •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