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人칼럼] 역사와 권력과 다큐멘터리

  • 오피니언
  • 문화人 칼럼

[문화人칼럼] 역사와 권력과 다큐멘터리

김홍진 한남대 국어국문 창작학과 교수&문학평론가

  • 승인 2024-03-20 18:28
  • 수정 2024-03-21 22:17
  • 신문게재 2024-03-21 19면
  • 김지윤 기자김지윤 기자
김홍진 교수
김홍진 교수.
역사가 '그'(He)로 대변되는 남성 중심 '이야기'(Story)였던 것처럼 근대 이전 역사학이나 역사 기술은 군주나 왕조에 종속되어 있었다. 그러던 것이 근대 국가로 이행하면서 역사학은 국가의 정체성과 권력의 정통성 보증에 복무한다. "역사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과 정통성을 드러내고 싶은 권력은 역사를 자신들의 의도대로 재구성"하고, 이념적 목적에 맞게 재의미화하려 한다. 이 점은 심용환 저 '역사전쟁' 일독을 권한다.

역사 해석이나 기술은 권력의지를 반영한다. 돌이키면 이명박 정권은 역사 교과서에서 민주주의란 단어를 자유민주주의로 수정하고는 교과서 여러 곳을 자신들 입맛대로 뜯어고쳤고, 박근혜 정권은 수능에서 한국사를 필수과목으로 지정하고는 아예 뉴라이트 계열 필진을 동원한 한국사 교과서를 검정에 통과시켰다. 결은 좀 다르지만, 문재인 정권은 집권하자마자 영호남 벽을 허물 수 있다는 이유로 고대 가야사 연구와 복원 사업을 국정과제에 포함하려 했다. 최근 홍범도 흉상 철거나 이승만 기념관 건립 등을 위시한 논란들도 같은 맥락이다.

이승만 전 대통령 전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이 17일 기준 누적 관객 116만 명을 돌파했다. 언론 시사회 같은 홍보를 생략하고 개봉한 이 영화의 존재감은 처음엔 미미했다. 하지만 유력한 정치권 인사들의 관람 후기가 매체에 잇따르고, "역사를 올바르게 알 수 있는 기회"라는 대통령의 언급 등을 포함한 이런저런 사회 분위기와 여파에 힘입어 관람 행렬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는 모양이다.

단체 관람 위주의 모객 행위는 드물지 않다. 하지만 이 영화 공동 제작사의 관람료 페이백 이나 어느 회사의 영화관람 직원 5만 원 지원 이벤트 등은 '건국전쟁'이 전달하려는 메시지만큼이나 노골적이다. 권터 안더스의 말대로 사실은 만들어지는 것이다. 다큐멘터리가 사실의 기록이라는 건 순진한 생각이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사실 모든 다큐멘터리는 연출 없는 기록이라는 문법 규약을 따르는 척하면서 또 다른 사실을 의도적으로 은폐한다. 다큐멘터리를 표방한 이 영화는 해방과 한국 전쟁 후 건국 과정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의 업적을 보여주려 애쓴다. 하지만 그것을 드러내려는 의도가 강하면 강할수록 결국 사실을 왜곡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

허구와 마찬가지로 다큐멘터리 역시 편집을 통해 전달할 메시지를 극화한다. '워낭소리'에서 일찌감치 경험했듯 다큐멘터리는 사실의 기록이란 서사 규약을 따르는 것 같지만 메시지 전달 효과를 위해 어떤 식으로든 감독의 의식이 개입할 수밖에 없다. 그럼으로써 이승만 정권의 독재와 부정의 흔적은 말끔히 표백된다. 사실을 보여주는 게 다큐멘터리라지만, 역설적으로 이 만큼 사실과 진실에서 멀어질 수 있는 양식도 없다. 특정 이념과 분위기를 확산하려는 강렬한 목적의식으로 인해 '건국전쟁'은 다 멘터리가 내포하는 위험성에 대한 반성과 고민의 흔적이 없다. 의심의 여지 없이 확신에 찬 믿음과 의도는 투명하며 노골적이다.

'건국전쟁'은 부정성과 비동일성은 누락하고 긍정성과 동일성만 전경화한 채 영화의 목적과 의도를 직설적으로 노출한다. 그럼으로써 관객의 정치적 신념과 이념적 나르시시즘을 더욱 강화한다. 이 다큐멘터리의 의도는 관객들에게 거울처럼 반사되어 자동강박적으로 자기 확신을 강화해 준다. 이즈음 노무현, 문재인, 김대중, 이승만, 박정희 등 근현대사 실존 인물을 호명 한 다큐멘터리들이 넘쳐난다. 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프로파간다의 위험성을 내포하며, 극단적 진영논리를 환기한다. 가수 김흥국은 '건국전쟁'의 감동에 고무되어 박정희 전 대통령 내외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을 결심했다지만, 노출이 포르노그래피적으로 지속되면 상상이 파괴된다. 그 결과 역설적으로 아무것도 볼 게 없어진다.

김홍진 한남대 국어국문 창작학과 교수&문학평론가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아산시, 강당골 계곡 대대적 정비 박차
  2. 대전시, 산업단지 조성 전략 수정할까
  3. [주말사건사고] 폭염 여파 정전에 대전·충남 곳곳서 화재 발생
  4. 경기 광주시, 470만 명 중부권 광역급행철도 JTX ‘조기 추진’ 촉구
  5. 대전에 없는 '대전지방중수청'… 출범 전부터 청사 논란
  1. 충남대·공주대 통합 첫단추…14일 단일안 윤곽 나오나
  2. 성남시, 1기 분당신도시 정비구역 확대 가능성 검토
  3. 대전시 조건 안 맞는 중수청 대안 냈었다… 청사 선정 배경 논란
  4. 세종시 신규 사무관 8명... 새로운 출발 다짐
  5. 李정부 5극 3특 성장엔진 산업 발표 코앞…충청권 들러리 되나

헤드라인 뉴스


[전통시장 현대화, 그 다음] 시설은 바뀌었지만 경쟁력은 제자리

[전통시장 현대화, 그 다음] 시설은 바뀌었지만 경쟁력은 제자리

낡은 시설을 바꾸면 전통시장은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정부와 지자체는 낙후된 시설을 정비하고, 편의성을 높이는 시설 현대화 사업을 통해 전통시장이 거대한 유통 공룡들과 맞서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선을 세웠다. 대전의 전통시장들도 현대식 지붕을 설치하고 주차장을 확장하며 손님맞이 채비를 마쳤다. 그러나 현대화 사업의 종착지는 단순히 '쾌적한 시장'이 아닌 '사람이 모이는 시장'이어야 한다. 화려해진 외형에 비해 정작 새로운 소비자를 끌어당길 차별화된 콘텐츠와 운영 전략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대형마트와의 경쟁력은 외..

내리던 대전 기름값 숨고르기…중동 리스크에 추가 하락 `주춤`
내리던 대전 기름값 숨고르기…중동 리스크에 추가 하락 '주춤'

대전지역 주유소 휘발유 가격이 한 달 넘게 내림세를 이어가고 있지만 최근 들어 하락 속도는 한풀 꺾인 모습이다. 정부의 유류가격 인하 조치로 가격 부담은 다소 완화됐지만, 중동 정세가 다시 고조되면서 국제유가가 반등해 추가 하락 기대감은 다소 약해지고 있다. 13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서비스 오피넷에 따르면 이날 기준 대전지역 보통휘발유 평균 판매가격은 리터당 1857.70원으로 집계됐다. 한 달 전 평균 1999원 안팎과 비교하면 140원 이상 낮아졌다. 다만 최근에는 하락 폭이 이전보다 줄어들면서 가격 조정 국면에 들어선 분위기..

이 대통령 "추가세수, 미래·청년·지방·교육 4대 분야 집중 투자"
이 대통령 "추가세수, 미래·청년·지방·교육 4대 분야 집중 투자"

이재명 대통령은 13일 "대규모 추가 세수를 미래와 청년, 지방, 교육 등 국가의 미래를 좌우할 4대 분야에 집중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오후 청와대에서 주재한 '2026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다. 이 대통령은 모두 발언을 통해 "2027년 예산안이야말로 편성 단계부터 오롯이 우리 정부가 처음으로 그려내는 예산"이라며 "대체불가 대한민국이라는 담대한 꿈을 뒷받침하는 그런 방안들을 내년도 예산안에 잘 챙겨 담아야 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재정 운영의 세 가지 원칙을 강조했다. 우선 대규모의 추가 세수를 미래 대응을 위한 전략적..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썸머케어로 건강한 여름 나세요’ ‘썸머케어로 건강한 여름 나세요’

  • 드론 벼 병해충 공동방제 드론 벼 병해충 공동방제

  • 수 년간의 기다림 끝에…허물 벗는 매미 수 년간의 기다림 끝에…허물 벗는 매미

  • 폭염이 만든 풍경…지상은 ‘썰렁’, 지하는 ‘인산인해’ 폭염이 만든 풍경…지상은 ‘썰렁’, 지하는 ‘인산인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