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만필] 빈틈 많은 교사와 그 안에서 스스로 배우는 학생들

  • 오피니언
  • 교단만필

[교단만필] 빈틈 많은 교사와 그 안에서 스스로 배우는 학생들

보령 개화초등학교 박라은 교사

  • 승인 2024-05-16 14:33
  • 수정 2026-04-22 17:16
  • 신문게재 2024-05-17 18면
  • 이현제 기자이현제 기자
나는 허술한 교사라고 감히 고백한다.

3월 초, 새 학기 맞이 준비를 위한 교실청소가 완벽하게 되지 않았다. 큰 먼지들과 쓰레기들은 교실 중간중간에 버려져 있었고, 학생들의 책상 위 먼지도 닦지 않았다. 3월 2일. 아이들이 교실 문을 열고 들어온다. 교실에 들어온 학생 중 한 명이 이런 말 해도 되느냐는 표정으로 멋쩍게 웃으며 말한다.

"교실이 좀 더러운 것 같아요."

"어,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몇몇 학생들이 연달아 맞장구를 친다.

"이미 충분히 더러우니, 더 더러워질 일은 없겠고, 그럼 치우는 일만 남았네?" 나는 조용히 청소의 주도권을 학생들에게 넘긴다. 아이들은 자기 책상을 비롯한 교실 이곳저곳을 쓸고 닦는다. 어른인 나의 눈으로 보기엔 뒷손이 많이 가는 어설픈 솜씨이기 짝이 없다. 손바닥만 한 물티슈로 교실 바닥을 닦고 있는 모습 하며, 쓰레받기에 쓰레기를 제대로 올리지 못하는 서툰 빗자루질들.

'차라리 내가 하고 말지'라는 답답한 마음을 뒤로하고 아이들이 스스로 청소를 완성할 수 있도록 지켜본다. 나 혼자 쓸고 닦으면 10분 걸릴 일을, 한 시간가량을 아무 말 없이 지켜보고 있자니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아뿔싸, 그런데 청소를 마친 아이들의 모습에는 뿌듯함이 역력하다. '땀 흘리며 뭔가를 해냈다'하는 저 표정을 보니 '그래 맞다, 완성도가 중요한 게 아니라 청소를 하고 싶게 만드는 동기가 중요한 거였지. 청소가 재밌다는 인식을 심어줬으니 이만하면 됐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에피소드 하나로 "아이들이 1년 내내 청소를 잘하던가요?" 라는 물음이 들린다면 나는 단호하게 "아니요. 그럴 리가요"고 답한다.

3월 2일 첫날 청소 후, 교사인 내가 청소를 강요하지 않으니 교실은 순식간에 더러워졌다. 하루, 이틀, 사흘, 그리고 꽉 채운 일주일. 교실은 붙임 딱지 조각들과 구겨진 가정통신문, 돌아다니는 학용품들로 '막장'이 됐다.

보다 못한 한 명이 "청소해야 돼요. 교실이 너무 더러워요"라며 청소가 필요하다고 읍소한다. 옳거니 기다리던 바다. 나는 차분한 척, 청소를 왜 해야 하는지, 진짜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는지, 그럼 언제 하면 좋을지 아이들에게 차근차근 물었고, 청소구역과 청소 담당, 청소하는 주기, 청소 시간 등을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정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얼마나 자주 청소를 해야할까라는 회의 중 남학생 한 명이 "한 달에 한 번이요"라고 답한다. 얼씨구라고 속으로 생각하는 찰나, 그 옆에 있던 남학생이 "한 학기에 한 번"이라며 웃는다. '어어? 이놈들 봐라?' "그렇게 청소를 자주 안 하면 교실이 더러워질 테니, 그건 안돼. 한 달에 한 번은 너무 적어"라고 말하고 싶은 속내를 꾹 누른다. 청소 주도권은 학생들이 이미 가져갔으니, 나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지켜보는 역할만 해야 하는 셈이다. 저들끼리도 한 학기에 한 번은 너무 심했는지, 결국 우리 반은 '한 달에 한 번만 청소하면 되는 학급'으로 결론이 났다. 이제 지저분한 교실을 견뎌야 하는 교사와 학생들, 그리고 더럽고 행복한 학생들만 남은 셈이다.

결론이 어떻게 됐는지 궁금해할 독자를 위해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확히 '12일'이 걸렸다. 청소 주기를 다시 정하자는 자발적 학급회의가 열리기까지. '더러워서 못 견디겠다'는 학생들로부터 시작된 자발적 긴급회의였다. 이러한 시행착오를 겪은 우리 반은 최종적으로 일주일에 3일 청소를 하는 학급이 됐고, 학교에서는 '청소를 야무지게 잘하는 학생들'로 유명해진 건 덤이다.

"학생들이 어쩜 그렇게 청소를 잘해요"라고 물어보는 동료 교사들에게 난 매번 "놔두니 알아서 하더라고요"라고 싱겁게 답한다. 그러니 '완벽한 선생님이 좋은 선생님일까?'라는 나의 의문은 여전히 유효할 수밖에 없다.

남은 학기도 여전히 아이들에게 넘겨줄 주도권의 카테고리를 머릿속에 그려본다. 교실의 주인이 교사인 척 모든 것들을 황제처럼 지휘하고 지시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교육의 목표는 순종이 아니라 독립이라는 어느 교육자의 말을 나는 오늘도 마음에 새긴다. /보령 개화초등학교 박라은 교사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한화 허인서, 생애 첫 풀타임에 20홈런… 신인왕 정조준
  2. 김경문 감독, 한화와 작별… “최강한화 함성 영원히 못 잊어”
  3. 가을 정취 물든 '국립수목원 3종 세트'… 어디로 가볼까
  4. 충남대 상용직 노사갈등 160여일 만에 마침표…학내 신뢰 회복 과제
  5. [사진] 가을 수놓은 '세종 한글축제' 현장 속으로
  1. 대전 갑천 엑스포다리 불꽃쇼 취소… 인파 밀집·안전사고 우려
  2. 세종시 선수단 716명 라인업, 제주 전국체전서 매운맛 예고
  3. 세종문화원, 한국전래놀이협회 고갑준 대표 특강 개최
  4. 대전 미분양 아파트 늘었는데…내년 주택시장 괜찮을까
  5. 사람 몰리는 오월드, 적자는 눈덩이… 도시공사 새 사장, 해법 나올까

헤드라인 뉴스


허태정 슈퍼위크…정부지원 촉구 시도지사 연대강화

허태정 슈퍼위크…정부지원 촉구 시도지사 연대강화

취임 100일을 전후로 민생 경제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허태정 대전시장이 이번 주 슈퍼위크를 맞는다. 지역에서 잇따라 열리는 국무총리실 행사에서 정부 차원의 대전시 지원 방안을 촉구하고 전국 시도지사들과 만나 균형발전과 지방분권 의제를 논의한다. 민선 9기 대표 축제로 육성키로 한 '2026 빵축제' 개막식에서 이에 대한 외연 확대나 지역 관광 활성화 메시지를 내놓을지도 관심이다. 허 시장은 15일 오후 2시 옛 충남도청에서 열리는 '대한민국 대전환, 2차 국민토론회-충청' 행사에 참석한다. 이번 행사는 총리실 소속 사회대개혁위원회..

사람 몰리는 오월드, 적자는 눈덩이… 도시공사 새 사장, 해법 나올까
사람 몰리는 오월드, 적자는 눈덩이… 도시공사 새 사장, 해법 나올까

한글날인 10월 9일 대전 중구 사정동 오월드 입구에는 개장 전부터 200m가량의 긴 대기 행렬이 이어졌다. 가족 단위 방문객들이 몰리면서 주요 놀이기구마다 오후까지 긴 대기줄이 형성됐다. 이날만 1만 1311명, 이튿날인 10일에도 9822명이 방문하며 연휴 이틀간 2만 명이 넘는 인파가 몰렸다. 연휴 때마다 발 디딜 틈 없이 붐비는 모습과 달리 오월드의 경영 성적표는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연간 관람객은 감소하고 영업적자는 2년 연속 100억 원을 넘어선 상황이다. 여기에 3300억 원 규모의 오월드 재창조 사업마저 전..

대덕구의회 파행에 구청장 단식 농성…민생 뒷전 의원들 "의정비는 인상"
대덕구의회 파행에 구청장 단식 농성…민생 뒷전 의원들 "의정비는 인상"

100일 넘게 이어진 여야 갈등으로 의장 선출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대전 대덕구의회의 파행 사태에 김찬술 대덕구청장이 12일부터 단식 투쟁에 돌입한다. 의회 원 구성 지연으로 주요 안건 29건이 계류되면서 직원 임금 체불과 주민 편의·복지시설 운영 차질 등 행정 공백이 현실화되자 구청장이 직접 단식이라는 강경 대응에 나선 것이다. 특히 내년도 본예산 심의까지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정작 대덕구의회는 의정비 인상을 추진하고 있어 비판 여론이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11일 중도일보 취재결과, 김 청장은 12일 오..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대전 주말 축제 ‘북적북적’ 대전 주말 축제 ‘북적북적’

  • 모래판 위에서 펼쳐진 한판 승부 모래판 위에서 펼쳐진 한판 승부

  • 수확 앞둔 황금 들녘 수확 앞둔 황금 들녘

  • ‘와! 성공이다’ 대전샛 개발자들 누리호 발사 성공에 환호 ‘와! 성공이다’ 대전샛 개발자들 누리호 발사 성공에 환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