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 엘가의 님로드, 국립대전현충원 호국영령을 기리며

  • 오피니언
  • 풍경소리

[풍경소리] 엘가의 님로드, 국립대전현충원 호국영령을 기리며

오지희 음악평론가

  • 승인 2024-06-10 14:36
  • 신문게재 2024-06-11 19면
  • 조훈희 기자조훈희 기자
오지희 음악평론가
오지희 음악평론가
국립대전현충원은 추모객과 등산객이 섞여 있는 특별한 추모공간이다. 둘레길을 걷다 추모의 공간으로 가기도 하고 추모 후 자연의 아름다운 경치를 즐기기도 한다. 해마다 6월이 되면 여름의 쨍한 날씨에도 호국영령이 잠든 이곳엔 먹먹함이 감돈다.

아무리 일상의 평화와 삶이 부여하는 분주함 속에 잊고 지냈다 하더라도, 그리고 전쟁이 마치 먼 나라 일처럼 느껴지더라도, 6월은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호국영령께 고마움을 가져야 하는 시기임에 틀림없다. 가볍게 둘레길을 걸으러 갔어도 소중한 생명을 바친 모든 영령 앞에 옷깃을 한 번 여미는 마음이 절로 우러나는 때가 바로 6월이다.



클래식 음악이 지닌 최대 장점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이러한 숭고함과 장엄함을 감동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는 데 있다. 본디 클래식 음악은 가톨릭교회의 그레고리오 성가에서 출발했기에 그 본질에 종교가 지닌 순수함과 진지한 특성이 내재되어 있다. 6월의 현충원에서 떠오르는 클래식 음악, 그 많은 다양한 클래식 음악 장르에서도 존경하는 대상을 향한 추모곡을 하나 꼽는다면 당연 엘가의 님로드가 될 것이다.

에드워드 엘가는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에 걸쳐 활동한 영국 작곡가다. 엘가가 영국 음악사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 이해하려면 간략한 영국음악에 대한 스케치가 필요하다. 영국은 대륙과 떨어진 섬나라라는 지리적 특성으로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음악 강국과 다소 다른 독특한 행보를 걸었다. 그레고리오 성가와 성악음악 발달은 중세시기 프랑스에서 확대되었고 기악음악과 오페라 장르는 바로크 시기를 거쳐 이탈리아에서 발달했다. 익히 알고 있는 바흐, 베토벤, 슈베르트 등 익숙한 고전, 낭만 클래식 음악 작곡가들은 상당수 독일 음악가들이다.



반면, 17세기 후반기 영국에는 영국의 모차르트라고 불리는 작곡가 헨리 퍼셀이 있었다. 놀랍게도 퍼셀 이후 200여 년간 영국 음악사에는 눈에 띄는 작곡가가 등장하지 않았다. 런던에는 독일서 건너온 헨델과 이탈리아 오페라가 절찬리 무대에 올랐고 하이든 런던 교향곡, 멘델스존의 영국 여행 작품 등 음악가들이 활동하는 중요한 나라였음에도 말이다. 그런데 19세기 중반 주목할 작곡가가 영국에서 태어나 대영제국이 뻗어나가는 위대한 시기에 활동했다. 그 사람이 바로 엘가다. 엘가는 퍼셀 이후 처음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영국 작곡가다. 우리에게는 '사랑의 인사'라는 아름다운 선율을 들려준 소품으로도 익숙하다.

영국음악의 르네상스를 이끈 엘가는 후기 낭만의 풍부한 관현악법과 대범한 선율로 걸작을 다수 생산했다. 1899년 발표한 '수수께끼 변주곡'은 이러한 엘가의 음악적 특징을 잘 보여주는 테마와 14개의 관현악 변주로 이루어져 있다. '수수께끼 변주곡'이란 제목이 암시하듯 각 변주곡에 엘가와 관련된 사람들의 비밀코드가 들어있는데, 그중 9번째 곡이 님로드(Nimrod)다. 님로드는 구약성서 창세기에 등장하는 용맹한 장사 니므롯의 영어식 이름으로 엘가 친구의 별명이었다.

원제목이 갖는 뜻과 달리 님로드가 고인에 대한 추모곡으로 연주되는 이유는 그 음악적 특징 때문이다. 님로드 변주곡은 현악기를 중심으로 아주 고요하게 출발한다. 엄숙하고 가슴에 남는 선율은 현악기가 내는 따뜻하고 균질한 음색과 함께 듣는 이를 차분하고 경건하게 이끈다. 이어서 플루트, 클라리넷, 호른과 같은 목관악기가 낮은 저음 현악기와 함께 선율을 반복하고, 마침내 타악기와 금관악기의 웅장함에서 그 절정을 맞이한다. 강물이 흘러가듯 안정적으로 받쳐주는 현의 흐름 속에서 트럼펫과 트럼본 금관악기는 전율하는 팀파니 울림과 함께 폭발한다. 그리고 처음이 그랬듯 마지막 역시 고요하게 마무리된다. 즉 클라이막스를 향하던 장엄한 음악이 조용히 사라지며 추모를 불러일으키는 잔잔한 여운만이 남게 된 것이다.

6월 햇살 아래 국립대전현충원 호국영령 영전에 엘가의 님로드가 울려퍼지는 상상을 해본다. 백선엽 장군, 연평해전, 천암함 용사를 위시한 수많은 영령의 헌신에 진심으로 경의를 바친다. /오지희 음악평론가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천안시, 읍면동 행복키움지원단 활동보고회 개최
  2. 천안법원, 편도 2차로 보행자 충격해 사망케 한 20대 남성 금고형
  3. ㈜거산케미칼, 천안지역 이웃돕기 성금 1000만원 후원
  4. 천안시의회 도심하천특별위원회, 활동경과보고서 최종 채택하며 활동 마무리
  5. ㈜지비스타일, 천안지역 취약계층 위해 내의 2000벌 기탁
  1. SGI서울보증 천안지점, 천안시에 사회복지시설 지원금 300만원 전달
  2. 천안의료원, 보건복지부 운영평가서 전반적 개선
  3. 재주식품, 천안지역 취약계층 위해 후원 물품 전달
  4. 한기대 온평원, '스텝 서비스 모니터링단' 해단식
  5. 백석대 서건우 교수·정다솔 학생, 충남 장애인 체육 표창 동시 수상

헤드라인 뉴스


대전충남통합 추진 동력 확보... 남은 과제도 산적

대전충남통합 추진 동력 확보... 남은 과제도 산적

대전·충남행정통합이 이재명 대통령의 긍정 발언으로 추진 동력을 확보한 가운데 공론화 등 과제 해결이 우선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5일 충남 천안시에 위치한 한국기술교육대학교에서 열린 타운홀미팅에서 대전·충남 행정통합에 사실상 힘을 실었다. 이 대통령은 "근본적으로는 수도권 일극 체제를 해소하는 지역균형발전이 필요하다"면서 충청권의 광역 협력 구조를 '5극 3특 체제' 구상과 연계하며 행정통합 필요성을 언급했다. 그러면서 "대전·충남의 행정통합은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발언으로 현재 국회에 제출돼 소관위원회에 회부된..

충청 여야, 내년 지방선거 앞 `주도권` 선점 경쟁 치열
충청 여야, 내년 지방선거 앞 '주도권' 선점 경쟁 치열

내년 지방선거가 6개월 앞으로 다가오면서 격전지인 충청을 잡으려는 여야의 주도권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대전·충청지역의 미래 어젠다 발굴과 대시민 여론전 등 내년 지선을 겨냥한 여야 정치권의 행보가 빨라지는 가운데 역대 선거마다 승자를 결정지었던 '금강벨트'의 표심이 어디로 향할지 주목된다. 여야 정치권에게 내년 6월 3일 치르는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의 의미는 남다르다. 이재명 대통령 당선 이후 1년 만에 치르는 첫 전국 단위 선거로서, 향후 국정 운영의 방향을 결정짓기 때문이다. 때문에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정권 안정..

2026년 R&D 예산 확정… 과기연구노조 "연구개발 생태계 복원 마중물 되길"
2026년 R&D 예산 확정… 과기연구노조 "연구개발 생태계 복원 마중물 되길"

윤석열 정부가 무자비하게 삭감했던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이 2026년 드디어 정상화된다. 예산 삭감으로 큰 타격을 입었던 연구 현장은 회복된 예산이 연구개발 생태계 복원에 제대로 쓰일 수 있도록 철저한 후속 조치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국회는 이달 2일 본회의 의결을 통해 2026년도 예산안을 최종 확정했다. 정부 총 R&D 예산은 2025년 29조 6000억 원보다 19.9%, 5조 9000억 원 늘어난 35조 5000억 원이다. 정부 총지출 대비 4.9%가량을 차지하는 액수다. 윤석열 정부의 R&D 삭감 파동으로 2024년..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충남의 마음을 듣다’ 참석한 이재명 대통령 ‘충남의 마음을 듣다’ 참석한 이재명 대통령

  • 2026학년도 수능 성적표 배부…지원 가능한 대학은? 2026학년도 수능 성적표 배부…지원 가능한 대학은?

  • ‘추울 땐 족욕이 딱’ ‘추울 땐 족욕이 딱’

  • 12·3 비상계엄 1년…‘내란세력들을 외환죄로 처벌하라’ 12·3 비상계엄 1년…‘내란세력들을 외환죄로 처벌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