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허초희 그림 <앙간비금도(仰看飛禽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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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허초희 그림 <앙간비금도(仰看飛禽島)>

양동길/시인, 수필가

  • 승인 2024-08-09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사람 사는 사회는 모순투성이다. 더구나 과거를 지금 시각으로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비일비재하다.

문학적 자질이 뛰어난 소녀가 있었다. 가히 문장가문이라 할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8세에 「광한전백옥루상량문(廣寒殿白玉樓上梁文)」을 지어 신동으로 불렸다. 선계에 있는 광한전 백옥루 상량식에 초대되었다고 상상한다. 신선의 생활모습, 광한전 짓는 배경도 살펴본다. 신선과 기술자가 동원되었지만 상량문 지을 시인이 없어, 본인이 상량문 작가로 초대되었다고 쓴다. 광한전이 오래오래 서 있길 기원하는 것으로 끝맺는, 그가 남긴 유일한 산문이기도 하다. 신선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되었겠지만, 놀라운 상상력 아닌가? 신동으로 소문나, 정조대왕도 상량문을 읽고 감탄했다 전한다. 자라면서 허균(許筠)의 스승인 이달(李達)에게 한시 수업도 받는다.



난설헌(蘭雪軒) 허초희(許楚姬, 1563 ~ 1589, 시인) 이야기다. '난설헌'은 눈 속에 자라는 난이 있는 집이다. 덕이 고결한 군자의 성품, 눈과 같이 밝고 깨끗한 모습으로 고아하게 살겠다는 다짐이었으리라.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세상사 아니던가.

15세 무렵, 부모가 정해준 배필 김성립(金誠立)과 혼인했으나 부부생활이 원만치 않았다. 급제한 남편이 관직에 나간 뒤, 기방 풍류 즐기기에 여념이 없고, 집안에선 고부간 갈등으로 참담하기 이를 데 없었다. 핍박 속에 고독한 삶을 살아간다. 설상가상 귀하게 얻은 남매와 뱃속 아기까지 잃는다. 친정은 옥사에 시달리고 동생 균마저 귀양 가는 우환의 연속이다. <이이화의 인물한국사>에 의하면, 남편의 방탕과 친정의 풍파, 집안의 우환으로 시달릴 때 삼한(三限)을 읊는다. 첫째는 조선에서 태어난 것이요, 둘째는 여성으로 태어난 것이요, 셋째는 남편과 금슬이 좋지 못한 것이라 한다. 시재를 널리 뽐내기에 나라가 좁고, 여성으로 태어나 남성처럼 마음껏 노래하지 못하고, 남편이 더욱 방탕으로 빠져들고 있음을 한탄 한 것이다.



얼마나 가슴이 저렸을까? 벗어나고 싶었으랴. 그럴 때마다 시로 달래, 많은 시를 썼다. 임종 때 유언에 따라 대부분 소각되어, 『난설헌집』에 수록된 시는 210수에 불과하고, 다른 문집에 몇 수가 더 전한다. 그 가운데 128수가 신선계로 가고 싶다 노래한 시라 한다. 떠나고 싶은 마음의 반영이겠지만, 도교가 가학(家學)일 만큼 조예가 깊었던 친정의 내력도 일조한 것으로 보인다. 위작, 모작 등 시비가 되는 작품도 다수 있으나, 재창작에 의미를 둔다. 규방의 원망, 혈육의 정이 주된 소재, 주제가 된다.

26년, 너무도 짧은 생애이다. 이런 영재를 잃는 것은 국가적 손실이기도 하다. 곁에서 보는 사람 또한 얼마나 안타까웠으랴. 아우 허균은 집안 구석구석, 친정에 남아있던 시를 모아 필사하여 후세에 전한다. 중국 사신인 주지번(朱之蕃)에도 전한다. 사후엔 중국, 일본에서도 시집이 출판된 국제적 작가이다.

양간ㄴ비금도
허초희 작, '앙간비금도'
위대한 예술가의 뒷모습엔 갖은 어려움과 고통이 함께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조직의 이념이나 체제도 그에 소속된 사람의 의식이나 행태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 신분차별, 성차별, 가난과 학대 등 외부 요인이다. 아예 작가의 탄생 자체를 막는 경우도 있다. 여성의 활동 자체가 제한적이었던 조선시대, 계생, 김호연재, 신사임당, 옥봉 이씨, 허난설헌, 황진이 등의 여류 작가가 탄생했다고 하는 것은 기적 같은 일이다. 전하는 작품은 많지 않다. 그런 열악한 가운데서도 신사임당(申師任堂, 1504 ~ 1551) 그림이나 허난설헌의 시는 단연 돋보인다. 두 사람 다 시서화 삼절이며, 강릉 출신, 글을 배웠다는 공통점도 있다. 비슷한 환경에서 성장하고 생활했다. 그럼에도 두어 세대차밖에 없는 두 사람의 삶은 너무도 대조적이다. 신사임당은 백수 남편을 교육시켜 벼슬길에 오르게 하는 등 적극적인 내조와 올곧은 자녀 교육으로도 유명하다. 무엇이 그런 차이를 만들어냈을까? 오늘의 화두로 삼아본다.

그림은 허초희의 <앙간비금도(仰看飛禽島)> 이다. 날아가는 새를 우러러 바라보는 그림이다. 불과 수십 년 전에도 이런 풍광은 우리 주변에 흔했다. 여유롭고 평화로운 퍽 낯익은 풍경이다. 옆에 "한가로울 때는 옛사람의 책을 보라(閒見古人書 蘭雪軒)"고 썼다. 고품격으로 자아를 가다듬고, 자유로이 나는 새가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양동길/시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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