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그때 너를 만나지 않았다면

  • 오피니언
  • 편집국에서

[편집국에서]그때 너를 만나지 않았다면

임병안 사회과학부 차장

  • 승인 2024-11-10 16:43
  • 신문게재 2024-11-11 18면
  • 임병안 기자임병안 기자
임병안 사진
임병안 기자
2022년 여름이었습니다. 그때도 주말에 아이들과 갑천습지를 걷고 있었죠. 반딧불이 서식처라고 팻말이 있는 오솔길의 한 나뭇가지에 새가 앉아 있었습니다. 마침 해가 지는 때여서, 산책로는 어둠이 진작에 내려앉았는데 새가 앉은 높이의 나뭇가지는 여전히 붉은 노을빛이 비추고 있었죠. 저는 그의 형체만 볼 수 있었지만, 그가 새끼를 키울 정도의 성체이고 이곳에서 오랫동안 지낸 터줏대감 같은 존재라고 단번에 눈치챘습니다. 아이들을 조용히 시키고 조심히 걸음을 뗄 때도, 제가 사진을 찍느라 몸짓이 커질 때도, 그는 두 발로 짚은 나뭇가지에서 조금도 움직임이지 않았는데 이곳을 잘 알고 이미 장악하고 있음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는 수리부엉이였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노을에 비쳐 형체만 보이는 중에 치솟은 눈썹만 분별됐거든요. 어쨌든 그를 만난 뒤 갑천습지에 큰 호기심을 가졌습니다. 수리부엉이가 이곳에 둥지를 틀고 대를 이어 살아왔다면, 그 생태계는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풍요롭겠다고 생각됐거든요. 또 이곳에서도 그가 살 수 없게 된다면 번식처를 어디로 옮길 곳은 있을지 걱정됐고요.

그 후부터 틈이 나는 대로 갑천습지와 도솔산, 월평공원을 걸으며 어떤 생명이 사는지 수풀과 물속을 탐사했습니다. 내가 습지에서 발견한 것으로 '갑천은 살아 있다'라고 외치고 싶었습니다. 2023년 사계절 동안, 밤에만 활동하는 오소리, 익모초 꽃을 유독 좋아하는 호랑나비, 긴 부리를 지닌 후투티, 납자루, 대칭이, 방울길잠자리까지 귀한 존재였습니다. 기사를 연재하는 중 마지막 취재 날 끝으로 찾은 습지에서 전에 보고된 적 없는 천연기념물 큰소쩍새를 만나 렌즈에 담을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고밖에 설명되지 않았습니다. 이후 갑천습지를 잊고 보문산에서 일제강점기 전쟁 목적의 동굴을 찾는 일에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대전시민들이 찾는 등산로에 일제의 전쟁유적이 곳곳에 있음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는데, 최근에 다시 갑천습지와 월평공원, 도솔산으로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폐광을 발견했는데 이게 일제 때 금을 수탈한 광산이었다는 게 규명되었거든요.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보문산 방공호와 일제 폐 금광을 찾은 것도 사실은 갑천습지 탐사 때 동굴을 우연히 발견해 보도한 데에서 시작됐거든요. 그래서 제가 취재한 일련의 일들이 내가 발견하고 찾은 게 맞을까 의문이 들고 있습니다. 내가 노력해서 찾은 게 아니라, 그때 산책로에서 마주했던 그가 보여주려고 했기 때문에 내가 발견할 수 있었던 것 같거든요. 그가 나를 갑천습지로 초대한 게 맞다면 진짜 이유는 내게 아직 말하거나 보여주지 않은 것 같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더 수풀을 헤맬 요량입니다. 그가 나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 알 수 있도록요.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도마 퀸’ 여서정, 금빛 질주 이어간다.
  2. 부산 영도 아이들이 고른 53곳, 한 장의 지도로
  3. 대전시 트램 공사에 버스전용차로 축소 대책마련 시급
  4. 국군의날 기념행사를 '국민과 함께' 원년되나
  5. 서산해미읍성, 600년 시간의 문 활짝, "서산의 맛과 사람들 한자리에"
  1. 제8대 세종경찰청장에 김보준 안보수사심의관 임명... 경찰청 경무관 인사 단행
  2. 대전 옛 대덕경찰서에 ‘육군 AX 거점’ 10월 문 연다
  3. 전기연 원장에 강상희교수·원자력연 원장에 정우식 교수 선임
  4. 예산장터 삼국축제 10주년…'린' 소주 20만 병에 축제 홍보
  5. 상용화 문턱에서 좌절 '자기부상열차' 역사속으로

헤드라인 뉴스


[르포] "이게 선사시대 움집?"…둔산선사유적지 곳곳 `허술한 보존`

[르포] "이게 선사시대 움집?"…둔산선사유적지 곳곳 '허술한 보존'

29일 대전 서구 월평동 도심 한복판에 자리한 둔산선사유적지. 따스한 가을 햇살 아래 시민들은 산책을 하거나 벤치에 앉아 책을 읽으며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겉으로 보면 여느 도심 공원과 크게 다르지 않은 풍경이다. 하지만 유적지를 들여다보니 곳곳에서 어색한 장면이 눈에 띄었다. 입구에서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청동기시대 집터를 재현한 움집 세 채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자 선사시대 움집 재현은 다소 실망스러운 모습이었다. 움집 외벽은 짚이나 갈대로 덮여 있었지만, 지붕에는 인조 볏짚 형태의 합성소재가 덧씌워져 있었고 군데군데 파란..

초고령화로 농협 조합원 10명 중 8명은 60세 이상… `기반 흔들`
초고령화로 농협 조합원 10명 중 8명은 60세 이상… '기반 흔들'

초고령화에 따라 농업협동조합 조합원 10명 중 8명은 60대 이상으로 나타났다. 신규 가입 조합원 역시 40대 미만은 7%대에 불과해 농협의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국민의힘 강승규 의원(충남 홍성·예산)이 농협중앙회의 조합원 현황을 분석해 30일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2026년 8월 기준 농협 조합원은 모두 202만 8464명으로 집계됐다. 2021년 208만 7359명에서 2022년 207만 6055명, 2023년 206만 3765명, 2024년 204만 6229명, 2025년 202만 7481명으..

공주시 제72회 백제문화제 10월 3일 개막... 웅진백제 역사·예술의 진수를 만난다
공주시 제72회 백제문화제 10월 3일 개막... 웅진백제 역사·예술의 진수를 만난다

제72회 백제문화제가 오는 10월 3일 개막하는 가운데 웅진백제의 역사와 예술을 결합한 대표 프로그램들이 관람객을 맞는다. 30일 공주시에 따르면 올해 백제문화제는 웅진백제의 핵심 유물인 '청동거울'과 무령왕비 서거 1,500주년의 역사적 의미를 담은 공연과 퍼레이드 등을 선보인다. 대표 공연인 '웅진판타지아'는 10월 4~5일과 7~10일 오후 9시 금강신관공원 주무대에서 모두 6차례 열린다. '청동거울에 비친, 찬란한 백제'를 주제로 대형 LED와 특수효과를 활용한 무대에 전문 무용수 등 40여 명이 출연한다. 공연은 잠들어 있..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금빛으로 빛난 대전의 영웅들 금빛으로 빛난 대전의 영웅들

  • ‘나이는 숫자일 뿐’ ‘나이는 숫자일 뿐’

  • ‘개점휴업 언제까지’…구민들 의회 정상화 촉구 ‘개점휴업 언제까지’…구민들 의회 정상화 촉구

  • 10월부터 안전모 미착용 집중단속…벌점 10점도 부과 10월부터 안전모 미착용 집중단속…벌점 10점도 부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