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人 칼럼] 질티고개

  • 오피니언
  • 문화人 칼럼

[문화人 칼럼] 질티고개

백남우 대전향토문화연구회장

  • 승인 2024-12-04 16:42
  • 신문게재 2024-12-05 19면
  • 김지윤 기자김지윤 기자
2024100901000474300020091
백남우 대전향토문화연구회장
대전시 동구 가양동 더퍼리와 주산동 줄미를 잇는 옛 고개를 질티고개라 한다. 질티고개는 고개가 유난히 길다고 하여 '길치'또는 '질티'라 불리어졌다. 이 고개는 신작로가 나기 전까지는 비래동의 댕이에서 비름들로 가거나, 더퍼리에서 가래울이나 줄뫼로 가는 고개였다. 지금은 인적이 끊기어 산을 찾는 일부 등산객들의 등산로로 알고 있지만 신작로가 나기 이전에는 많은 이들이 대전으로 오가던 꽤 유명한 고개였다. 지금은 우암사적공원에서 바탕골 약수터를 향하는 고개 초입에 돌무더기뿐인 성황당이 옛 영화의 흔적으로 남아 있어 이곳에 옛길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 길은 초등학교 시절 수없이 오갔던 소풍 가는 길이었고, 어떤 이들은 이 고개를 넘어 대전으로 통학하던 길이었다. 또한 대전 장 보러 봇짐을 지고 힘들게 오가던 이들의 삶의 터전인 고갯길이기도 했다. 이 고개를 오갔던 수많은 이들의 사연은 세월 속 잡초에 묻혀버린 옛길처럼 각자의 기억 속에만 남아 있는 추억 속의 길이 되었다.

고개는 산으로 가로막힌 두 지역을 잇는 길이다. 대부분의 고갯길은 산으로 가로막힌 두 지역을 빠르게 지나가기 위해 산의 능선에 있는 낮은 고도를 통과하게 된다. 토목 기술이 열악했던 전근대와는 달리 현재는 산을 깎아내리거나 터널을 뚫고 차도나 철도 등을 설치해 통행을 더 빠르고 편리하게 만든다. 이 고개 아래로 경부고속도로의 터널이 뚫리고 나서 옛길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기고 약수터나 일부 등산객들만 찾는 소로길로 변했다. 이러한 고개는 통행을 통제하기 쉬운 위치에 있어서 고개는 군사적, 행정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예로부터 고갯길에 설치된 군사 거점은 통행자를 검문하거나 외적의 침입을 방어하는 관문으로 이용되었으며, 이러한 관문들은 자연스럽게 행정구역을 나누는 경계가 되었다. 이 고개의 마루에는 질현성이라는 고대 산성이 있어서 이를 입증하고 있다.

유년 시절 가을소풍을 질티고개 성터로 갈 때 더퍼리 초입에 오방색 천이 걸린 당목이 있는 돌무더기 성황당을 지났다. 길을 따라 한참을 오르면 길가 풀밭에는 하늘색 잔대꽃이 널려 있었다. 질티고개 위에는 돌무더기뿐인 오래된 산성이 있었다. 성터 곳곳에 널려 있는 기와 편이나 토기 조각을 주워 들고 오던 하산길, 고개 길가에 빨갛게 익은 보리똥열매가 너무나도 고와 보였었다. 고향을 떠나 먼 여행 끝 귀향길에 박정자를 지나 삽재마루에 올라서 대전시가 일부 보이면, 이제 고향에 도착했다는 안도감이 드는 것도 고개를 기점으로 펼쳐졌다. 고개는 우리 삶의 여정에서 마주하는 작은 고비이자 넘어야 할 산이다. 고개는 단순한 지형적 의미를 넘어 우리 역사와 문화 속에 깊이 스며들어 있다. 고개를 넘나들며 맺은 추억과 고개가 배경이 된 역사적 사건들, 고개를 소재로 한 전설 등 고개는 단순한 지형이 아니라 인생의 고난과 극복 성취와 기쁨을 상징하는 철학적 의미도 지니고 있다. 이렇듯 고개를 넘으면 우리가 기다리던 목적지와 새로운 미지의 세상이 펼쳐지기도 한다. 2024년 갑진년 한해는 우리에게 무더웠던 여름과 함께 많은 어려움 들이 있었던 해였다. 역사의 질곡 속에 유난히 길게 느껴졌던 올 한 해도 서서히 저물어 간다. 올해의 마지막 고개를 넘으면서 우리를 옥죄던 모든 질곡에서 벗어나 새해에는 우리가 바라던 새로운 꿈과 희망의 세상이 펼쳐지길 기대해 본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호남에 반도체 짓는데 송전선로는 충남으로?… 지역 주민 반발 확산
  2. 충남대-국립공주대 통합안 최종 부결
  3. 알테오젠, 유성 둔곡 생산라인 통해 의약품생산 자립 추진
  4. [독자제보] 공공기관은 지역에 있는데 체육시설은 ‘문턱’… "시민 개방기준 필요해"
  5. 명절 앞두고 전통시장·백화점서 연달아 화재…화재 예방 ‘각별한 주의’
  1. [2026 행복한 대전교육 프로젝트] 함께 만드는 ‘미디어 교육’ 으로 미래 역량을 키우다
  2. 미래대응기금에 지방재정 '비상'… 교부세 감소 우려 확산
  3. 대전보건대 “정체성 지키고 방법은 혁신”… 새로운 50년 미래비전 선포
  4. 세종교육청 "글로벌진로탐험대 보완 통해 차질 없이 추진"
  5. 우주서 25㎝ 해상도 지구관측 광학위성… 대전 우리별1호 잇는 '스페이스아이T'

헤드라인 뉴스


충남대-국립공주대 통합안 찬반투표 최종 부결

충남대-국립공주대 통합안 찬반투표 최종 부결

충남대학교와 국립공주대학교의 통합안이 구성원 찬반투표에서 최종 부결됐다. 공주대에서는 교원과 직원·조교, 학생 등 모든 직군에서 찬성 의견이 우세했지만, 충남대에서는 학부생과 직원들의 반대가 크게 나타나면서 통합안이 부결됐다. 양 대학은 지난 8일부터 10일까지 사흘간 교원과 직원·조교, 학생 등을 대상으로 온라인 찬반투표를 진행했다. 충남대는 투표 대상자 2만4346명 가운데 1만8426명이 참여해 75.68%의 투표율을 기록했다. 직군별로는 교원의 경우 924명 가운데 591명(63.96%)이 찬성했고 333명(36.04%)이..

미래대응기금에 지방재정 `비상`… 교부세 감소 우려 확산
미래대응기금에 지방재정 '비상'… 교부세 감소 우려 확산

이재명 정부가 내년 162조 원 규모의 미래대응기금을 신설하는 과정에서 지방재정에 적신호가 들어왔다. 기금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내국세에서 일정액을 먼저 떼어낸 뒤 지방교부세를 산정하는 방식이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방으로 내려가는 자주 재원이 크게 줄어들 수 있어 충청권 등 전국 시도는 재정 자율성 훼손을 걱정하며 공동 대응에 나설 움직임이다. 10일 중도일보 취재결과, 지난달 정부는 반도체 추가 세수 등에 따른 재원으로 내년 162조 3000억 원 규모의 미래대응기금을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미래대응기금을 통해 청년과 국가 성..

충청권 LH임대주택 9892호… 6개월 이상 `빈집`
충청권 LH임대주택 9892호… 6개월 이상 '빈집'

충청권 LH 건설임대주택의 6개월 이상 장기 공실이 9892호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충남과 세종은 공가율이 각각 10.4%, 12.2%로 전국 평균을 크게 웃돌았다. 10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장종태 의원(더불어민주당·대전 서구갑)이 한국토지주택공사(LH)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7월 말 기준 전국 LH 건설임대주택 97만 7240호 중 3만 8493호가 6개월 이상 공가 상태인 것으로 집계됐다. 공가율은 3.9%다. 충청권에선 충남의 장기 공가 물량이 가장 많았다. 충남은 LH 건설임대주택 5만 2294호 가..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추석맞이 대청소…‘거리를 깨끗하게’ 추석맞이 대청소…‘거리를 깨끗하게’

  • 쌀쌀해진 날씨에 긴팔 등장 쌀쌀해진 날씨에 긴팔 등장

  • 인플루엔자 국가예방접종 안내문 부착 인플루엔자 국가예방접종 안내문 부착

  • 코레일, 철도 중심 지역관광 활성화 워크숍 개최 코레일, 철도 중심 지역관광 활성화 워크숍 개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