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광장] 염라대왕을 만나거든…

  • 오피니언
  • 목요광장

[목요광장] 염라대왕을 만나거든…

  • 승인 2024-12-18 17:14
  • 신문게재 2024-12-19 18면
  • 심효준 기자심효준 기자
유동하 충남경찰청 안보수사과장
유동하 논산경찰서장
논산에는 구전되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사람이 저승에 가면 반드시 염라대왕을 만난다. 대왕은 망자에게 이승에서의 죄를 묻기 전에 "개태사의 쇠솥, 관촉사의 은진미륵 그리고 강경의 미내다리를 보았느냐?"고 물어본다. 만약 모두 보았다고 답하면 지옥에서의 형량을 반으로 깎아준다고 한다. 지옥에서의 하루는 인간세계의 수십, 수백 년에 해당한다고 한다.

불교의 계율을 하나 어길 때마다 10년의 형이 과해지고 저승에서 하루가 10년이라고 가정해 보자. 하나의 계율을 위반하면 이승에서의 3만 년이 넘는 형을 살게 된다. 그중 반을 깎아준다니 빨리 가봐야 하지 않겠는가?



논산에 부임하고 두 달 남짓 되었을 때 관촉사에 방문해 혜광스님에게 인사드렸다. 스님에게 졸랐더니 '관촉사사적기'라는 책을 주셨다. 차한잔 보시 받은 후 가람내 은진미륵을 보게 되었다. 불현듯 의문이 들어 여쭈었다. "주지스님, 은진미륵의 좌측 볼에 검버섯 같은게 있는데 왜 그런가요?". 그러자 담담한 답변이 날아왔다. "나라가 어려우면 은진미륵이 땀을 흘린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나라가 평온해지면 다시 은진미륵의 피부가 하얗게 돌아온다"는 설명도 해주셨다.

관사로 돌아와 스님이 주신 책을 펼쳐보았다. 관촉사는 967년 고려 광종때 혜명스님이 착공하여, 1006년 목종 때 완공하였다. 무려 39년이나 소요되었다. 은진미륵이 땀을 흘린 기록은 여러 곳에서 나온다.



고려말 우왕 8년 1382년에는 관촉사에서는 용화회가 개최되었고, 목은 이색이 석조미륵보살입상을 두고 시를 지었다. 그중 마음에 와닿는 구절이 몇 군데 있다. '아출아출용종지(我出我出湧從地). 내 내간다 내 나간다며 땅속에서 솟았다네. 시시유한경군신(時時流汗警君臣). 때로는 땀 흘려 군신을 경계도 시키는데.'

조선 영조 19년 1743년에는 관촉사사적비를 세우는데 내용 중 은진미륵의 땀 이야기가 또 나온다. '국가가 태평하면 온몸이 빛나고 윤택하며 상서로운 기운이 서리고, 재앙과 난리가 있으면 온몸에서 땀을 흘리고 손에 쥔 꽃에 색이 없어지는데, 조정에서 관리를 파견하여 축문을 올려 재앙을 없애고 나라와 백성이 편안하기를 도모했다'는 기록이 있었다.

개태사(開泰寺)는 고려 왕건이 후삼국 통일의 마지막 전장이었던 황산벌에서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왕실의 절을 짓게 하였다. 개태는 태평함을 연다는 뜻이고, 그 뒷산 천호산은 하늘이 보호하여 전쟁에서 승리를 가져다 준 곳이라는 뜻이다. 그곳의 쇠솥은 크기로 보아 수백 명이 먹을 수 있는 국을 끓이는 용기였을 것이다.

그 유명한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은 고려 고종의 명을 받아 개태사의 주지인 수기(守其) 스님이 제작한 것이었다. 그는 고려대장경의 교정작업을 총괄하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의 불심과 불력은 누구도 넘보지 못할 수준이었던 것이었다.

미내교(渼奈橋)는 조선 영조 7년인 1731년에 민간인들이 지은 다리이다. 미내다리는 화강암으로 건립된 3개의 아치형 돌다리이다. 한양과 호남의 요로에 위치하였던 돌다리로 당시 토목기술의 극치를 보여준다.

염라대왕의 전설이 논산지역에 왜 생겼을까 생각해보면 은진과 연산 그리고 강경의 자랑거리를 으시대고 싶어서 이야기를 만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자 이제 미리미리 염라대왕을 만날 일을 대비해 두자. 주말에 연산의 개태사, 은진의 관촉사, 강경 미내다리를 보러 가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인증사진을 찍어 SNS에 미리미리 올려두자. 갑자기 대왕이 '봤다는 것을 증명하라' 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올해가 가기 전 은진미륵전에 축문을 올려야겠다.

/유동하 논산경찰서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교육공무직 파업에 공립유치원 현장도 업무공백 어려움
  2. 인도 위 위협받는 보행자… 충남 보행자 안전대책 '미흡'
  3. [인터뷰]"지역사회 상처 보듬은 대전성모병원, 건강한 영향력을 온누리에"
  4. [춘하추동]한 해를 보내며
  5. 충남경제진흥원, 부패방지경영시스템 인증 획득
  1. '족보, 세계유산으로서의 첫 걸음'
  2. 충남교육청 2025 학교체육 활성화 유공자 시상식 개최
  3. 충남도 '2025 대한민국 지방재정대상' 국무총리상 수상
  4. 충남도, 도비도·난지도 개발 위한 행정 지원체계 본격 가동
  5. 고속도로서 택시기사 폭행 KAIST교수, 항소심서 벌금형

헤드라인 뉴스


李대통령 대전충남 與의원 19일 만난다…통합 로드맵 나오나

李대통령 대전충남 與의원 19일 만난다…통합 로드맵 나오나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대전 충남 의원들이 18일 전격 회동, 두 시도 통합을 위한 로드맵이 나올지 관심이 쏠린다. 이 대통령이 직접 나서면서 국가균형발전과 수도권 일극체제 극복을 위한 맞춤형 처방전으로 대전 충남 통합을 애드벌룬 띄우는 것이다. 그동안 국민의힘 주도로 이 사안을 주도해 왔다면 이제는 정부 여당 까지 논의가 확장하는 것인 내년 지방선거 전 통합을 위한 초당적 합의가 이뤄질 지 주목된다. 17일 여권 관계자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18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더불어민주당 대전·충남 국회의원들과 오찬 회동을 갖는다...

대전에 고성능 AI GPU 거점센터 구축... 글로벌 AX 혁신도시 거듭
대전에 고성능 AI GPU 거점센터 구축... 글로벌 AX 혁신도시 거듭

대전이 고성능 AI GPU 거점센터 구축을 통해 '글로벌 AX(인공지능 전환) 혁신도시'로 거듭난다. 대전시와 한남대,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TTA), ㈜KT, 비케이비에너지(주), ㈜엠아르오디펜스는 17일 '한남대 AX 클러스터 및 고성능 AI GPU 거점센터' 구축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번 협약은 전 세계적으로 AI 기술 경쟁이 격화됨에 따라 GPU 거점센터 구축을 통해 연구기관과 AI 전문기업을 지원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거점센터는 한남대 캠퍼스 부지 7457㎡ 규모에 2028년까지 건립될 예정이다. 이날 협약식에..

④ 대전 웹툰 클러스터 `왜 지금, 왜 대전인가?`
④ 대전 웹툰 클러스터 '왜 지금, 왜 대전인가?'

대전시는 오랜 기간 문화 인프라의 절대적 부족과 국립 시설 공백 속에서 '문화의 변방'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민선 8기 이장우 호(號)는 이 격차를 메우기 위해 대형 시설과 클러스터 조성 등 다양한 확충 사업을 펼쳤지만, 대부분은 장기 과제로 남아 있다. 이 때문에 민선 8기 종착점을 6개월 앞두고 문화분야 현안 사업의 점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대전시가 내세운 '일류 문화도시' 목표를 실질적으로 이루기 위해서는 단순한 인프라 확충보다는 향후 운영 구조와 사업화 방안을 어떻게 마련할는지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중도일..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성금으로 잇는 희망…유성구 주민들 ‘순회모금’ 동참 성금으로 잇는 희망…유성구 주민들 ‘순회모금’ 동참

  • 시니어 모델들의 우아한 워킹 시니어 모델들의 우아한 워킹

  • 딸기의 계절 딸기의 계절

  • 보관시한 끝난 문서 파쇄 보관시한 끝난 문서 파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