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난순의 식탐] 엄동설한 굴물회, 하루키도 먹어봤을까?

  • 오피니언
  • 우난순의 식탐

[우난순의 식탐] 엄동설한 굴물회, 하루키도 먹어봤을까?

  • 승인 2025-01-15 17:43
  • 수정 2025-01-16 08:54
  • 신문게재 2025-01-16 18면
  • 우난순 기자우난순 기자
KakaoTalk_20250115_104045050
청양과 대전은 위치상 닮은 구석이 있다. 각각 충남과 남한의 중간쯤에 자리잡고 있다. 대전은 대중교통을 이용해도 통영, 목포, 강릉 등 얼마든지 당일치기가 가능하다. 서울에서 부산, 통영, 목포라. 생각만 해도 아득하다. 청양도 충남권 어디든 부담없이 다니며 맛있는 음식을 찾아 먹을 수 있다. 겨울은 뭐가 별미일까. 물메기탕도 있지만 단연 굴이 으뜸이다. 정력에 좋다는 굴을 사랑한 카사노바는 유명하지만 다작으로 유명한 발자크도 하루에 굴을 100개나 먹어치웠다고 한다. 그리고 아버지가 좋아했던 굴. 우리 식구는 보령 천북 굴단지를 찾았다.

보령 사는 언니 후배가 알려줬다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굴물회와 굴밥을 시켰다. 그런데 멀찍이 우리와 마주한 식탁에 자리잡고 있는 사람이 낯이 익었다. 나는 언니 귀에 대고 소곤거렸다. "저 아저씨 이상벽 닮지 않았어?" 슬쩍슬쩍 훔쳐보던 중 말소리가 들렸다. 딱 그 양반이었다. 방송에선 싱글벙글 웃음 가득한 표정인데 실제론 무표정해서 생소했다. 나는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일어났다. 굴무침과 굴밥을 먹는 그들 근처에서 볼일 있는 것처럼 어슬렁거렸다. 아는 척하면 반겨줄까? 어머, 이상벽 선생님 아니세요? 어쩌고저쩌고.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돌아와 미리 나온 반찬만 지벙지벙 했다. 순간 이상벽 씨 가족 옆 식탁에서 가스 불이 활활 타고 있는 게 보였다. 빈 무쇠 팬이 불에 달궈져 연기가 나기 시작했다. "부, 부, 불이다! 저기요…." 내가 큰소리로 말하자 언니가 내 팔을 툭 치며 지청구를 줬다. "손님들 놀래라고." 언니는 조용히 팔을 들고 주인에게 사인을 보냈다.

드디어 굴물회가 나왔다. 시뻘건 국물에 채썬 사과, 오이, 당근과 굴이 어우러져 먹음직스러웠다. 한 수저 푹 떠서 먹자마자 입안이 얼얼했다. 이가 시려울 정도로 차가웠다. 물회는 내가 먹자고 우긴 건데. 예전에 엄마, 아버지와 맛있게 먹었던 굴물회를 꼭 먹고 싶었다. 지나간 시절의 추억을 소환하고 싶었던 게다. 나는 슬슬 눈치를 보며 탱글한 굴만 건져먹었다. 언니, 오빠도 아무 말 없이 먹기만 했다. 미식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생굴 위에 위스키를 뿌려 호로록 먹은 뒤 굴즙까지 마셨을 때의 행복을 만끽했는데. 소주라도 부어 먹을 것 그랬나? 물회를 간신히 먹고 뜨뜻한 굴밥으로 언 위장을 녹였다. 나는 옆 테이블의 두툼한 굴파전을 보면서 입맛을 다셨다.

우리가 먹고 나올 때까지 이상벽씨 일행은 얘기꽃이 한창이었다. 보령해저터널을 지나 안면도로 향했다. 바다냄새를 맡고 싶어 꽃지해수욕장까지 갔다. 서해바다에서 부는 비릿한 바람을 폐부 깊숙이 마셨다. 할미 할아비 바위 아래 드문드문 사람들이 보였다. 나 혼자 신나게 백사장으로 내려가 할미 할아비 바위를 향해 걸었다. 칼바람이 뺨을 후려쳤다. 물이 빠진 갯벌에 박힌 바위에 따개비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온통 조개 껍데기 투성이라 걸을 때마다 버석거렸다. 한 할머니가 옹송그리고 앉아 깐 굴 한 바가지를 앞에 놓고 팔고 있었다. 1만 5천원이란다. 할머니 얼굴이 얼어서 빨갰다. 삶의 최전선에서, 내란을 모의한 쫄보 윤석열을 지키겠다며 성조기까지 흔드는 노인들과 굴 한 바가지를 파는 할머니를 생각했다. 저 굴을 캐는데 얼마나 걸렸을까. 지갑을 꺼내 열어보니 3천원뿐. 다행히 부모와 함께 온 듯한 청년이 굴을 샀다. 주차장에 가보니 오빠가 배탈이 나서 화장실에 갔다고. 결국 사달이 난 모양이었다. 설마 노로 바이러스? 하늘이 금세 잿빛으로 변하면서 눈발이 날렸다. 차안에서 언니랑 오빠를 기다리는데 라디오에서 김세영의 '밤의 길목에서'가 흘러나왔다. 내 마음도 밤의 길모퉁이에 서 있는 것처럼 암담했다. 내가 미쳤지, 엄동설한에 물회라니. <지방부장>
우난순 수정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與野 행정수도특별법 합의처리로 "세종시 완성" 의지 증명해야
  2. 대전시, 시내버스 이용 에티켓 홍보 확대
  3. 대전서 연이틀 배터리 충전 화재… 전기 이동수단 이용 증가에 '안전주의보'
  4. [문화 톡]노금선 전 MBC 아나운서의 화려한 귀환
  5. 성광진·임전수·이병도·김성근 충청권 민주진보교육감 "초광역 협력 약속"
  1. 맹수석 대전교육감 예비후보 단일화 재논의 제안에 후보들 반응 '싸늘'
  2. [내방] 백동흠 대전경찰청장 등
  3. 'IBS 과학문화센터' 일상 속 과학을 만나는 공간으로 자리매김
  4. 안전지도 해도 사고 나면 무조건 교사 책임?…사라지는 학교 현장체험학습
  5. 대전보훈병원, 충남대 의과대학과 지역의료인재 양성 '함께 노력'

헤드라인 뉴스


"무색해진 여야 약속" 세종 행정수도법, 지방선거 전 통과 불발

"무색해진 여야 약속" 세종 행정수도법, 지방선거 전 통과 불발

세종 행정수도특별법(이하 행정수도법)이 우여곡절 끝에 국회의 첫 논의 테이블에 올랐지만 위헌 소지와 국민적 공감대를 이유로 제동이 걸렸다. 사실상 지방선거 전 제정이 불발되면서 '조속한 처리'를 강조했던 여야 지도부의 약속이 무색해졌다는 비판이 나온다. 22일 국회에 따르면 이날 열린 국토교통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는 행정수도 완성을 골자로 발의된 특별법 5건(황운하·강준현·김종민·김태년·엄태영·복기왕 등 대표 발의)에 대해 논의를 시작했지만 심사를 보류했다. 앞서 행정수도법은 지난달 30일과 이달 14일 소위에도 상정됐지만 65개..

대전 지방선거 광역 및 기초단체장 대진표 완성 전운
대전 지방선거 광역 및 기초단체장 대진표 완성 전운

6·3 지방선거를 40여 일 앞두고 대전 광역 및 기초 단체장 여야 대진표가 완성되면서 전운이 감돌고 있다. 현직 단체장들이 등판 예열을 마치고 본격 링에 오르는 가운데 곳곳에서 '리턴매치'가 성사되며 선거 열기가 빠르게 달아오르고 있다. 2018년 이후 8년 만에 대전에서 3선 구청장이 배출될는지도 촉각이다. 22일 지역 정치권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은 전날 동구청장 후보로 황인호 전 동구청장을, 서구청장 후보로 전문학 전 시의원을 확정했다. 이로써 대전시장과 5개 구청장을 포함한 지역 단체장 선거 구도가 모두 완성됐다. 대전시장..

중동전쟁 여파 나프타 68% 급등… 생산자물가 7개월 연속 상승
중동전쟁 여파 나프타 68% 급등… 생산자물가 7개월 연속 상승

중동전쟁 여파로 나프타 가격이 68% 급등하는 등 생산자물가가 7개월 연속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통상 생산자물가가 오르면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에 반영되는 만큼, 향후 물가 상방 압력이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22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6년 3월 생산자물가지수(잠정)'에 따르면, 지난달 생산자물가지수는 125.24(2020=100)로 전월 대비 1.6% 상승했다. 생산자물가는 2025년 9월 이후 7개월 연속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생산자물가지수가 이처럼 장기간 상승한 것은 환율과 유가가 급등했던 2022년 1~7월 이후..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에너지 절약 동참해주세요’ ‘에너지 절약 동참해주세요’

  • 자연 속 힐링 요가 자연 속 힐링 요가

  • 실전 같은 소방훈련 실전 같은 소방훈련

  • 도심 속 눈길 사로잡는 영산홍 도심 속 눈길 사로잡는 영산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