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김홍도 그림 <명경대(明鏡臺)>

  • 오피니언
  • 여론광장

[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김홍도 그림 <명경대(明鏡臺)>

양동길/시인, 수필가

  • 승인 2025-02-07 12:29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오래전 서울에 있는 행사장에 초대받아 가는데, 시간이 빠듯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건물 안으로 뛰어들었다. 쾅하는 소리와 함께 거세게 벽에 부딪혔다. 통로가 아닌 통유리 벽이었던 것이다. 누가 맨정신으로 벽을 향해 돌진하랴. 통유리 벽이 처음인데다 해거름이어서 구분하지 못했던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눈을 가린 조급함이란 마음이다. 이마에 상처가 났다. 강화유리라 벽은 깨지지 않았고, 그나마 코가 높지 않아 다행이었다. 화장실에 들어가 휴지로 누르고 있으니 지혈이 되어, 차질 없이 행사 마치고 돌아올 수 있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유리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유리는 비결정질로 유연성이 거의 없어 깨지기 쉽다. 너무 잘 깨지다 보니 깨지는 것의 상징으로 쓰일 정도다. 투명한 고체로 빛은 투과시키나, 수분과 공기는 투과시키지 않는다. 이런 특성 때문에 우리 생활 곳곳에 널리 활용된다. 한쪽 면에 은으로 도금 하면 거울이 된다. 사물을 비춰볼 수 있다. 물론 자신도 비춰 볼 수 있다.

유리거울 이전에는 석경, 은경, 동경, 백동경이 사용되었다. 유리같이 선명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때가 묻으면 잘 닦이지 않아. 잘 보이라고 매일 닦았다. 거울 닦듯, 마음 닦으라는 말은 수행자의 금언이다.

명경대는 불교에 등장하는 거울이다. 중생이 죽어 저승에 가면 생전업보를 심판 받는다 한다. 49일까지 칠일 단위와 백일 되는 날, 소상, 대상 때 시왕에게 차례로 선악업(善惡業)을 판단 받아 미래가 결정된다. 시왕의 5번째 왕이 염라대왕이다. 염라대왕전에 가면 명경대 앞에 서게 된다. 생전의 모든 행실이 나타난다. 아무리 재주가 좋아도 숨길 수 없다. 믿고 안 믿고는 뒤로하고 명경대에 주목하자. 자신 외에 무언가가 늘 지켜보고 있다.



업보는 세상 탓이 아니다. 스스로 지은 만큼 돌려받는 것이다. 물은 항상 낮은 곳으로 흘러 평평하기를 지향할 뿐, 그 외는 의도하는 바가 없다. 세상 또한 이와 같다. 받아들이거나 거부하는 것도 없다. 무엇인가가 절로 오가는 것이다. 물이 흐르면서 수 없이 변화하는 것은 물의 탓이 아니고 물길 때문이다. 거울에 수없는 형상이 비추이는 것 또한 거울 때문이 아니라 본연의 형상 때문이다.

금강산에 가면 명경대가 있다. 불행히 필자는 가보지 못했지만, 글, 그림, 노래 등에 수없이 등장한다. 명경대는 내금강지역 명승구역이다. 거울처럼 매끈한 적갈색 암벽이 맑은 물에 그림자 드리워 신비로운 경승을 이룬다. 암벽이 거울 같기도 하고, 물이 거울 같아 붙여진 이름이기도 하다. 주위의 울창한 수림, 우뚝우뚝 솟은 암봉, 계곡 경치, 전망풍광으로 유명하다.

<정선아리랑> 가사에 담았듯 금강산은 '일만이천봉 팔만구암자'로 불려, 아름다움이 으뜸일 뿐만 아니라, 불교 성지 같기도 하다. 금강이란 말 자체가 불교 용어 아닌가? 일설에 의하면, 불가에서는 사람에게 죄 짓지 않도록 경고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악업이 쌓이면 반드시 지옥으로, 선업을 쌓으면 극락에 간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염라대왕은 시위를 불러 조선의 금강산에 염라국에 있는 명경대와 똑같은 모양을 만들라 한다. 죽은 자 심판하는 모습도 만들어 인간에게 깨달음을 주도록 지시한다. 금강산의 가장 큰 절인 장안사를 세우고, 그 남쪽에 냇물을 만들었다. 냇물은 이승에서 저승으로 넘어가는 강이라 하여 황천강(黃泉江)이라 한다. 그 위쪽에 앞뒤 모양이 똑같은 거울모양의 큰 바위를 세웠으니, 그것이 명경대다. 높이 90m, 폭 30m라 한다. 죄업을 밝히는 거울이란 뜻에서 업경대(業鏡臺)라 부르기도 한다. 앞에는 황류담(黃流潭)이란 소가 있다. 염라대왕봉 옆에는 짐승에게도 죄를 짓지 말라는 뜻에서 소머리모양의 우두봉, 좌우로 죄인봉, 판관봉, 사자봉 등 명부에서 심판하는 광경을 그대로 옮겨 놓았다 한다.

명경대
그림은 김홍도의 <명경대>이다. 암봉이 늘어서 있고, 계곡 물가에 사람이 모여 앉거나 선채로 아름다움을 즐기고 있다. 선경 앞에선 누구나 마음이 맑고 깨끗해진다. 한 번의 체험으로도 죄업이 확연히 줄어들 것이다.

양동길/시인, 수필가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세계축제 정상회의 열린 '경주시'...홍보와 벤치마킹 열기 후끈
  2. 이산화탄소·메탄 온실가스 상승 적신호…지구온난화 벼랑 앞 '충청'
  3. [최재헌의 세상읽기]서산 가로림만, 세계인이 찾는 생태관광지로
  4. 교육발전특구 우수사례 포함 안된 대전… "지역 강점 살려야"
  5. [현장] 4·2 대전시의원 재보궐 '3인 3색' 첫 유세 가보니
  1. "대전 초등 돌봄교실 1층으로 옮겨야"… 대전교육청 "순차적 이동 배치"
  2. [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아름다운 문화, 허물을 바로잡는 것부터
  3. 임준모 대전충남지방병무청장, 병역지정업체 알피에스 방문
  4. 서남부 특수학교 건립사업 순조… 8월에 교육부 중투심 의뢰
  5. 박순선 대전시간호사회장 "간호법 하위법령 제정에 힘 모을 것"

헤드라인 뉴스


규제 묶인 서울 노른자땅… 큰손들 충청에 눈 돌리나

규제 묶인 서울 노른자땅… 큰손들 충청에 눈 돌리나

정부와 서울시가 강남 3구와 용산구 아파트를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하면서 충청권을 비롯한 지방 부동산 시장의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 당시 서울로 쏠렸던 이목이 지방으로 분산될 것이란 관측에서다. 충청권에서도 이러한 부동산 시장 변화에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정부와 서울시는 19일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 용산구 아파트 2200개 단지 40만 세대를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확대 지정하기로 했다.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 이후 강남 3구에서 시작된 집값 급등이 다른 지역으로 번져나가자 해제 구역을 재지정하는 데서 나아..

정강환 교수, 69년 벽 허물다...아시아 최초 `명예의 전당` 등재
정강환 교수, 69년 벽 허물다...아시아 최초 '명예의 전당' 등재

정강환(60) 배재대 관광축제한류대학원 원장이 2025년 3월 20일 아시아인 최초로 '명예의전당(Hall Of Fame)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세계축제협회 월드(IFEA WORLD : International festivals & events association world)가 1956년 10월 뉴욕시에서 축제 관리자 협회로 출발한 이후 69년 만의 일이고, 명예의전당 등재가 시작된 1992년 기준으론 33년 만의 쾌거다. 세계축제협회는 이날 오후 7시 30분경 경주 화백 컨벤션뷰로에서 열린 2025 아시아 축제도시 지정식과 아..

`이터널 리턴 마스터즈 시즌6 파이널` 21일 대전드림아레나서 개막
'이터널 리턴 마스터즈 시즌6 파이널' 21일 대전드림아레나서 개막

'이터널 리턴 마스터즈 시즌6 파이널'이 21일 대전드림아레나에서 화려한 막을 올린다. 22일까지 이틀 동안 진행되는 '이터널 리턴 마스터즈 시즌6 파이널'은 님블뉴런과 대전시, 대전정보문화산업진흥원이 공동으로 주최·주관하는 대규모 e스포츠 축제다. 이번 대회는 지난 1월 10일부터 3월 2일까지 진행된 마스터즈 시즌6 상위 10팀과 최종 예선전인 LCQ를 통과한 2팀이 참가한다. 특히, 이번 대회는 다양한 지역 연고 4팀이 참가해 전국적인 이목이 쏠린다. 세종 연고의 'FN SEJONG', 경남 연고의 'Gyeongnam Spar..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대전시의원 재·보궐선거 공식 선거운동 시작…표심잡기 총력전 대전시의원 재·보궐선거 공식 선거운동 시작…표심잡기 총력전

  • ‘물의 소중함 느껴요’ ‘물의 소중함 느껴요’

  • 4.2 재·보궐선거 대전시의원 ‘3파전’ 4.2 재·보궐선거 대전시의원 ‘3파전’

  • ‘한국문화 배우기 재미있어요’ ‘한국문화 배우기 재미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