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人 칼럼] 대전공설운동장

  • 오피니언
  • 문화人 칼럼

[문화人 칼럼] 대전공설운동장

백남우 대전향토문화연구회장

  • 승인 2025-03-12 16:49
  • 신문게재 2025-03-13 19면
  • 김지윤 기자김지윤 기자
2025020501000315600012451
백남우 회장.
1960년대 대전시 부사동에 있던 대전공설운동장에서는 대전 시내 모든 국민(초등)학교 학생들이 모여 학교 대항 체육대회를 열었다. 흙을 쌓아 올려 만든 운동장 언덕은 토끼풀과 같은 잡초 등이 무성했고, 관람석은 시멘트로 만들어진 형태의 운동장이었다. 당시는 도심의 학교와 변두리에 있는 학교의 생활 수준 차이가 너무나 컸다. 그래서 여러 학교가 모여 겨루기 하는 이런 행사 때는 변두리 학교 학생들이 주눅이 들기도 했었다. 중학교 시절 전국 소년 체육대회가 대전공설운동장에서 열린 적이 있었다. 대전시의 남·여 중학교 한 곳씩 선발되어 개막식 행사의 매스게임과 카드섹션에 동원되었다. 당시 개막식에 대통령이 참관한다고 하여 한낮 땡볕에 학생들이 쓰러져 가며 몇 달간 연습했던 기억도 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유신 정권하에서 '학도호국단 설치령'에 따라서 학교가 병영화되었다. 학생들은 등하교 시에 교련복이 교복이 될 정도로 착용하곤 했다. 대전시의 고등학교 학도호국단 학생들은 공설운동장에 모여 학교별 교련 경연대회를 열었다. 남학생들은 총검술과 열병 및 분열식을 했고, 여학생들은 구급법 등을 연막탄을 피워 실제 상황처럼 연출하면서 시연하였다. 관람석에서는 학교별 카드섹션과 응원이 벌어졌다. 행사는 학교별 시가지 행진으로 마무리되었다. 공설운동장은 그 당시는 힘들었으나, 지금 생각하면 이러한 시대를 거쳐온 세대들에게는 나름 기억에 남는 특별한 장소이기도 했다.

일제강점기 대전에 거류한 일본인들은 소제동에 근대식 야구장을 세웠다. 그 당시 지역의 어르신들은 소제 야구장을 '그라운드'라 불렀다. 해방 후 변변찮은 체육시설이 없던 시절에 이곳은 시민들의 체육행사나 크고 작은 여러 행사가 이루어지던 곳이기도 했다. 하지만, 도심에서는 경부선 철도 건너편에 있는 소제 야구장은 접근이 불편했다. 이를 대신해서 1959년 대전시민과 충남도민들이 십시일반 기금을 모아 흙을 쌓아 올려 임시로 부사동에 경기장을 만들었다. 당시에 이곳을 "대전공설운동장"이란 이름으로 불렀다. 1968년 4월 1일, 이곳에서 북한의 무장 공비 침투 사건과 미국의 푸에블로호 피랍 사건을 계기로 만들어진 전국 향토예비군 발단식이 열리기도 했다. 1979년, 전국체전 개최를 위해 건축가 김수근의 설계로 공설운동장의 리모델링이 진행되어, 그해 제60회 전국체전이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공설운동장은 1995년 대전의 향토적 특색을 부각하기 위해 시민 여론을 수렴하여 "한밭종합운동장"이라는 이름으로 거듭났다. 이곳은 육상과 축구 경기는 물론 선거 유세장, 투우경기장, 농악과 민속예술경연대회 등 여러 방면으로 활발히 활용되었다. 입주 시설로는 차량등록사업소, 소방서 119안전센터가 들어서 시민들의 편의를 도왔었다. 2019년에는 한화 이글스의 새 야구장을 건립할 대상지로 한밭종합운동장 주 경기장이 선정되면서 경기장의 철거가 확정되고, 2022년 3월 폐장하는 절차를 밟게 되었다.

지난 3월 5일 대전공설운동장 자리에는 '대전 한화생명 볼파크'가 한화이글스 홈구장과 시민들의 복합문화공간으로 새롭게 조성되어 화려한 개막식과 함께 문을 열었다. 홈 팬들과 시민들은 옛 구장을 떠나보내고 국내 최고 시설을 갖춘 새 야구장에 대한 기대감에 부풀어 있다. 그렇지만 대전을 삶의 터전으로 살아오며 켜켜이 쌓인 기억들이 스며 있는 추억의 장소가 사라지는 것은 조금은 서글픈 생각도 든다. 그곳에서 보고, 듣고, 경험하고 느낀 풍경과 기억의 공간이 송두리째 사라진다는 것은 나 자신의 정체성이 사라지는 듯하여 가슴이 시리다. 이러한 심정은 거대해지는 콘크리트 숲의 도시에서 적응하지 못한 나만의 열등감의 표시일까?

백남우 대전향토문화연구회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현장에서 만난 사람]강형기 (사)한국지방자치경영연구소 이사장
  2. 박찬우 천안시장 후보, 북면 오이 농가 방문...생생한 현장의 목소리 청취
  3. 임전수가 바꿀 2030년 세종교육… 현안 인식서 본다
  4. '아산 성웅 이순신 축제', '보는 축제' 에서 '머무는 축제'로
  5. 천안법원, 수백억원 가로챈 아쉬세븐 아산지사장 등 일당 징역형
  1. 충남교육청평생교육원, 문해교육 학습장 대상 현장체험학습 실시
  2. 아산시, 1회용품 줄이기 박차
  3. 아산시, 영인산 '산불진화임도 조성사업' 착공
  4. 아산시가족센터, '줍깅' 봉사활동
  5. 선문대, '지역주민과 함께하는 동행 순찰' 펼쳐

헤드라인 뉴스


금강벨트 시도지사 선거 범친명 vs 찐보수 대결 구도

금강벨트 시도지사 선거 범친명 vs 찐보수 대결 구도

6·3 지방선거 여야 최대격전지 금강벨트 광역단체장 선거 대진표가 완성단계에 있는 가운데 집권여당 범 친명(친이재명)계와 제1야당 강경 보수파 대결로 압축되고 있다. 이런 구도는 더불어민주당 국정안정 국민의힘 정권견제 이번 선거 프레임과도 일맥상통한다는 평가인데 충청 민심이 어느 쪽으로 기울지 주목된다. 정치권에 따르면 충청권 광역단체장 4개 선거 가운데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공천 작업이 마무리되지 않은 곳은 국힘 충북지사가 유일하다. 국힘 충북지사 후보는 1차 경선을 통과한 윤갑근 변호사와 현역 김영환 지사 간 맞대결로 결정된다..

정부 메가특구 구상에 과학도시 대전 기대감 커져
정부 메가특구 구상에 과학도시 대전 기대감 커져

정부가 국정과제 중 하나인 '메가특구' 구상을 밝히면서 과학도시 대전의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시·도 경계를 뛰어넘어 산업별로 특구를 재편해 재정과 금융, 세제, 인재 등 7개 분야에 대해 파격적인 패키지 지원을 한다는 방침이다. 대전시는 우주항공, 바이오헬스, 나노·반도체, 국방, 양자, 로봇·드론 등 6대 전략산업 분야에서 향후 큰 시너지를 낼 수 있다. 정부는 가칭 '메가특구특별법'을 국회와 협의를 통해 올해 안으로 제정하고, 법 제정 이후 메가특구 지정을 신속하게 추진할 예정이다. 15일 청와대에서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열린..

돌아온 늑구에 쏠린 관심… 기대와 우려 속 숙제는 가득
돌아온 늑구에 쏠린 관심… 기대와 우려 속 숙제는 가득

대전오월드에서 탈출했던 늑대 '늑구'가 9일 만에 생포되면서 무사 귀환에 대한 안도감과 함께, 이번 사태를 계기로 드러난 동물원 시설·운영 전반의 구조적 문제를 철저히 짚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동시에 커지고 있다. 전국적 관심을 모은 늑구가 향후 오월드의 새로운 상징으로 떠오를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오지만, 섣부른 재개장보다 사고 원인 규명과 재발 방지 대책이 먼저라는 지적 역시 적지 않다. 대전시와 수색 당국에 따르면 17일 늑구는 오전 0시 44분께 대전 중구 안영IC 인근에서 최종 포획됐다. 앞서 시민 제보를 토대로 인근 드론 수..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늑구’의 인기에 대전오월드 재개장에도 관심 ‘늑구’의 인기에 대전오월드 재개장에도 관심

  • 2026 대전사이언스페스티벌 성료…휴머노이드 로봇 ‘눈길’ 2026 대전사이언스페스티벌 성료…휴머노이드 로봇 ‘눈길’

  • 늑구 탈출 관련해 사과하는 정국영 대전도시공사 사장 늑구 탈출 관련해 사과하는 정국영 대전도시공사 사장

  • 열흘 만에 돌아온 ‘늑구’ 브리핑 열흘 만에 돌아온 ‘늑구’ 브리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