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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현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책임연구원 |
최근 아파트 단지 내 놀이터에서 어린이를 보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아이들을 키울 때 그네를 타려면 기다리기까지 했던 놀이터가 이젠 텅 빈 때가 더 많아졌고, 아파트 상가 문구점에도 아이들이 북적이던 모습을 보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1970년 4.53명이던 합계출산율은 2024년 0.75명으로 감소해 인구소멸을 걱정하게 됐다. 이런 감소는 OECD 국가 중 가장 빠른 수준이다.
일반적으로 자연에서 생명체는 자신의 종족을 번성시키려는 본능을 가지고 있지만, 자연계에는 개체 수가 너무 늘어났을 때 스스로 그 수를 조절하거나 감소시키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들이 관찰된다. 인구밀도의 높음 또는 낮음이 그들의 인구를 스스로 줄이거나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이론으로 동물과 식물 등을 대상으로 폭넓게 연구되고 있는 개념이다.
레밍(Lemming)의 자살은 많이 알려진 이야기다. 레밍은 북유럽 스칸디나비아 지역의 산악지대나 황야 또는 툰드라 지대에 서식하는 들쥐로, 3~4년마다 크게 증식해 이동하므로 나그네쥐라고도 한다. 이들은 3~4년마다 수천수만 마리의 레밍이 바닷가 절벽에서 떨어져 집단자살을 한다는 것으로 유명하다. 처음엔 이들이 집단자살을 하는 이유가 그들의 폭발적인 번식력 때문으로 나타난 개체수 폭발로 늙은 쥐들이 후손들을 위해 스스로 자살하는 것이라고 추론하기도 했으나,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집단적으로, 과속으로 달리는 눈이 나쁜 레밍들이 앞에서 달리는 레밍들이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면 눈이 나쁜 레밍들은 멈추지 못하고 덩달아 덜어지게 되는 것이 원인이라고 밝혀졌다. 이성연 애터미 경제연구소장은 2015년 넥스트 이코노미에 기고한 "레밍은 왜 집단자살을 할까?"라는 글에서 레밍처럼 '맹목적으로 남을 따라 행동하는 것'을 레밍효과(Lemming Effect)라 한다고 하면서, 이 레밍효과는 선천적인 심리적 현상으로 생존본능 곧 무리에서 이탈하지 않으려는 심리와도 관련이 있다고 설명했다. 레밍한 마리가 이동하면 다른 녀석이 맹목적으로 따라붙고 또 다른 녀석들로 무리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무조건적으로 뒤따라 절벽에서 떨어지는 것이 집단 자살의 이유라는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인데, 가장 전형적인 현상이 '유행'이라는 것이다.
현대사회에서는 경제적, 교육적, 정치적, 심지어는 개인적인 삶의 영역에 이르기까지 과도한 경쟁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러한 과도한 경쟁은 우리에게 다양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직장에서나 학교에서 끊임없이 남들과 비교하고 이겨야 한다는 압박감은 극심한 스트레스와 불안감을 유발하고, 경쟁에서 뒤처지거나 실패했을 때 느끼는 좌절감과 패배감은 우울증이나 학습된 무기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주변 사람들을 협력의 대상이 아닌 경쟁 상대로만 여기게 되면서 서로에 대한 불신이 깊어지고 관계가 소원해질 수 있으며, 이는 사회적인 고립감을 심화시킨다. 이런 과도한 경쟁은 궁극적으로 정신적 육체적 질병에 취약하게 되는 등 다양한 문제에 맞닥뜨리게 된다. 과도한 경쟁은 개인의 삶의 질을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의 건강성을 해칠 수 있는 문제이다. 저출산 문제는 이런 이유로 천천히 삶을 즐기고 삶이 의미를 찾고, 남과 다른 나만의 가치와 자존감을 회복할 겨를이 없이 그저 맹목적으로 결승점이라는 환상을 향해 내달리는 레밍효과의 결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5월의 하늘은 아름답다. 그리고 5월의 어린이 웃음소리는 더욱 아름답다. 하늘보다 더 푸른 저들의 얼굴이 '레밍효과'의 어두운 그림자에 의해 가려지지 않기를 기도한다. 다른 어린이와 비교됨으로 인해 가치를 인정받는 사회가 아닌 그들 스스로의 존재 자체로써 가치를 인정받며려 살 수 있기를 위해 기도한다. 이 땅에 모든 놀이터가 다시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 차기를 위해 기도한다. /김성현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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