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칼럼] 옻, 종양면역 치료제로서의 새로운 가능성

  • 오피니언
  • 사이언스칼럼

[사이언스칼럼] 옻, 종양면역 치료제로서의 새로운 가능성

정환석 한국한의학연구원 한의기술응용센터 책임연구원

  • 승인 2025-05-08 17:17
  • 신문게재 2025-05-09 18면
  • 임효인 기자임효인 기자
clip20250508094855
정환석 한국한의학연구원 한의기술응용센터 책임연구원
시골에서 자란 나는 어릴 적 산과 들을 누비며 자연과 함께 성장했다. 그중에서도 산에 갈 때 가장 조심했던 것은 '옻'이었다. 옻나무에 스치기라도 하면 옻이 오를까 봐, 심지어 옻나무와 비슷한 붉나무 잎만 봐도 가까이 가기를 꺼리곤 했다. 옻이 오르는 것은 일종의 접촉성 피부염으로, 면역 과민 반응의 하나다. 한의학에서는 오래전부터 옻나무의 수지(樹脂)를 '건칠(乾漆)'이라는 약재로 사용해 왔다. 주로 혈행 개선, 어혈 제거 등의 목적으로 쓰이며 민간에서는 '옻닭'으로 가장 많이 접할 수 있다. 옻닭을 먹어본 사람이라면 국물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따뜻한 느낌을 기억할 것이다. 나 역시 다른 삼계탕보다 옻닭을 더 선호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한의 임상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항암 소재는 무엇일까? ChatGPT에 물어보니 인삼, 황기, 백복령, 반하, 백화사설초, 청호 등이 대표적이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그중에서도 '옻(건칠)'이 항암 면역치료제로서 가장 주목할 만한 생약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한의 임상 현장에서는 '건칠단', '건칠고' 등 다양한 형태의 건칠 처방이 암 환자에게 사용되고 있다. 특히 2000년대 초반, '넥시아(Nexia)'라는 이름으로 건칠을 활용한 말기 전이성 신장암 치료 증례 2건이 국제 학술지에 소개되면서 큰 주목을 받았고 이후 제조와 관련한 법정 분쟁도 있었다.

우리 연구팀은 종양면역 치료제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1000여 종의 천연물 추출물을 스크리닝하던 중 건칠의 가능성을 다시 발견하게 됐다. 놀랍게도, 건칠은 현재 가장 널리 사용되는 면역관문억제제의 표적인 PD-1과 CTLA-4를 차단하는 활성을 보였다. 참고로, PD-1을 차단하는 항체 치료제 '키트루다(Keytruda)'는 2023년 한 해 동안 43조 원에 달하는 매출을 기록했고, CTLA-4를 표적으로 하는 '옵디보(Opdivo)' 또한 연 매출 10조 원에 달했다. 건칠이 이와 유사한 면역기전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은 매우 흥미롭다. PD-1과 CTLA-4는 T세포 활성을 억제하는 면역관문 분자로, 암세포가 면역 회피 전략으로 이들을 활용한다는 사실은 2010년 이후 활발히 연구됐고 해당 분야의 공로로 제임스 앨리슨 교수와 혼조 타스쿠 교수는 2018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공동 수상하기도 했다.

2010년 이전의 항암제 연구는 대부분 암세포를 직접 사멸시키는 약물을 찾는 연구였으나 면역관문 차단제의 놀라운 효과가 보고되면서 면역세포를 활성화시켜 암을 제거하는 종양면역 연구가 크게 활기를 띠고 있다. 그래서 종양면역 치료제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치료제라 3세대 항암제로 불리기도 한다. 한약의 항암 연구도 2010년대까지는 대부분 암세포를 직접 사멸하는 연구였으며 근래에 이르러 종양면역 연구를 시작하는 단계다.

나는 건칠의 항암 효과가 암세포 자체를 직접 공격하는 기전보다는, 면역세포를 활성화시켜 종양에 대한 면역 반응을 유도하는 데 더 가깝다고 본다. 실제로 최근에 단국대 이상헌 교수 연구팀에서도 건칠이 T세포 기능을 활성화시켜 암을 억제함을 보고하기도 했다. 다만 면역세포가 잘 작동하는 종양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실제로 키트루다조차 전체 고형암 환자 중 치료 반응률이 15%에 그친다는 점은 이를 잘 보여준다. 건칠 역시 종양에 면역세포가 많이 분포한 환자군에서 더 효과적일 수 있다. 따라서 향후 임상시험이 진행된다면, 이러한 종양의 면역 환경 특성을 고려해 환자 선정이 이루어진다면 더 우수한 치료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암에 효과적인 '만병통치약'은 존재하지 않는다. 암세포의 유전자 구성과 종양을 둘러싼 환경은 각기 다르기 때문에 약물 반응도 다르다. 다행히, 최근에는 환자의 암 유전체 분석이 쉬워졌고 기존 치료 데이터와 AI 기술을 접목하면 개인 맞춤형 치료 전략을 수립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 전략 중 하나로 '한의 종양면역치료법'이 포함되길 기대한다. 정환석 한국한의학연구원 한의기술응용센터 책임연구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청주시 외평~북이 등 2개 도로 노선, 제6차 국도·국지도 예타 대상 선정
  2. 포항 해수욕장 제사 반대 10만 서명운동 본격화
  3. 대전 미분양 1년 새 23% 증가… 중구 미분양 대폭 증가
  4. 한국마사회 글로벌 심판 영입… 서울경마 신뢰 높인다
  5. [주말사건사고] 폐차장 화재부터 공장 폭발까지...대전·충남 사고 잇따라
  1. 충청 명운 가른다…정기국회 현안입법 예산 초당적 협력 시급
  2. 농지관리 체계 전면 개편… 전담기구 신설 추진
  3. 보완수사 기한 줄이고 절차 강화… 경찰 수사 완결성 시험대
  4. [2027 수시로 간다-대학의 색, 미래의 선택] 의료현장에 AI·데이터 더한다… 건양대가 여는 '데이터 의학'
  5. 국세청, 태국에 세정 선진 경험 전수… 글로벌 최저 한세 협력

헤드라인 뉴스


[중도일보 창간75주년 특집] 기록을 딛고, 충청의 미래를 점화한다

[중도일보 창간75주년 특집] 기록을 딛고, 충청의 미래를 점화한다

원자번호 75. Re. 레늄(Rhenium). 녹는점이 3000℃를 훌쩍 넘는 레늄은 초고온에서도 안정적인 특성을 유지한다. 극한의 열을 견뎌야 하는 항공기 제트엔진의 터빈 블레이드용 초합금과 로켓·미사일 추진기관의 연소실·노즐 등에 활용되는 이유다. 특히 니켈계 초합금에 소량만 더해도 고온 강도와 내구성을 높일 수 있어 항공우주와 국방산업에서 높은 가치를 지닌다. 그 희소성은 더욱 특별하다. 레늄의 대륙지각 내 평균 함량은 10억분의 1 미만으로 지구에서 가장 희귀한 원소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극한의 열을 견디고 소량으로도 전체..

[창간75] AI 선도·반도체 성장축 떠오른 충청…초광역 ‘원팀 전략’ 관건
[창간75] AI 선도·반도체 성장축 떠오른 충청…초광역 ‘원팀 전략’ 관건

이재명 정부가 인공지능(AI) 대전환과 반도체 경쟁력 강화에 속도를 내면서 민선 9기 대전·세종·충남·충북도 AI와 반도체 산업을 지역의 핵심 성장동력으로 내세우고 있다. 천안·아산과 청주의 대규모 반도체 생산시설부터 대전의 연구개발(R&D), 세종의 첨단부품까지 충청권이 보유한 산업 기반도 탄탄하다. 정부의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를 통해 392조 원 규모의 민간투자 계획까지 더해지면서 충청권이 국내 반도체 산업의 새로운 성장축으로 부상할 수 있다는 기대도 커지고 있다. 관건은 충청권의 공동 대응이다. 4개 시도가 개..

[창간75] 충청권 392兆 대규모 투자 마중물… `초광역 경제권` 발판 삼아야
[창간75] 충청권 392兆 대규모 투자 마중물… '초광역 경제권' 발판 삼아야

충청권 산업이 대전환기에 들어섰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이차전지, 바이오 등 첨단산업을 중심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민간기업의 대규모 투자가 본격화하고 있어서다. 정부가 최근 발표한 충청권 첨단산업 민간투자 규모는 총 392조 원에 달한다. 이 가운데 충남에서는 올해 202조 원 규모의 투자사업이 착공과 인허가 등 구체적인 실행 단계에 돌입할 것으로 알려졌다. 관건은 이번 대규모 투자를 단기적인 생산과 고용 증가에 머물지 않고 지역 산업의 장기적인 성장 동력으로 연결하는 것이다. 기업 투자를 계기로 산업 기반을 확충하고 지..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물폭탄에 잠긴 교량 차지한 오리 물폭탄에 잠긴 교량 차지한 오리

  • ‘두 달째 파행하고 있는 대덕구의회 규탄한다’ ‘두 달째 파행하고 있는 대덕구의회 규탄한다’

  • 제17회 대전시 동구청장배 전국풋살대회 여자부 8강 제17회 대전시 동구청장배 전국풋살대회 여자부 8강

  • 제17회 대전시 동구청장배 전국풋살대회 초등 3~4학년부 4강전 제17회 대전시 동구청장배 전국풋살대회 초등 3~4학년부 4강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