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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홍철 국립한밭대 명예총장 |
우리나라는 참 독특한 나라입니다. 우리나라가 이룬 경제적 성과는 세계가 부러워하고 있으며 모범사례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6·25 전쟁 직후 세계 최빈국 중의 하나였는데 최근에는 무역 규모 10위 내외, 기술력 5위 내외로 성장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민주화의 심화'라는 측면에서는 아직도 취약점이 있으나, 그런대로 짧은 시일 내에 '절차적 민주화'를 달성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세월호 사건이나 이태원 참사 같은 매우 후진적인 사고가 터지고, 특히 최근에는 '계엄령 선포'라는 후진국 중에서도 최후진국 정치의 전형을 만천하에 보여주기도 하였지요. 물론 어떤 나라도 양면성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우리나라는 그 정도가 좀 극심한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가 현대적 개념의 지방자치제를 시행한 것은 1952년이기 때문에 연륜은 나름 꽤 오래되었습니다. 이것이 1961년 5·16으로 중단되었고, 1991년 30년 만에 지방자치제가 부활했으나 지방의회만 구성하여 반쪽 지방자치제였습니다. 진정한 지방자치제는 1995년 6·27선거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에 지방의회를 기준으로 하면 30년, 지방자치단체장까지 포함하면 26년의 역사를 가졌습니다.
그동안 '지방행정' 측면에서는 괄목할 만한 발전이 있었음에 반해 '지방자치' 측면에서는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습니다. 지방행정이 큰 변화와 진전이 있었던 것은 선거 때문입니다. 선거로 선출된 단체장이 이끄는 모든 지자체는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하여 투자 및 기업 유치, 관광 등 마이스산업 확대, 축제 등 각종 이벤트 활성화로 경영 행정을 확대하였습니다. 시민들의 주권 의식도 높아졌고 선거를 통해 평가를 받기 때문에 과거에 비하여 서비스 행정의 질은 획기적으로 개선되었습니다. 아직 성숙 단계는 아니지만 정책, 예산편성, 감사 등에서 시민 참여가 확대되었고, 언론과 각종 사정기관의 감시 등으로 투명 행정의 진전을 이뤘습니다.
이렇게 진일보한 지방행정에 비해 '지방자치'가 제자리걸음하고 있는 것은 중앙정부와 중앙정치권이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는 데서 연유됩니다. 구체적인 사례로는 재정이나 권한 모두 '2할 자치' 수준입니다. 지방세와 국세의 비율은 20대 80이고, 지방자치 사무와 국가 사무도 20대 80입니다. 실질적으로 지방에 쓰이는 재정은 60%인데 지방세 재원이 20%이므로 중앙정부는 40%의 재원을 중앙의 결정에 따라(물론 일부 근거와 기준은 있지만) 지원함으로써 지방의 자율성을 크게 제약하고 있습니다. 국가 사무를 지방자치 사무에 위임한다고 하지만, 위임된 지방자치 사무도 중앙정부가 제정한 법률이나 시행령에 구속을 받기 때문에 지방자치 또는 자율행정의 보장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중앙정치권도 지방 단체장과 지방의원에 대한 공천권 행사를 통해 자율성과 풀뿌리 민주주의를 위축시키고 있습니다.
경제적인 성과에 비해 국격이 낮은 것과, 민주화의 성과에 비해 지방자치의 수준이 낮은 것은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요? 해답은 기득권의 포기를 통한 신뢰의 확보입니다. 중앙정부는 지방정부의 능력을 믿고, 공무원은 시민의 선의와 자율성을 믿으며, 시민 상호 간에는 상호 배려를 바탕으로 공동체 문화가 형성이 된다면, 위에서 지적한 우리 사회의 취약성과 지방자치의 왜곡도 상당히 시정되리라 생각합니다.
염홍철 국립한밭대 명예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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