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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부소산성 17차 발굴조사 현장 전경./사진=국가유산청 제공 |
특히 국내 최초로 기와를 쌓아 만든 축대(와적축대)가 발견됐을 뿐만 아니라 백제 전통의 대지 조성 방식, 건물터, 저장시설, 조선시대 군량창고 터까지 복합적으로 확인되면서 부소산성의 성격이 단순 방어시설을 넘어 왕궁의 핵심 위계 공간임이 밝혀졌다.
27일 국가유산청 국립문화유산연구원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이하 연구소)는 29일 부여 부소산성 발굴현장에서 지난해부터 진행해온 제17차 발굴조사 성과를 공개하는 설명회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부소산성은 백제가 수도를 부여로 옮긴 사비기 시절(538~660년)의 왕궁 방어시설로 알려져 있으며 왕궁터인 관북리유적 북쪽에 자리 잡고 있다.
1981년부터 현재까지 총 17차례에 걸쳐 백제의 성벽과 구조를 파악했으며 성 내부의 탐색갱 조사를 통해 곳곳에서 건물과 우물지 등의 시설들이 있음을 확인했다.
이번 조사는 조선시대 군량 창고(군창지)로 사용됐던 부소산성 내 가장 넓은 평지에서 이뤄졌다.
조사 결과, 현재의 평탄한 지형은 원래 깊은 계곡이었으나 백제 시대 사람들이 흙을 층층이 쌓아 올려 인위적으로 만든 대지임이 밝혀졌다. 평탄화 과정에서 무너짐을 방지하기 위한 흙둑(토제)을 먼저 만들고, 그 위에 차곡차곡 흙을 올리는 방식은 백제 초기 몽촌토성, 풍납토성과 같은 고대 성곽에서도 확인되는 전통적인 축조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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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와를 쌓아 만든 축대(와전축대) 모습./사진=국가유산청 제공 |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동서 방향으로 쌓은 와전축대인데, 돌 대신 기와를 20여 단 쌓아 만든 형태로 그 길이가 26m에 이르며 기와로 쌓은 축대는 국내에서 처음 발견된 사례다.
2단으로 조성된 대지 중 첫 번째 단에서는 ▲기둥을 땅에 바로 세운 '굴립주' 건물지 ▲기와를 바닥에 깔아 기단을 만든 '와적기단' 건물지 ▲저장시설 등 다양한 유구들이 확인됐을 뿐 아니라 통일신라~조선시대에 걸친 건물지도 나왔다.
두 번째 단에서는 가로 14.6m, 세로 11.5m 규모의 대형 건물터가 나왔으며, 원형 초석과 네모 초석을 함께 사용해 그 사이에는 기와를 끼워 마감한 흔적(고막이 시설)도 확인됐다.
연구소는 "이번 조사를 통해 부소산성 내부가 단순한 방어 공간이 아니라 백제 왕궁의 높은 위계 공간이었음을 확인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오는 29일 열리는 현장설명회는 일반 시민 누구나 참석 가능하다.
연구소는 "이번 공개를 시작으로 백제 사비기의 왕궁과 도시구조에 대한 연구를 본격화하고, 국민들이 우리 유산의 가치를 체감할 수 있도록 다양한 노력을 이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최화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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