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서천읍성 전경./사진=서천군 제공 |
서천읍성은 조선 세종 연간(1438~1450년경) 금강 하구를 통해 충청 내륙으로 침입하는 왜구를 방어하기 위해 축조된 연해읍성(沿海邑城)으로, 총 둘레 1645m 중 약 93.3%인 1535.5m의 성벽이 현존하고 있다.
특히 서천읍성은 조선 초기 연해읍성 가운데 드물게 산지를 활용해 축성됐으며, 일제강점기 전국의 읍성 철거령 속에서도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성벽이 비교적 온전하게 남아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국가유산청은 "서천읍성은 조선 초기 성곽 축성정책의 변화 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으로,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크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서천읍성에는 1438년(세종 20년) 반포된 '축성신도(築城新圖)'의 계단식 내벽 구조와 1443년(세종 25년) 이보흠이 건의한 한양도성식 수직 내벽 기법이 모두 확인돼 당시 축성 기술의 과도기적 모습을 잘 보여준다.
또, '충청도읍지' 등 문헌에 따르면 이 성에는 원래 17곳의 치성(雉城)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현재까지 조사 결과 90m 간격으로 배치된 16곳의 치성이 확인됐다. 이는 1433년(세종 15년)에 제정된 '150보 간격' 기준(약 155m)보다 촘촘한 배치로 다른 읍성에서 보기 어려운 독특한 양식이다.
이밖에도 '문종실록'(1451년)에는 "성터가 높고 험하여 해자를 파기 어렵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데, 현장에서는 후대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해자 흔적과 함께 1.5~2m 간격의 수혈유구도 확인돼 조선 초기 성곽의 구조와 변화 과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국가유산청은 30일간의 예고 기간 동안 각계 의견을 수렴한 뒤, 문화유산위원회 심의를 거쳐 사적 지정 여부를 최종 결정할 예정이다.
국가유산청 관계자는 "서천읍성은 지역의 역사성과 조선 초기 국방 정책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산"이라며 "앞으로도 우수한 문화유산의 체계적 보존과 활용에 적극 나서겠다"고 말했다.
최화진 기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