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 특별한 것은 만화 그리길 좋아했다는 것이다. 장편도 그렸는지 알 수 없으나, 어깨 너머로 볼 수 있었던 것은 만평, 시사만화 같은 것이었다. 농촌에서 신문이나 잡지 접하기가 쉽지 않았음에도, 그러한 그림 그린다는 자체가 신기방기 했다. 초등학생이었던 필자에게 엄청난 안목이 있었을 리 만무하지만, 재치와 재미가 있었던 기억이다.
외과의사로 열심히 활동하던 중 연륜이 쌓이자, 특별히 항문만 더욱 심도 있게 공부하여 항문 치료 전문 병원을 운영하였다. 병원에서 쓰는 각종 로고나 심벌마크 등을 손수 디자인하여 사용했다. 지나다 보니, 병원 간판에 원숭이가 붉은 엉덩이를 뒤로 쑥 내밀고 돌아보는 그림이 그려있다. 참 적절한 상징이라 생각하며, 뛰어난 상상력에 미소 지었다.
만화는 인류의 표현욕구가 분출되기 시작하면서 있어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동물을 의인화하거나 소통의 도구로 사용되었다는 점에서 선사시대의 동굴벽화나 암각화를 만화의 원조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유럽에서 부르는 캐리커처(caricature), 영국과 미국 등지에서 붙인 카툰(cartoon), 유머 만화에 붙이는 코믹 스트립스(comic strips) 등 모두 만화의 다른 이름이다. 도입단계에서 일본은 '펀치화(punch?)'라 부르기도 한다. 우리는?'삽화(揷?)', ?'철필사진(鐵筆寫眞)', '그림이야기' 등 제각각 이름을 붙였다. 한자문화권에서 희평(戱評), 희화(戱?) 또는 풍자화라 부르다가, 덮어놓고 되는 대로 그린다(漫然)는 뜻에서 1922년 이후 만화(漫?)로 굳어져 표기되기 시작한다.
1909년 6월 창간된 『대한민보』창간호부터 시사만화 게재가 시작되었다는 것이 통설이다. 정치사회의 비판, 풍자가 담겼다. 1924년 시작된 4칸 연재만화는 시사적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유머에 치중한다. 시국에 따라 성격이 달라지기도 하지만, 이후 거의 모든 신문에 한 컷짜리 만평이나 네 컷짜리 시사만화가 실린다. 1972년 『일간스포츠』에 연재된 고우영의 장편만화가 등장하면서 극화형식도 정립된다.
1923년에 월간 어린이잡지 『어린이』 · 『신소년』 · 『아이생활』등의 월간지가 출간되면서 산발적으로 어린이 만화가 등장한다. 이때 만화 단행본도 출판이 된다. 1950년대 말부터 단행본이 서점에서 대본소로 자리를 옮기며, 분업화와 대량생산이 이루어진다. 1960년대로 넘어가며 만화방이 확산되고 만화산업이 급속하게 성장한다.
1988년 올림픽부터 이어진 범죄와의 전쟁으로 전성기를 구가해온 대본소는 위축되기 시작한다. 반면에 단행본 판매와 잡지의 다양화로 만화시장은 계속 성장한다. 뿐인가 뛰어난 창작품이 많아, 애니메이션이나 영화로 수없이 제작된다.
만화의 중심축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옮긴다. 인터넷, PC통신으로 만화를 볼 수 있다는 개념 자체는 1994년도에 주요 PC통신에서 만화서비스를 시작하면서 시작된다. 인터넷에 게재되는 만화, 곧 인터넷을 통해 연재하고 배포하는 '인터넷만화'로 외국에서는 웹코믹(web comic)이라 부른다. 최초의?웹코믹은 1985년에 연재된 에릭 밀리킨(Eric Millikin)의 <Witches and Stitches>이다. 우리에겐 웹툰(Webtoon)이란 말로 굳어졌는데, 실은 웹과 카툰(cartoon)의 합성어로 일종의 콩글리시인 것이다. 웹코믹은 웹코믹북의 준말로 전자만화책의 의미가 강해, 우리가 지칭하는 웹툰은 장르가 다르다고 보기도 한다. 어쨌든 최초의 웹툰 또는 웹코믹이라 볼 수 있는 것은?한희작의 1996년작 <무인도>이다.
만화는 우선 소설과 그림이 융합된 종합예술이다. 스토리 작가, 작화가가 따로 있기도 하지만, 어느 한 쪽만 특출 나도 걸작이 될 수 있다. 남녀노소 누구나 열렬한 소비자가 될 수 있다. 존재하는 모든 사물의 진실과 변화, 역사와 미래, 갈등과 포용, 무한한 상상의 세계가 부단히 펼쳐지기 때문이다.
만화는 주제, 소재, 대상, 발표 방식 등 수없이 변화하며 오늘에 이른다. 만화가 다가온 게기는 다를지언정 한 번도 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듯하다. 여느 장르의 예술과 다름없이 풍요로운 정신세계, 여유로운 삶에 기여하기 때문이다. 정신적 도피처, 삶의 활력소, 영감의 산실이 되기도 한다. 무엇보다 변함없는 중요한 소통의 수단이다.
양동길/시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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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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