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공론] 광복 80년, 감정은 아직 해방되지 않았다

  • 오피니언
  • 문예공론

[문예공론] 광복 80년, 감정은 아직 해방되지 않았다

최정민/평론가

  • 승인 2025-08-14 10:49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감정의 자유는 여전히 오지 않았다. 8월 15일, 국가는 해방됐지만 우리의 마음은 아직도 포로다. 일제강점기, 우리는 단지 영토만이 아니라 일상 전반에서 통제당했다. 이름은 개명됐고, 언어는 금지되었으며, 행동과 감정의 모든 표현이 억제되었다. 감정은 통치의 대상이 아니었지만, 표현할 수 없게 만드는 방식으로 억압되었다. 식민 통치는 인간의 존엄뿐 아니라, 그 존엄을 감정으로 드러낼 권리마저 지워냈다. 광복절은 그런 구조로부터 해방된 날로 기억된다.

되찾은 것은 국토였고, 언어였고, 제도였다. 그러나 진짜 자유는 어디까지 이뤄졌는가? 국가는 해방됐지만, 감정은 지금도 허락받아야 한다. '너와 나'로 갈라진 이념 때문이다. 우리는 참는 것이 성숙이라 여겼으며, 분노는 위험하다고 들었다. 감정은 자주 불편함의 원인으로 취급되고, 감정을 표현하는 사람은 예민하거나 유난스럽다는 시선을 받는다. 감정을 드러내면 분위기를 해친다고 하고,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면 미성숙하다고 낙인찍는다.

사회는 감정을 말할 자유를 말하면서도, 어떤 감정은 사적인 것으로, 어떤 감정은 적절치 않은 것으로 분류한다. 표현해도 되는 감정과 표현해서는 안 되는 감정 사이의 경계가 존재하며, 그 경계를 넘는 순간 감정은 곧 비난의 대상이 된다. 문제는, 감정을 통제하는 주체가 더 이상 국가나 제도가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는 서로를 감시하고 있다. 친구가, 가족이, 연인이, 동료가 "그 정도면 됐어", "여기서는 그런 말 하지 마"라고 말할 때, 감정은 타인의 '이념 잣대'기준 안에 눈치를 보게 된다.

조용히 웃고, 무던히 감정을 삼키는 이가 성숙으로 간주되는 사회, 감정을 통제하는 것이 사회성의 척도로 작동하는 구조, 바로 그곳에 감정의 검열이 있다. 감정의 검열은 비가시적 식민 상태다. 과거 식민 지배 시절, '조용히 하라', '질서를 지켜라'는 말은 국가에 의해 주어졌지만, 지금 우리는 스스로 그 말을 반복하고 있다. 감정을 숨기는 것은 더 이상 강요가 아니라 예의로 여겨지고, 감정을 흘리는 사람은 위험하거나 불편한 존재로 분류된다.



여성은 '울지 말라'는 훈육으로, 청소년은 '선생님에게 대들지 마'라는 복종 명령으로, 감정노동자는 '감정은 집에 두고 오라'는 지침으로 훈련되었다. 감정의 자유조차 계급화된 현실이다. 감정은 역사적으로 계급화된 언어였다. 그것이 '문명'이었다고, 버지니아 울프는 말했다. 그러나 감정 억압은 정치 국면에서도 반복된다. 권위주의 시절의 집회, 민주화 이후의 거리 시위, 그리고 최근 몇 년간의 항의 현장까지. 거리에는 언제나 분노한 사람들, 울부짖는 사람들, 침묵으로 저항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 감정들조차 곧 정치적 판단의 도구로 쓰였다. 누군가는 감정이 과하다고 지적받았고, 누군가는 애도조차 공격받았다. 울면 과하고, 참으면 방관이며, 분노하면 위험했다. 감정을 말한 이들이 그 감정의 방식 때문에 다시 해명해야 했다. 찬반 이전에, 말할 수 있는 감정조차 제한된 것이다.

광복 80년이 된 지금도, 우리는 서로 다른 이념 때문에 감정 앞에서 여전히 허락을 구하며 살아간다. 해방된 국토에서 살고 있지만, 감정은 여전히 감시당하고 있다. 표현된 감정은 옳고 그름으로 평가되고, 감정조차 증명해야 할 무언가로 취급된다. 그러나 감정은 사회를 움직이는 본질이지, 제도 그 자체는 아니다. 그래서 감정 없는 사회적 선택은 지속될 수 없다. 우리는 감정을 감추지 말고, 감정에서 출발한 생각을 이어가야 한다. 감정은 단지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사회가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를 비추는 가장 빠른 징후이기 때문이다.

또한, 감정은 인간의 본질이다. 해방이 국경의 회복에 그쳤다면, 그것은 반쪽짜리다. 진짜 해방은 '느끼고, 말하고, 흐를 수 있는 감정'이 공공 영역에 복귀하는 것이다. 오늘도 우리는 누군가의 눈치를 보며 감정을 삼키고 있다. 광복은 끝났지만, 감정의 해방은 아직 오지 않았다. 따라서 진짜 광복은, 말할 수 있는 감정이 바탕을 이룰 때 가능한 것이다.

최정민/평론가

2025071601001271900054681
최정민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공기 중 이산화탄소 직접 포집 기술 2026년 스마트팜서 상용화 기대
  2. 예산 관광의 새 마루지… 예당호 착한농촌체험세상 개장
  3. [현장] 유학생에겐 외로운 명절 연휴… 전통문화로 정 나누는 대학가
  4. 충청지방우정청, 추석 앞 아동복지시설에 '추석빔' 전달
  5. 한화이글스 2025 포스트 시즌 경기 날짜는?
  1. [국군의날] #아내는 TOD 남편은 육군경비정…충남서해 수호 부부군인의 '하모니'
  2. [추석특집] 긴 한가위 연휴 '고향 사랑' 지역명소 여행은 어때요?
  3. 과학기술 출연연 성과 한 곳에… 국립중앙과학관 '출연연 통합 홍보관' 개관
  4. 볼거리·체험거리 풍성… 긴 추석연휴 충남 방문 어때?
  5. 세종 '데이터센터' 딜레마… '정부부처 이전' 역제안

헤드라인 뉴스


역대급 긴 연휴… `고향사랑` 지역명소 즐겨볼까?

역대급 긴 연휴… '고향사랑' 지역명소 즐겨볼까?

민족 대명절 추석이 다가왔다. 2025년 추석 연휴는 최장 10일로 여느 때보다 길다. 국민 10명 중 4명이 연휴 중 국내외 여행을 계획 중이다. 해외로 떠나는 인원도 적지 않지만 그동안 미처 몰랐던 지역의 숨은 명소를 찾는 것도 기억에 남는 명절을 보내는 방법이 될 것이다. 한국교통연구원이 8월 22일부터 28일까지 국민 991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결과 40.9%가 추석 연휴 여행을 계획했다. 이중 국내 여행은 89.5%, 해외여행은 10.5%다. '민족대이동'으로 고속도로와 국도뿐 아니라 하늘길도 붐빌 전망이다. 유독..

[10월 2일 노인의 날] 디지털 세상에 도전하는 어르신들
[10월 2일 노인의 날] 디지털 세상에 도전하는 어르신들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혼자 힘으로 스마트폰과 컴퓨터를 다루고 싶어요." 노인의 날을 하루 앞둔 1일, 대전 유성구 진잠도서관 디지털배움터. 낯선 프로그램 화면 앞에서 키보드를 두드리던 한 수강생의 말에는 디지털 사회에 뒤처지지 않겠다는 다짐이 담겨 있다. 키오스크와 모바일·인공지능(AI) 서비스 확산으로 고령층의 디지털 소외가 심화되는 가운데, 스스로 배우고 도전하는 어르신들의 모습은 작은 희망을 보여주고 있었다. '디지털배움터'는 누구나 쉽게 디지털 세상에 적응하고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디지털 역량 교육을 추진한다. 이곳에서는..

경찰 국정자원관리원·관련업체 4곳 압수수색…계약·고용관계 파악할듯
경찰 국정자원관리원·관련업체 4곳 압수수색…계약·고용관계 파악할듯

대전 국가정보자원관리원 전산실 화재와 관련해 경찰이 2일 오전 9시부터 국정자원관리원과 배터리 이전사업에 참여한 민간 업체 4곳에 수사관을 보내 압수수색에 나섰다. 대전경찰청은 이날 수사인력 30명을 투입해 압수수색을 진행하며 화재 원인 규명에 필요한 증거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그동안 관계자들 진술조사를 통해 수집한 정보를 서류와 데이터 등을 확보해 검증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또 현장에서 배터리 이전 작업을 실시한 이들의 고용과 하청 계약서를 확보해 정당한 업무가 이뤄졌던 것인지 파악하려는 것으로 관측된다. 앞서, 배터리를 옮..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한복 입고 배우는 큰절 한복 입고 배우는 큰절

  • 다 같이 외치는 ‘청렴 동구’ 다 같이 외치는 ‘청렴 동구’

  • 추석 앞 붐비는 도매시장 추석 앞 붐비는 도매시장

  • 열려라 취업문 열려라 취업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