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공론] 혼자 서 있는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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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공론] 혼자 서 있는 여자

오세원/닥터오즈정신건강의학과 원장

  • 승인 2025-08-14 10:57
  • 수정 2025-08-14 12:25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하루는 어떤 중년 여성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녀는 필자의 두 번째 수필집 '날마다 고독한 여자'를 사서 읽어 봤는데 자신의 증세가 어쩌면 책 속의 주인공과 똑 같은지 한 번 찾아 가 뵙고 싶다는 것이다. 그런 후 이삼 일쯤 지나 책을 들고 조심스럽게 진료실로 들어와서는 자신의 공허하고 쓸쓸한 마음에 대해서 상담을 시작했다.

40대 초반인 그녀는 남편과 함께 전문기관에 물품을 납품하는 일을 한 10년째 하는데 단골도 늘었고 사업도 잘 되기 때문에 이만 하면 됐다 싶은 생각이 들었는데, 어느 날부터 마음이 허전해지고 살아간다는 일이 갑자기 무의미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마음이 심란해지자 일도 손에 잡히지 않고 갑자기 죽고 싶어질 때도 있어, 이러다가는 큰일 나겠다 싶던 차에 '날마다 고독한 여자'라는 제목이 붙은 책이 어쩌면 자신의 심리와 똑같은가 하고 사서 읽어 봤는데, 큰 도움이 되어 용기를 내 병원에 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살면서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려와서 사업도 안정이 되었고, 아이들도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기 때문에 아무 걱정이 없는데, 왜 이런 증세가 생겼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병이란 참 이상하다. 아등바등 살 때는 아프지 않다가, 먹고 살만하고, 이만하면 됐다 싶을 때, 꼭 가족 중에 하나는 아프게 만들어서 가정의 평화를 깨는 심술을 부린다. 병에 걸리지 않으려면 평생 긴장을 하면서 살아야 된다는 말인가. 그런데 평생 긴장하면서 도대체 사람들이 몇 살까지 살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마음의 병이 생길 때는 누구나 다 이유가 있다. 따라서 그런 이유를 찾아내면 심리적 갈등이나 정신병의 치료는 빨라질 수 있다. 그래서 정신과 의사는 환자가 처음 병원에 오면 심리검사를 하거나 장시간 면담을 통해서 환자의 문제가 어디서 시작되었는지를 살핀다.

날마다 고독해지는 그녀는 성격이 꼼꼼하고 부지런하지만 검소하게 살아왔다. 그래서 사치도 모르고 치장할 줄도 몰랐다. 일에 쫓겨 남들이 흔히 다녀왔다는 가족 여행도 못해 봤고 친척들과 자주 왕래가 없다 보니 관계가 소원해진 상태다.

오직 사업과 가족들만 생각하면서 10년 이상 살아온 것이 다. 그래서 사업은 궤도에 올랐고 가족들도 건강하게 잘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인생이 허무해지고 마음이 텅 빈 것처럼 무의미한 고독 병이 생긴 것이다.

이런 증세는 40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일시적으로 생길 수 있는 전형적인 '갱년기 우울증'에 해당 되며, '짧은 기간의 약물 치료와 정신 치료에 증세가 쉽게 호전될 수 있다'는 필자의 설명에 그녀는 치료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그 이전에 자신의 친정어머니와 함께 올 테니 설명을 잘 해서 자신이 치료를 시작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것이다.

그녀의 친정어머니도 젊어서 우울증에 걸린 일이 있었는데, 정신과 치료를 받아보니 한도 끝도 없이 약을 먹겠다 싶어 스스로 이겨냈기 때문에 딸의 우울증에 대한 정신과 치료를 반대한다는 것이다.

얼마 후 그 딸과 함께 병원에 오신 친정어머니께서는 '자신도 7년 만에 우울증을 극복해서 지금은 건강하게 살고 있기 때문에 딸이 가급적 정신과에서 약을 먹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필자는 그녀의 어머니께 요즘은 그때에 비하면 약물 치료의 효과가 좋아졌을 뿐 아니라, 또 7년간 고생하면서 사는 것 보다는 치료 후 빨리 우울증에서 벗어나는 것이 더 현명한 결정일 것 같다는 설명을 했다.

또 배고픈 사람에게 밥을 주듯이 아픈 사람에게 약을 주는 것을 너무 심각한 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녀의 우울증은 공교롭게도 친정어머니와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증세를 나타낸 갱년기 증세였다. 이처럼 우울증도 어머니와 딸의 대를 이어 나타날 수 있으나, 어머니가 7년 만에 치료되었다 해서 딸도 7년간 고통스럽게 생활하면서 우울증세가 자연히 없어지기를 기다린다는 것은 지혜롭지 못한 생각이다.

그녀의 친정어머니는 필자의 설명과 딸의 고통에 대해서 이해하고 나서야 딸의 정신과 치료를 돕기 시작했고, 그 딸은 한 달 정도의 치료 후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녀는 증세가 호전되자, 가족과 함께 롯데월드로 가족 나들이를 다녀왔으며, 가구도 모두 새 것으로 사서 집안 분위기도 바꾸어 보았다. 그런 달라진 집안 분위기를 남편과 아이들이 더 좋아하는 것을 보고 '사람답게 산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하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지금 가까이 사는 친척들과 서로 왕래를 하며 즐겁게 산다. 가끔 우울한 기분이 들 때는 병원에 전화를 걸어 상담을 받기도 한다. 이런 경우는 사람이 산다는 것이 돈을 열심히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돈을 벌고 나서는 적당히 쓰면서 사는 것도 삶의 질을 높이면서 인생을 의미 있게 살아 갈 수 있다는 좋은 사례일 수 있다.

오세원/닥터오즈정신건강의학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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