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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부1단지(아)경로당의 발대식 모습. 황영일 명예기자 |
"아니 어쩐 일이신가요?" 올해 93세 된 전 선배 회원. 몇 해 전부터 건강이 안 좋아 경로당에도 못 나오던 분인데 갑자기 찾아온 것이다. 얼굴은 예전보다 오히려 도톰해진 듯했다.
"건강이 좋아지신 것 같습니다." 했더니, "그래요?" 대답하며, 빙그레 웃으신다. "방으로 들어오세요, 여러분이 놀고 있어요" 권하자, 빨리 나가자고 말없이 손짓만 한다. '무슨 일이 있구나' 짐작하며 따라나섰더니 그 선배 회원님 아파트로 안내한다. 안방으로 들어가더니 턱으로 벽걸이 에어컨을 가리킨다. '아, 에어컨이 안 나오니, 나한테 수리 부탁을 하시러 오셨구나' 생각하며, "리모컨은 어디 있어요?" 하니, 역시 턱으로 방바닥을 가리킨다. 그 리모컨을 집어 들고 아무리 살펴봐도 에어컨 리모컨이 아니었다.
'아, 텔레비전 리모컨으로 에어컨을 켜려 하였구나' "선배님, 또 다른 리모컨은 없습니까?", "…", 에어컨 리모컨을 찾으려 했으나, 평소에 늘 쓰던 안경도 안 썼을 뿐만 아니라 방안 조명도 어두컴컴한 편이어서 찾을 수가 없었다. 또 리모컨을 찾는다 하더라도 내 힘으로 잠들어있는 에어컨을 깨운다는 보장도 없는 일이다.
"선배님, 경로당에 가서 안경을 쓰고 와야겠어요. 안 보여서 일을 할 수 없어요." 경로당으로 가던 중, 1층 현관에서 마침 우리 아파트 관리사무소 시설주임을 만났다. 주무자를 만난 것이다.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더니, 빠른 걸음으로 동행, 에어컨을 가동시켜 역대급 더위를 식힐 수 있게 되었다. 몇 해 전에는 91세 된 선배 회원님이 "카톡이 안 되니 가르쳐 달라"고 아침 식전에 찾아온 일이 있었다. 마침 대학생이던 손녀가 어렵지 않게 잘 설명을 해드렸다.
이 두 사례에서 실버들의 당면문제 해결 과정에서 드러난 공통점은, 첫째로 누구에게 부탁해서라도 문제를 풀겠다는 의지가 강하다는 점. 둘째로 판매점이나 AS 전문점, 업무 담당 전문가에게 의뢰하기보다는 가까운 이웃에 먼저 부탁한다는 점. 셋째로 의뢰받은 쪽에서는 자신이 직접 풀어주지는 못하더라도 제3 자 연결로 해결하도록 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또 이 두 사례는 인간의 수명이 나날이 높아져 가는데 AI 등 디지털기기의 눈부신 발달로 알거나 익혀야 할 지식의 양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오늘날 사회적응이 어렵게 된 실버들은, 왕성했던 현실에서 인생의 뒤안길로 밀려나 힘없는 존재로 떠돌아다닐 우려가 커지고 있음을 실증하고 있다는 점이다.
끝으로 고령 독거노인 문제도 제기된다. 과거엔 고독사하면 일본 등 외국의 예를 많이 들었다. 이젠 고립이나 고독사는 한국에도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되었다. 최근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고 있는 위와 같은 8090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한노인회를 비롯한 민·관이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있는 가운데 특히, 일선 경로당 현장에서, 노노케어 봉사로 회원들의 안전망을 구축해보자는 당찬 봉사활동이 전개돼 주목을 끌고 있다.
이 경로당은 대전 중구 태평2동에 있는 삼부1단지(아)경로당으로, 곽진혁 회장은 취임 후 이 경로당 실태조사에서, "회원 중 독거노인이 48%라는 점, 더욱이 아파트 거주는 이웃끼리 만남이나 소통이 어렵다는 점 등을 파악하고 아파트 경로당 실태와 특성에 부합되는 '경로당 자치 자원봉사회'를 구성 운영하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총 5개 동인 삼부 1단지 아파트에 거주하는 경로당 회원들이 동별로 6~9명씩 한 팀을 이뤄 매일 안부를 묻는 노노케어 봉사단을 구성한 것이다. "동별로 팀을 짜서 팀장을 중심으로 경로당에 나오지 않은 회원의 안부를 전화와 문자로 매일 챙겨요."
이 봉사 활동에 대해 대한노인회 대전 중구 이인상 지회장은 "경로당 회원끼리 자발적으로 안전망을 구축해 '고독사'를 예방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해마다 노인인구 증가로 독거노인이 늘고 있으며, 아파트 거주도 증가하는 추세이므로 다른 경로당으로도 전파돼 경로당이 안심하고 편안하게 지낼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황영일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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