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 확대지향적인 한국인

  • 오피니언
  • 풍경소리

[풍경소리] 확대지향적인 한국인

송기한 대전대 교수

  • 승인 2025-12-15 15:35
  • 신문게재 2025-12-16 19면
  • 조훈희 기자조훈희 기자
송기한 대전대 교수
송기한 대전대 교수
한 나라의 고유한 문화랄까 관습은 짧은 시기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개인들, 혹은 집단 구성원들의 취미나 교양 등이 오랜 시간 걸쳐서 형성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특정 지역의 문화라고 할 때에는 반드시 역사성과 현재성이 함유되어 있기 마련이다. 문화가 이렇게 형성되는 것이라 할 때, 우리의 고유한 문화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물론 이를 한두 가지의 흐름으로 규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개인들마다 내재해있는 성향을 하나의 문화로 정의할 수 없는 마당에, 수많은 사람들의 그 다양한 갈래들을 단선화시켜서 하나의 주류라고 말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지금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것 가운데 특징적인 하나의 단면을 꼽으라면 단연 확대지향적인 문화를 들 수 있을 것이다. 확대란 크기(size)와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는데, 우리에게 있어 이 크기 문화란 거의 신앙의 차원에 놓여 있다. 이 문화에 대한 유령들은 지금 온 사회를 뒤덮고 있다. 가령, 자동차를 살 경우에 무조건 큰 차를 사야 한다. 그 하나가 대형차 그랜저의 경우다. 한때 한국인의 성공 보증 수표였던 이 승용차는 그래서 잘 나가는 아빠들의 차였다. 하지만 지금 그것은 아빠 차가 아니라 오빠 차가 됐다. 그만큼 대중화되었다는 뜻이 된다. 크기에 대한 숭배가 차의 종류를 바꿔버린 것이다.

우리의 의식주 가운데 가장 중요한 집의 경우는 또 어떠한가. 방 한두 칸이 있는 소형 평수에는 관심이 없다. 방은 적어도 3개 이상이 돼야 하고 4개가 있다면 더할 나위없이 좋은 집으로 인식된다. 방이 4개라면, 외국의 사례에 비교하면 대저택에 해당하는 큰 집이다. 이 크기 문화들에 대한 지향은 비단 이런 생활 공간에서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크게 되려면 대도시로 가야한다고들 한다. 그 결과 서울은 비대하다 못해 거대한 수도권으로 확대됐고 그 상대적인 자리에 놓인 농어촌은 인구 소멸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아프면 치료를 받아야 하지만 의원(clinic)을 가기에는 뭔가 신뢰가 생기지 않는다. 그래서 병원(hospital)을 찾게 되고, 대학 병원(university hospital)이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그러니 병원도 확대시켜 건설하려 든다. 크기가 또 다른 크기를 계속 만들어내는 것이다. 또한 무언가를 사기 위해서는 큰 시장에 가야하고, 서점도 규모가 큰 곳으로 가야 한다. 사우나도 가급적 큰 장소가 우선시 된다. 종교 시설은 또 어떠한가. 이미 규모상으로 볼 때 한국에는 세계 10대 교회 가운데 5개가 있다고 한다. 작은 교회는 무언가 부족해 보이니 큰 교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논리가 이런 결과를 만들었다. 회사도 크게 그룹화해야 하고 취준생은 그런 대기업만 선호한다.

이는 대학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대학 사회에서 단과 대학(college)은 찾아보기 어렵고 종합 대학(university)만이 존재한다. 칼리지만으로는 부족하니 적어도 유니버시티 정도는 되어야 비로소 좋은 대학이라고 생각한 관념이 만든 결과다. 전문성은 뒷전이다. '작지만 강한 대학'은 흔히 통용되어도 '크지만 강한 대학'이란 말은 어불성설이다. 이는 대학에서 연구자의 성과물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페이지가 많은 책은 '어마무시한' 성과라 하고 그렇지 않은 소규모의 책은 관심 밖이다. 거기에 담긴 내용이 어떠하든 상관없다.

확대지향적인 문화에는 사람의 신체도 예외가 아니다. 사이즈는 무조건 커야 좋다고 한다. 키에 대한 것도 그 하나다. 결혼 상대방의 요건 가운데 남성은 키가 몇 cm이상이어야 하고, 여성 또한 몇 cm이상이어야 한다는 전제가 붙어 있다.

도대체 이 확대지향적인 문화는 어디서 유래한 것일까. 그 하나의 사례로 들 수 있는 것이 조선 시대 이후로 만연한 사대주의(事大主義)이다. 사대주의란 "작고 약한 나라가 크고 강한 나라를 섬기고 여기에 의지하여 스스로의 존립을 유지하려는 태도"이지만 여기에는 중요한 함의가 하나 담겨 있다. 바로 큰 것(大)을 떠받들고자(事) 하는 의식이다. 결핍이 존재할 때, 이를 벌충하려는 지향성이 필연적으로 생겨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지금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확대지향적인 인간형, 곧 사이즈 컴플렉스(size complex) 인간형을 만들어낸 근원이다. /송기한 대전대 교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인터뷰]오노균 전 충북대 농촌관광개발전공 초빙교수
  2. 제1회 세종 마라톤 '모두 런' 성료… 2027년 성장형 대회 기약
  3. 천안중앙도서관, 8월 '체험형 동화구연' 운영
  4. 단국대병원, 입체 정위 유방생검술 200례 달성
  5. 천안법원, 무보험 차량을 운전한 혐의 '벌금 1000만원'
  1. 천안시, 제6기 지역사회보장계획 수립 TF팀 출범…복지정책 청사진 마련
  2. 충남중기청, '2026년 수출 중소기업 스케일업데이' 개최
  3. 천안시 행복키움지원단장 협의회, 정기회의 개최
  4. 대전교도소 실탄 관리부실 논란… 이전 사업까지 우려목소리
  5. 천안시, 대표 휴식공간 '공원' 새단장…봄꽃·수경시설 확충

헤드라인 뉴스


"주식·채권 팔아 집 샀다"… 넉달간 3.7조원 주택시장 유입

"주식·채권 팔아 집 샀다"… 넉달간 3.7조원 주택시장 유입

올해 들어 주식·채권을 처분해 마련한 자금 3조 7000억여 원이 주택시장으로 유입된 것으로 나타났다. 14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김종양 국민의힘 의원실이 국토교통부로부터 제출받은 자금조달계획서 집계에 따르면 올해 1~4월 주식·채권 매각대금 3조 7254억 9400만 원이 주택 매입 자금으로 투입됐다. 주택 취득 자금조달계획서는 주택을 살 때 구입 자금의 출처를 밝히는 서류다. 규제지역(투기과열지구·조정대상지역) 내 모든 주택과 비규제지역 실거래가 6억 원 이상 주택 매매 계약 시 계약일로부터 30일 이내 관할 지방자치단체에..

대전 소상공인, 월드컵 특수 기대보다 실망... "오전 경기에 분위기 안나네"
대전 소상공인, 월드컵 특수 기대보다 실망... "오전 경기에 분위기 안나네"

"월드컵 분위기가 도통 나질 않으니 손님도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저조해요." (대전 유성구 치킨집 점주) "오전 매출이 조금 늘어났을 뿐 주류 판매가 이뤄지지 않으니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크네요." (대전 서구 피자집 점주) 대전 소상공인들이 기대한 월드컵 특수를 누리지 못해 깊은 한숨을 내뱉고 있다. 대한민국 대표팀 경기가 12일엔 오전 11시, 다음 경기인 19일엔 오전 10시에 각각 열리다 보니 예년처럼 저녁에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14일 지역 소상공인 등에 따르면 이전보다 저조한 월드컵 분위기에 매출 인..

고유가 폭풍에도 ‘플러스 성장’… 청주공항, 국제선 증가율 ‘전국 1위’ 질주
고유가 폭풍에도 ‘플러스 성장’… 청주공항, 국제선 증가율 ‘전국 1위’ 질주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 심화에 따른 고유가·고환율 쇼크로 국내 항공업계가 직격탄을 맞은 가운데, 청주국제공항이 차별화된 노선 다변화 전략을 앞세워 홀로 '플러스 성장' 기조를 유지하는 저력을 발휘했다. 한국공항공사 항공통계에 따르면 지난 5월 한 달간 청주국제공항을 이용한 여객은 총 40만 1234명으로 집계됐다고 14일 밝혔다. 이로써 청주공항은 국내 지방공항 중 이용객 규모 '전국 4위' 자리를 더욱 굳건히 하며 성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히 전년 동기 대비 국제선 이용객 증가율은 무려 53.2%를 기록하며 전국 공항 중 압..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접시꽃에 담긴 여름 접시꽃에 담긴 여름

  • 임직원들이 함께 즐기는 월드컵 임직원들이 함께 즐기는 월드컵

  • ‘더 빠르게 접근한다’…무인수난구조보드를 활용한 인명구조 ‘더 빠르게 접근한다’…무인수난구조보드를 활용한 인명구조

  • ‘건강한 치아를 위해’ ‘건강한 치아를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