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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선 비래영광교회 담임목사 |
성경에서도 이와 비슷하게 인간의 상식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어울리지 않는 상황이 등장한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과 갓난아기, 세상의 통치자와 말구유, 구세주와 십자가, 얼핏 보면 도저히 어울릴 수 없는 조합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다. 세상을 창조하시고 다스릴 수 있는 분이지만, 그분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기로 태어나셨다. 아기는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고작 먹고, 우는 것 정도다. 아기는 세상을 구원할 능력은 없다. 그러나 예수님은 구원자임에도 그렇게 태어나셨다.
또한 예수님은 세상을 구원하신 구세주이지만, 세상의 눈에는 가장 치욕적으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얼음과 숯, 물과 기름처럼 인간의 상식과 지혜로는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기 때문이다. 옛날에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반대로 이 어울리지 않는 상황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다. 공동번역 성경 고린도전서 1장 21절에서 "세상이 자기 지혜로는 하느님을 알 수 없습니다"라고 말씀한다.
인간의 지혜로는 하나님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음에도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께서 내 죄를 대신 지시고 돌아가신 후에 부활하신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다. 이러한 사람들이 바로 구원받은 사람들이다. 구원받은 사람들은 자신이 지혜롭다고 자랑하지 않는다.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이 옳고, 하나님이 지혜롭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공동번역 고린도전서 1장 25절 말씀처럼 말이다.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 사람의 눈에는 어리석어 보이지만 사람들이 하는 일보다 지혜롭고, 하느님의 힘이 사람의 눈에는 약하게 보이지만 사람의 힘보다 강합니다."
고린도전서 1장 18절부터 25절에서는 사람을 두 종류로 나눈다. 첫 번째는 자신의 생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판단하고, 자신의 기준으로 하나님을 평가하는 사람이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으며 순종하는 사람이다.
겉으로 보면 별 차이가 없어 보일 수도 있다. 옆집 교회 안 다니는 사람과 교회 다니는 사람이 비슷하게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이 차이는 멸망과 구원의 차이다.
고린도전서 1장 18절은 말씀한다. "멸망할 사람들에게는 십자가의 이치가 한낱 어리석은 생각에 불과하지만 구원받을 우리에게는 곧 하느님의 힘입니다."
가똑띠기라는 말이 있다. 가똑띠기는 부산 사투리로 잘난 척, 아는 척, 지혜로운 척하지만 정작 아는 것은 없는 헛똑똑이를 의미한다. 인간의 한계에서 철학적으로 맞는 말, 논리적으로 일리 있는 말만 늘어놓고, 정작 구원의 진리와 하나님의 뜻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 사람, 이런 사람이 세상에서는 똑똑해 보여도 결국 손해만 보는 가똑띠기다. 오늘날에도 인간의 논리와 이성을 완벽하다고 생각하고 집착하다가 하나님의 진리를 놓치는 사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반대로 참된 지혜 자는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며 순종하는 사람이다. 세상의 시각에는 약해 보이는 십자가이지만, 그 십자가가 바로 지혜요, 구원의 능력임을 믿는 사람들이 참똑띠기다. 스스로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순간 넘어지지만, 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때 진정한 강함을 얻는다.
인간의 생각만이 옳다고 교만에 빠지는 순간 가똑띠기가 된다. 십자가의 죄사함과 부활의 능력을 믿고, 사람이 되신 예수님의 섬김과 사랑을 믿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며 순종할 때 참된 지혜자가 된다. 하나님의 뜻은 인간의 이해를 뛰어넘는다. 인간이 이해하지 못하는 신비를 믿고 순종하는 것이 참된 지혜임을 고린도전서 1장은 가르친다.
십자가와 부활, 그리고 성경의 구원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삶이야말로 가똑띠기가 아닌 진정한 지혜를 가진 사람이다. /심영선 비래영광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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