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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인호 스페이스해킹 대표, 대전공동체운동연합 운영위원 |
우선 '극우'란 무엇인가를 다시 짚어볼 필요가 있다. 흔히 '국가주의+민족주의+반이민/반외국인 정서+권위주의적 리더십'의 조합으로 정의되며, 규모나 형식에 따라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다. 과거 유럽에서의 급진우파 정당, 혹은 아시아의 반공·국가안보 중심 담론과도 연결된다. 극우가 사회에 나타나는 가장 큰 동인은 '불안'이다. 예컨대, 정규직이 아니라 비정규직·플랫폼 노동에 밀리는 청년세대, 주거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속에서 자신들의 고유한 위치를 잃지 않으려는 심리적 긴장, 다문화·이민 등의 변화 앞에서 느끼는 소속감 위기의식 등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극우를 단순히 적으로 여겨 '없애야 할 괴물'으로 규정하는 방식은 적절할까? 물론 극우적 담론과 행동이 낳는 혐오와 배제, 폭력의 위험을 경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반대편에서 무작정 억압하거나 '금지'하는 방식은 오히려 극우 담론을 음지로 몰아가고, 건강한 대화의 장을 차단하며 잠재된 문제를 더 크게 만든다. 이 점은 최근 언론에서도 다뤄지고 있는데, 해당 기사에서는 "극우 담론이 퍼지는 사회적 토양은 단지 극우 진영만의 책임이 아니라 그 '꺼져 있던 질문들'을 방치해 온 우리 사회 전체의 책임"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이처럼 우리는 극우를 다음 세 가지 차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첫째, 구조적 문제로서의 인식이다. 극우는 단순히 특정 인물이나 집단의 일탈이 아니라, 경제·사회적 위기가 빚어낸 반응이다. 청년실업·주거불안·사회적 이동의 둔화 같은 현실이 누적되면서 '나는 이 사회에서 밀려나고 있다'는 피해의식이 확대될 때, 극우 담론은 빠르고 효율적인 대응책처럼 보인다. 따라서 극우 대응은 단순히 정치적 수사나 규제만으로 끝날 수 없고, 사회적 안전망, 평등한 출발선, 미래 불안 해소를 위한 정책 변화와 직결된다.
둘째, 대화하는 민주시민의 태도다. 극우에 맞서는 방식이 무조건적인 배격과 혐오표현으로만 이루어진다면, 오히려 그러한 담론이 '말해지지 않은 목소리'로 자리 잡게 된다. 극우 담론이 주로 호소하는 '잃어버린 정체성', '기회의 공백', '미래의 불확실성' 같은 정서는 결코 무시해선 안 된다. 이들 정서를 다루며, 동시에 혐오와 배제를 넘어서는 논의의 장을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학교나 지역사회에서 정치적 교육과 담론 형성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셋째, 미래적 관점에서의 대응이다. 극우는 과거의 논리가 현대에 재현되는 형태일 수 있지만, 동시에 미래의 문제?기술변화·인구감소·환경위기·노동의 재편?를 놓치면 그저 '과거 회귀형' 담론으로 그칠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극우의 틀을 깨고, 청년·여성·이민자 등 다양한 미래세대의 목소리를 포함한 '포용적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극우 담론의 빈틈을 메우고, 역으로 더 나은 사회를 향한 희망의 틈을 마련할 수 있다.
결국, 극우를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는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구조를 보고, 대화하며, 미래를 설계하라.극우를 단지 '반대해야 할 적'으로만 인식한다면, 그 담론이 품은 원인과 호소력을 놓치게 된다. 반대로 극우를 너무 허용적으로 보면, 민주주의와 다원성이라는 근간이 흔들린다. 따라서 균형 있는 민주시민으로서 우리는 극우를 "왜 생겨났는가", "어떻게 작동하는가",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라는 질문 앞에 놓고 답해야 한다.
다가오는 선거와 사회적 논의의 장면에서, 극우에 대한 단순한 정치공세를 넘어서는 실질적 대응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과제다. 이것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극우 이후'가 아니라 '극우를 넘어서' 나아가는 방식이다. /권인호 스페이스해킹 대표, 대전공동체운동연합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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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