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속으로]지나온 옛날에 대한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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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속으로]지나온 옛날에 대한 추억

심은석 건양대 국방경찰학부 교수

  • 승인 2025-12-29 17:06
  • 신문게재 2025-12-30 18면
  • 이상문 기자이상문 기자
심은석 교수
심은석 건양대 국방경찰학부 교수
한해가 저문다. 하루를 인내한 태양은 길다란 노을을 남기고 산속으로 숨어 버리면 추운 겨울밤은 길다. 어린 시절 겨울밤에는 호롱불 아래 화롯불에 몸을 누이고 할아버지 옛 얘기에 빠졌다가 내일은 어디서 무엇으로 노는 꿈을 꾸면서 잠들었다.

산과 들, 개울가, 논 둠벙, 시냇물 놀이터에서 점심 먹거리는 해결했다. 지금 내 시와 산문의 문학적 상상은 아마 유년의 추억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농경시대 태어나 산업화, 정보화 시대를 건너 이제 AI 시대를 살면서 사람 사이 이웃과 친구, 옛날 풍경은 새롭게 떠 오른다. 2030로 불리는 MZ 세대와 달리 대한민국 근대화를 온몸으로 성취한 기성세대는 급격한 변화와 문화적 충격 속에 옛날을 소환할 것이다.



어제 어느 팔순 어르신의 손 편지와 연하장을 받았다.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연말이면 옛것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을 전해 주셨다. 하얀 종이에 연필로 그림을 그리고 오색으로 색칠한 편지는 우체국의 소인이 찍혀 집배원의 고단함이 한 묶음 겉봉에 새겨져 있었다. 카톡 문자로 일 초에 수천 명에게 보낼 텐데, 산과 들을 건너 많은 사람의 손길 속에 오랜 여행을 마친 연하장은 그분에 대한 그리움이 되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쓰던 일기장, 상장, 우표, 세금 고지서, 빛바랜 앨범, 내 삶의 흔적을 기억하는 옛 물건들이 시골 창고에 뒹굴고 있다.

그리고 사라진 물건은 흰 머리 가득한 내 머릿속에 차곡차곡 스팸처럼 쌓여 있어 그것 때문인지 날마다 외롭지 않다. 이 아름다운 지구를 떠나는 날 남겨진 사람들이 나를 추억하지 않겠느냐는 안도감으로 하루를 살아가는 힘을 얻는다. 온라인 AI 시대에 변화하는 세상은 사람들의 생각과 인생관을 빠르게 바꾸고 있다. 몽당연필로 앙증맞게 눌러쓴 공책이나 이제는 사라진 비디오나 테이프, 플로피 디스크를 저 멀리 버린 것처럼, 많았던 술친구와 휘젓던 밤 문화와 단체 회식은 대부분 사라져 간다. 내 곁에 있는 가족과 내 건강 그리고 홀로 취향대로 꾸며진 개인 공간에서 비대면 온라인 소통이 더 편해지는 세상이 되어 가고 있다. 챗 GPT, 제미나이, 오픈 AI, 메타버스, 자고 나면 세상을 덮는 뉴스들에 현기증을 느끼던 아침, 아내는 손때 묻은 옛것들은 멀리 버리라고 한다. 책장에 수북이 쌓인 헌책, 차마 버리지 못한 전동 타자기, 살아온 흔적들을 다 버리라고 하는데 그 오랜 물건들은 제발 버리지 말아 달라고 애원하는 것 같다.



그날, 엘리베이터 좁은 공간에서 십대 아이들이 온갖 쌍욕을 하며 큰 소리로 떠들던 아침, 어른으로 한 마디 꾸짖지 못하고 모른 체 하면서 하루가 어지럽던 날, 세태를 탓하는 꼰대였는지 비겁했던 것인지 오래도록 앙금이 남는다. 사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라고 군중 속에서 근원적인 외로움은 어쩔 수 없기에 자꾸만 옛것에 집착하였는가 돌아보기도 한다. '옛것을 익혀서 새로운 것을 알라'는 공자의 말에는 과거는 현재의 거울이라고 옛날을 기억하여 창조적인 바른 일을 하라는 말 아닐까. 사람들은 급격한 변화 속에서도 언제나 변치 않고 기다려 주기를 바라는 이중적인 존재라지만, 사람의 향기, 인간의 존엄과 양심은 변하지 않고 과거나 현재나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음을 믿는다. 이제는 내 가족 친한 이웃, 같은 성향, 같은 종교의 사람만이 아니라 마음의 담장을 헐고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도 생각하면서 함께 길을 걸어야 겠다. 새해에는 사람 향기 나는 세상, 배려하고 존중하는 사회, 어르신들을 어른으로 존경하는 살맛 나는 세상을 기원해 본다.
심은석 건양대 국방경찰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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